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 갓, 이츠 프라이데이≫ 스포 없는 감상기
심너울 작가의 ≪땡스 갓, 이츠 프라이데이≫를 읽었다. 평일 버스 안에서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분량, 짧은 이야기였다. 한국 작가의 SF 단편집이 많이 나와서 즐겁다.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출판사를 응원한다. 이 책도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었다.
심너울 작가의 이야기에는 구체적인 공간이 있다. 이야기 속에 내가 사는 동네가 나온다.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다. <정적>의 마포구는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집값은 비싸고 거주자는 젊고 가난한 동네다. <경의 중앙선에서 마주치다>도 비슷하다. 자주 타는 지하철 호선은 아니지만, 대신 수원에서 노란 분당선 열차가 오기를 오래도 기다렸다. 상상하건대 <경의 중앙선에서 마주치다>의 사건은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역마다 일어날 것이다.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도 비슷하다. 이야기 속 '셀트린'은 분명 셀트리온에서 따왔고 그 회사는 인천 송도에 있지만, 배경이 관악산으로 옮겨진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SF의 장점이란 한국 작가가 쓴 한국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SF 독자로서 그조차도 누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작가의 이야기를 여럿 읽다 보면 작가가 어떤 모티브를 좋아하는지는 물론 어떤 단어와 말투를 자주 쓰는지도 조금씩 쌓여 알게 된다. 내가 사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은 이번에 새롭게 맛본 바였다. (<오늘의 SF #1>에서 한국 공간을 SF에 활용한 시작이 듀나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신화의 해방자>가 좋았다. 공간을 넘어 매일 쥐를 잡던 내 삶과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전선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 생활이 SF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묘사가 전문적이었다. 글을 읽으며 검은 봉지에 7-8마리씩 들어있는 연구실 복도의 작은 냉장고를 떠올렸다. 작가도 실험실 생활을 했는지 궁금했는데, 후기에 수의대 학생 분의 도움을 받았다고 쓰여있었다.
몇 달 전 어느 과학 커뮤니케이터 분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다가 작가가 된 분이셨다. 정당한 이유 없이 기준을 채우기 위해 매일 쥐를 50마리씩 죽였던 삶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고 하셨다. 동물 실험은 잔혹하다. 연구자가 동물 실험에 무뎌지는 모습도 역시 슬프고 잔인하다. 이들은 고학력자이고 스스로 길을 선택했으며 사회 평균보다는 많은 돈을 벌며 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아픔과 무뎌짐이 무시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감정을 이야기로 보여준 점에 고마웠다.
≪땡스 갓, 이츠 프라이데이≫를 웃으며 읽었지만 다 읽고선 가벼운 씁쓸함이 남았다. 원 없이 행복하게 끝난 이야기는 없었다. 그 지점에서 작가와 내가 동시대 사람임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며 상상 속 이야기라도 함부로 행복한 결말을 주지 않는 사려 깊음이 좋았다.
알라딘의 무료 대여 이벤트 덕분에 읽어서 미안한 마음에라도 감상을 썼다. 다들 재미있는 이야기를 즐기길:)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04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