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겪은 여러 사건으로 수료와 졸업 사이에 반년 간 틈이 생겼다.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을 만나기도 곤란했다. 남는 시간에 망연히 비디오 게임을 했다. 2개월 간 결말을 본 게임만 '위처 3: 와일드 헌트', '파 크라이 5'와 '파크라이: 뉴 던', '어새신 크리드:오리진'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블록버스터 게임들이다. 지금껏 살면서 단기간 내 이렇게나 게임을 많이 해본 적이 없었다.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괴리를 느꼈다. 게임의 즐거움은 현실의 재미로 이어지지 못했다.
요새 나오는 게임은 구성이 한결같다. 게임 속 주인공이 되어 세계를 체험한다. 주요 이야기는 '메인 퀘스트'를 따라가고, 이따금 나오는 '사이드 퀘스트'는 게임의 세계관과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플레이 시간이 쌓이며 이야기의 기승전결도 나아간다. 게임을 '클리어'했다는 말은 이야기의 결말을 보았다는 의미이다. 게임은 주인공에 몰입할 수 있도록 1인칭 또는 3인칭 백뷰 시점으로 진행된다.
1인칭과 3인칭 시점 게임. https://www.giantbomb.com/images/1300-3010988 및 https://thewitcher.com/en/witcher31
나는 게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스토리 알기를 좋아해 게임을 해왔다. 나에게 비디오 게임이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매체이자,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모험의 시뮬레이션이었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매번 다른 사건이 몰아치며 새로운 국면을 만들지만, 게임은 반복적인 경험을 허용해 게이머가 주인공에 더 몰입하도록 만든다. 예컨대 라스트 오브 어스의 플레이 시간은 주인공인 엘리와 조엘의 유대감에 이입하기 위해 존재한다. 게임 속 시련과 위기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유튜브에서 컷신을 찾아 본들 직접 게임한 사람이 느끼는 감동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번에 한 게임들은 주인공에 공감할 만큼 스토리에 몰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모든 게임은 재미있었다. 재미가 없었다면 그만두었을 텐데, 모든 게임을 결말까지 보고 끝냈다. 요즘 나오는 게임의 게임성을 즐기면서도, 게임에 뒤떨어지는스토리를 따라가며 찝찝했던 시간이었다.
스토리는 '적을 찾아 죽이는 행위를 반복하는 일'의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적을 찾아 죽이는 일' 도 '리듬 게임 가위바위보'에 멋진 시각화를 입힌 것일 뿐이었다. 액션이란 필요한 순간에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둘 이상이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선택을 내리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정해진 타이밍에 버튼을 누르고 보상이 나온다는 점에서, 모든 게임은 조작적 조건화였다. 어떤 게임에서든 순간에 맞춰 버튼을 누르면 대가로 컨트롤러의 진동과 목이 잘리는 적이라는 보상이 나온다. 실제로 이 활동은 뇌에 도파민을 늘렸을 것이다. 8월 연휴 기간에만 하루에 여덟 시간 이상 게임을 했다. 서너 시간이 지나면 퀘스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지치지만 적은 계속 죽일 수 있었다.
게임이 '적을 찾아 죽이는 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실 세상은 새벽에 배송 온 냉동 새우 택배를 택배함에 두고 출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나오지만, 게이머가 긴장감을 느끼려면 주인공의 목숨은 걸어야 한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 말이다. 그러니 1회 차 플레이 시간이 100시간이 넘어가는 블록버스터 액션 게임에 살인을 넣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며 나아가는 주인공은 게임 속 스토리와 충돌한다. 대부분 주인공은 악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역할이다. 게이머가 이입할 만큼은 선량해야 하고, 냉소적이더라도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나 게임은 '적을 찾아 죽이는 일'이이기에, 게이머는 '잡몹을 썰어' 주인공의 레벨을 올린다. 게이머에게 '레벨을 올리는 잡몹'이었던 존재는 게임 속 주인공에게는 세계 속 구성원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뒷골목 시정잡배는 무자비하게 썰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동료가 죽었을 때는 장례식을 치르며 복수를 다짐하는 존재가 된다. 모순을 넘어 이야기가 성립할 수 없는 지경이다.
동물 미라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분노하던 바예크는 군인을 죽이고 시체를 버리고 간다. https://gamefaqs.gamespot.com/
이런 모순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단순히 게임을 덜 질리게 하기 위해서인지 요새 게임은 전투 사이에 퍼즐이나 게임 속 게임을 넣기도 한다. 게임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기물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가는 구간이 나오는 식이다. 퍼즐은 게임 속 세계를 보여주는 훌륭한 연출이자 목숨을 건 싸움에서 쌓인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게임이 제공하는 정답' 외에는 나아갈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도리어 게임 속 세계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세상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폭력이 적은 게임이 있을 수 있을까? 이따금 하는 TRPG에서 대안을 찾는다.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은 비디오 게임 시대 이전부터 있던, 여러 명이 모여 탁자 위에서 주사위를 굴리며 진행하는 게임이다. TRPG에서는 (게임 참여자의 협의 하에) 판타지 세계에서 고블린을 맞닥뜨려도 '말린 육포를 건네며 친해질' 수 있다. 그러나 TRPG는 현실적으로 하기 힘든 취미이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 같은 날 시간을 내는 것만으로 기적이다. 적어도 비디오 게임의 플레이 시간만큼 TRPG를 할 수는 없다.
언젠가의 즐거웠던 TRPG 세션
결국 재미를 느끼는 제일 좋은 방법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현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보다 의미가 충만한 게임은 없다. 게임 생각이 나지 않는 때가 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때, 여럿이 모여 큰 일을 완수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내게 모험 시뮬레이션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매 순간이 재밌을 수는 없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수료와 졸업 사이의 불안에 끼어 있고, 간신히 잡혀가던 코로나 19는 다시 퍼지는 중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 중 좋은 게임을 아는 분은 추천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