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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Sep 29. 2019

'선택지 늘리기'는 선택이 아니다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

피아노를 관둔 일을 기억한다. 스스로 미래를 결정한 최초의 선택이었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을 때면 학원 앞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웠다.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인가, 왜 제대로 연습하지 않았냐는 선생님의 야단에 엄마가 억지로 시킨 거라며 엉엉 울었다. 부모님 아닌 어른에게 반항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2학년 때 이사를 하고서도 피아노 학원만큼은 꾸역꾸역 다녀야 했다. 6학년은 되어서야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바이엘은 끝내야지, 체르니 몇 번 까지는 쳐야지'라는 말은 '언젠가 후회할 거다'라고 바뀌었다. 인정한다. 피아노 학원에 다닌 덕에 악보를 쉽게 읽는다. 하지만 피아노를 그만두었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하면 또 어쩌랴. 어차피 내가 내린 선택이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대신 검도장과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퍽 즐거웠다.


선택이란 두 가지 이상의 조건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하지 않은 선택에 기회비용이 생긴다. 이제 나는 피아노 건반에서 무슨 음이 나는 줄만 알지, 두 손가락 이상 건반을 동시에 누를 수 없다. 포기할 기회비용이 없으면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가능성을 늘리려 노력하기'는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을 미루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아이에게 의사 결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선택을 가르치는 대신 선택지를 늘리는 삶을 가르친다. 입시에 성공하면 '다양한 전공을 선택할' 점수와 스펙을 얻는다. 20년 가까이 입시에 노력하고 욕망을 참아낸 대가다. 그러고서 처음 하는 인생 선택이 전공이다. 그러니 '전공 안 맞는' 학생이 많은 이유도 그들이 운이 나빠서만은 아니다. 만일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도록 이들을 내버려 두었다면, 그래서 선택이 낳은 책임을 떠안는데 익숙했다면, 스무 살이 되어서 제 인생을 결정할 전공을 점수 따위에 맞춰 선택했을까?


나는 입시 배치표를 따라 대학에 들어왔다. 내가 선택한 대학 생활이란 성실하게 수업 듣고, 예습 복습 충실한 삶이었다. 덕분에 회사에 들어가기도 좋고, 대학원에 가기도 더할 나위 없으며, 의학 전문 대학원도 시도해볼 만한 학점으로 졸업했다. 피아노를 배워 악보를 볼 줄 알게 되었듯, 대학 생활 내내 공부하며 지낸 시간도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덜 성실한 삶을 사는 지금 미련이 남기도 한다. 애초에 연구할 꿈을 꾸었다면 여러가지 공부를 하는 대신 일찌감치 연구실 인턴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연구자의 삶이 내게 맞는지 어릴 적에 알 수 있었으리라. 줄기세포처럼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목매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내 선택이다. 내가 안고 가야 할 삶이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났다. 어느새 나는 삶에 굵직굵직한 선택을 해왔다. 무언가를 택하고 반대 선택지를 포기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왔다. 반려를 만나고 비혼 여성의 삶을 지웠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 억지로 한 일이 도움된 적도 있었고, 줄곧 후회하던 일이 다음날 의미가 뒤집힌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선택하며 더 고민하고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크게 망한 적이 없어 적는 배부른 소리일까.


아이가 더 많이 선택하도록 두어야 한다. '다 네 미래를 위한 거야, 지금 엄마 아빠 말 듣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라며,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를 빼앗기며 컸다. 제 미래를 내다보기에 아이가 어리게 보일지도 모른다. 인과관계가 거꾸로다. 제 미래를 스스로 따질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른 보기 불안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선택에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을 일러주고, 결과가 어떤 선택에서 말미암았는지 거슬러 말해줄 수는 있겠다. 소 잃고 고친 외양간에 새로운 소를 들일 기회도 어릴 시절에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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