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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Feb 02. 2020

두부의 흔적을 찾아

두부는 말티즈였다. 크기가 요즘 구름이만 했으니 순종 말티즈는 아니었다. 구름이는 말티즈에 무언가 섞인 강아지다. 말티즈는 귀를 움직일 수 없다는데, 구름이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귀를 쫑긋 세운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귀를 내릴 줄도 안다.  


  이번 설에는 언니네 부부와 함께 열차를 타고 왔다. 역에서 나오니 아빠가 20년 된 트라제를 끌고 마중 나와 주셨다. 나는 차에 타고서 모두에게 두부에 대해 글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두부와 어떻게 행복했고, 우리에게 두부가 어떤 존재였는지 모두에게 물어볼 절호의 기회였다.  


 “언니, 두부에 대해서 기억나는 거 있어?”   


 “두부 너 때문에 정읍 갔잖아. 왜 두부로 글을 쓰려는 거야? 구름이로 쓰면 안 돼?”   


 “두부로 써야 해. 두부랑 행복한 기억이 아무것도 안 나서 그래. 언니는 두부를 데려왔었으니까, 나보다 기억이 더 많을 거 아냐”   


 “실제로 오래 지낸 건 너지. 나는 맨 처음 두부 데리러 수원까지 간 것만 기억나. 그때는 나도 어렸지”   


형부가 끼어들었다. “나는 그때 두부 들이는 거 말렸어. “   


 “아냐, 오빠는 나보다 더 강아지 들이고 싶어 했어. 더 이상 두부 얘기 꺼내지 마. 나는 두부한테 느끼는 죄책감으로 구름이에게 사랑을 쏟고 있으니까”   




  설날 아파트 주차장에는 차가 빽빽하다 못해 가로로 줄을 서 있었다. 아빠는 먼저 들어가라며 우리를 내려주고는 주차할 곳을 찾으러 가셨다. 현관문을 여니 통통대는 발걸음 소리가 빨라졌다. 구름이였다. 구름이는 네 사람이 한꺼번에 집에 온 걸 보고서 기쁨의 최대치를 넘어버린 것 같았다. 두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누구에게 안길지 헷갈려했다.  


  아빠가 도착한 후, 오랜만에 여섯 명이서 저녁을 먹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사는 성인 여섯 명이 반년 만에 만나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나에게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화제, 두부가 있었다. 형부는 언니에게 두부를 사주었고, 언니는 두부를 수원까지 가서 두부를 데려왔다. 두부는 적어도 2년 간 아빠와 엄마와 내가 사는 집의 막냇동생이었다. 내 반려는 이 참에 10년 전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두부? 엄마는 두부 기억 안 나. 이제는 구름이밖에 모르겠다.”   


 “아빠도 두부인지 구름이인지 헷갈려”  


  대화 주제는 구름이로 바뀌었다. 마침 구름이는 가족이 밥을 먹는 상 아래로 들어가 아빠가 몰래 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러 엎드려 있었다. 엄마는 오르내리는 광주 억양으로 아빠를 쏘아붙였다. 너희 아빠가 구름이에게 자꾸 고기를 준다, 강아지는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밥 먹고 양념 묻은 손도 대주면 안 된다. 나는 두부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대신 구름이에게 구운 버섯을 조금 주었다.  




  광주에 올 때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10년도 넘은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이제는 모두가 개를 키운다. 친구들에게 두부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두부는 친구들의 입에서 잠깐 되살아났다.  


 “우리 수능 보고 나올 때, 너희 엄마가 두부 안고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가끔 학교에도 네 아버지 차 타고 왔잖아.”  


 “싸나웠다고 네가 그랬어. 자꾸 문다고.”   


  그 말을 들으니 아빠 품에 안긴 두부의 모습은 기억이 났다. 두부가 차 타는 걸 좋아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구름이는 차를 타길 좋아한다. 구름이는 어지간해선 사람을 물지 않는다.  




  설을 쇠고 돌아와 재수 시절 일기를 찾아보았다. 그 시절 나는 마인드맵을 그리기 좋아했다. 한 번은 두부를 주제로 마인드맵을 그렸다. 거기에는 두부에 대한 내용이 있을지도 몰랐다. 




  마인드맵에는 내용은 별로 없었고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일기로 떠오른 기억이라고는 두부가 자동차를 타면 노래를 불렀다는 것과 나에게 자꾸 마운팅을 했다는 것, 두부가 건강하기를 바랐다는 정도였다. 마인드맵을 제외하면 일기에 두부와 관련된 내용은 두 문장뿐이었다. ‘두부와 함께 운동했다. 두부가 또 갇혔다’.




  내가 기억하는 두부의 이야기는 이렇다. 언니는 대학교 2학년 때 남자친구가 생일선물로 사 온 강아지에게 두부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취방에서 1년가량 키웠다. 자취방의 전세 기한이 끝나고 오피스텔로 이사했지만, 새 집에서는 동물을 키울 수 없었기에 두부는 광주로 내려왔다. 당시 우리 집은 개를 키울 사정이 안 되었다. 나는 수험생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허용하던 시절이었다. 아빠는 전세버스 기사였다. 운전기사 사이의 상도덕으로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셔틀 자리를 받으셨다. 나는 열 시에 야자가 끝나면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에서 내려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할인마트에서 옷을 팔았다. 매일 나보다도 늦게 돌아오셨다. 나는 아무도 없는 거실의 불을 켜고 육각장에 갇힌 두부를 풀어주며 밤 일과를 시작했다.


