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선을 긋지 않고 살아가려면
코로나 19와 신천지가 얽힌 지도 한 달은 되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신천지 조롱도 예전에 선을 넘었다. 한동안 사람들을 붙잡고 신천지를 혐오해도 될지 묻고 다녔다. 정체성만으로 누군가를 혐오해서는 안 된다. 신천지 신도 대부분은 세뇌를 당해서 신도가 되었다. 그들의 ‘신천지성’은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이 아니다. 신천지가 신천지 교육생 명단을 내놓지 않는 이유도 교육생 각각은 자기가 신천지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내가 속한 연구실에는 외국인 포닥이 한 명 있다. ‘포닥’은 박사 학위가 있는 연구자로, 보통은 연구실 최고참 내지 분야의 전문가이다. 작년에 연구실을 이사할 때, 모두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짐을 나르는 동안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보다 못한 한 선배가 설거지라도 하라며 빈 병을 가득 안겼다. 설거지를 다 하자 그는 자리로 돌아가 제 PC 켜는 일에 집중했다. 그는 이사 기념 회식에 참여해 잡탕밥을 시켜달라고 했다. 다른 ‘포닥’ 선배가 이사를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카드를 주고 간 덕분에 생긴 회식이었다. 이사가 끝나고 한참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 친구들은 회사든 대학원이든 그런 외국인이 꼭 있다며 동감했다.
입을 함부로 놀린 일을 후회한다. 그는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신천지 신도들도 어떤 면에서는 그와 비슷해 보였다.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 중 하나가 내 증상을 한 마디로 설명했다. ‘우리가 선비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우리 말고 아무도 그런 고민 안 해’.
조선 시대 선비들은 사서삼경을 외웠다. 요즘 선비는 정치적 올바름을 도포처럼 걸치고 인권을 말한다. 선비라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느니, 댓글 창 너머의 상대가 왜 굳이 제 시간을 낭비하며 헛소리를 쓰고 있는지 짐작해 어엿비 여겨야 한다. 정신건강 의사 정혜신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노인을 만나 고향이 어딘지 물으며 대화를 텄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현대 선비의 자세이다.
나는 선비는 아니었다. 조롱과 비꼬기를 즐기는 사람이 팔자에 안 맞는 선비 노릇을 하는 셈이다. 네이버 뉴스의 댓글 창에는 ‘대깨문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려와 함께 저 사람들이야말로 ‘허멍누’라며 낄낄댔다. ‘허파에 구멍이 나도 새누리’를 줄인 말이었다. 말 몇 마디 오가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선비의 바람이 불었다. ‘허파에 구멍’ 같은 표현은 명백히 코로나 19 환자를 모욕한다. ‘허멍누’는 지역감정을 일으키기 딱 좋다. 이후 우리는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세상을 향한 입장은 공감보다 냉소가 편하다. 시스템을 비판해봐야 바뀌는 건 없지만 개인을 조롱하면 기분이라도 풀린다. 선비의 굴레를 벗고 고백하자면 ‘종교적 자유’의 범위를 줄이고 싶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단상담소와 손을 잡아 신천지 신도들을 해방시키는 모습을 상상한다. 세뇌에서 풀려난 사람들 마음에 의심이 생기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유사상가들과 손을 잡고 전(前) 신천지 신도를 불가지론의 세계로 끌어온다. 마지막으로 이단상담소 사람들도 기독의 늪에서 해방시키면 낙원은 못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될 것만 같다.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자비롭게 전도서 앞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압수할 것이다.
그럼에도 선비됨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성경을 믿는 사람보다 읽지도 않고 비웃는 사람이 더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찾아본 전도서 전문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전도서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전 1:2)” 말로 가득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전 7:16)”라는 문장은 되뇔수록 지금 쓰는 글에 대한 고대 현인의 대답처럼 읽힌다. 2천 년 전 누군가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끝내 답을 찾았다고 상상하니 겸허해진다.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그 무엇도 비웃을 수 없다. 나중에 후회할 말을 내뱉으니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 대신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재미있어진다. 선비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