  두부는 육각장에서 낮을 보냈다. 울타리가 여섯 개라 육각장이라고 불렀지만, 쓸 때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 베란다와 맞닿은 거실 한 편에 두었다. 두부가 사는 면적 중 절반에는 배변판을 두었고 절반엔 담요를 깔아 두었다. 두부는 화장실 쓰레기통의 휴지를 자꾸 퍼와서 가두어 키울 수밖에 없었다. 두부는 가끔 배변판에 싼 똥을 먹고 혼이 났다.  


  친구들이 말했듯 두부는 사나운 개였다. 가족 중에서도 유독 나를 물었다. 재수 시절 한 번은 내 코를 피가 날 정도로 물었다. 두부는 어떤 예방 접종도 맞은 적이 없었다. 두부에게서 무슨 병이라도 옮을지 모두가 불안해했다. 낮에 재수 학원을 나와 전남대병원 감염내과에서 광견병 주사를 맞았다. 이후로도 두부에게 여러 번 물렸던 것 같다.  


  엄마는 가족 중에서 그나마 두부를 챙겼지만, 수능을 앞둔 딸을 무는 개를 계속 키울 생각은 없었다. 엄마는 가장 두꺼운 산타 옷을 두부에게 입혔다. 아빠가 차를 몰고 세 명이서 정읍 시골의 큰 이모 댁에 갔다. 우리 가족은 두부를 시골에 두고 차를 타고 돌아왔다.  


  수능을 본 후, 서울에 있는 언니의 오피스텔에서 묵으며 논술 시험을 준비했다. 아빠 차를 타고 언니와 함께 광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세 명 만장일치로 두부를 데려오기로 했다. 정읍에 들러 두부를 찾았다. 따뜻한 집에서 지내던 말티즈는 시골 개가 되어 있었다. 하얀 털은 누렇게 때가 탔고, 산타옷은 버려야 할 정도로 더러워졌다. 두부가 오는 줄도 몰랐던 엄마도 두부의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서는 안쓰러워 씻겨 주셨다.  


  다음 기억은 확실하다. 버림받고 돌아온 두부는 예전의 두부와는 달랐다.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두부는 우리를 봐도 좋아하지도, 짖지도 않았다. 우리 가족은 미안해서라도 두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정성을 받은 두부는 우울한 개에서 화난 개로 변했다. 서울로 돌아간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두부에게 허벅지를 물렸다. 한참 통화 중이었으니 두부를 건드린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역시 이런 개는 못 키우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도 어렵지 않게 버렸으니 두 번 버리기는 더 쉬웠다. 이번에 정읍에 가며 입힌 옷은 두 번째로 두꺼웠던 주황색 후드였다. 두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차를 타고 이모 댁을 나오는 길에 뒤에서 들리던 짖는 소리였다.  


  우리 자매는 큰 이모를 만날 때마다 두부의 안부를 물었다. 이모는 두부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하셨다. 이모부 친구 분이 두부가 예쁘다며 데려가셨다는 것이다. 몇 년 후 사촌오빠 결혼식에서 두부에 대해 다시 여쭤보자, “두부 아빠 됐다!”고는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후부터는 두부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두부는 잠복고환이었다. 그래도 한쪽은 배 밖에 있었으니 정말 아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이모가 전하는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두부가 떠나고 3년 후, 언니는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두부를 생각해서라도 새 강아지를 키워서는 안 된다고 말렸다. 다른 일도 겹쳐서 언니와 크게 싸웠다. 며칠 후 두고 온 물건 탓에 어색한 마음을 참고 언니 집에 갔다. 작은 털뭉치가 집에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언니는 나와 싸우고 데려온 털뭉치에게 구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구름이도 벌써 일곱 살이다. 구름이는 광주와 언니네 신혼집을 오가며 산다. 반년에 한 번 보는 내 반려를 기억하고, 방에서 따로 노는 가족을 발로 긁어 거실로 데려올 만큼 의사표현도 한다. ‘안 돼’를 알아들어 집을 어지르지 않는다. 언니는 프리랜서다. 하루 종일 구름이와 함께 있다. 언니는 구름이를 키우면서는 예방 접종 하나 놓치지 않았다. 구름이 허리가 아플 때는 주말에 MRI 하는 병원을 찾아 창원에서 부산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두부는 개를 키울 준비가 안 된 집에 왔다 갔다. 세상 모든 개가 그렇듯, 두부는 이 형편없는 인간들과 살면서도 틀림없이 커다란 행복을 주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행복도 잊혔다. 누군가는 억지로 잊었고, 누군가는 새로운 식구에게 기억의 자리를 내주었다.   


  언니의 말대로, 두부를 그렇게 보냈기에 구름이가 행복하게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부가 있었기에 구름이가 행복하다는 인과관계는 두부에게 닿지 않는다. 두부의 불행을 책임질 방법은 없다. 기억 속 두부를 살리는 일조차 두부와는 무관하다. 그나마 내가 할 일은 준비되기 전에 동물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다른 두부를 만들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커버 사진 출처 pixabay(https://pixabay.com/). 나에게는 두부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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