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가오리 후원을 시작했다. 전기가오리는 학교 밖 철학 공부를 지원하는 서비스이다. 매달 철학과 관련된 책과 인쇄물을 배송해준다. 인터넷 강의도 있다. 나는 '철학 구몬'이라 불리는 인쇄물에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논문과 작은 책은 읽었다. 무엇보다 인터넷 강의가 재미있어서 후원을 계속할 생각이다. 강의를 듣겠다고 주말을 기다릴 정도이다.
https://www.philo-electro-ray.org/
몇 주 전 전기가오리의 전문성을 비판하는 글을 보았다. 운영자가 철학이 아닌 미학을 전공했으니 철학 서비스를 열 자격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공계 전공자인 나로서는 철학과 미학 연구가 방법론 차원에서는 비슷하리라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미학 전공자가 철학 강의 서비스를 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운영자인 신우승 씨는 빅이슈 인터뷰에서 '대학 밖에서 철학을 공부할 기회가 적어서 시작했다'고 했다. 제도권 밖 공부에서 시작한 서비스의운영자에게 제도권의 인정을 받지 않았다는 비판은 운영자에게도 후원자에게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몇달 전 문화센터에서 하는 글쓰기 강의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강사는 지방의 대학교를 중퇴했다. 남들이 학교 다니는 시절에 다른 경험을 온몸으로 한 사람이었다. '왜 사람들은 제도에서 인정받지 않은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가'로 시작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나는 그분께 글을 시작하는 방법이며 비평에 필요한 잡지식을 들었고, 덤으로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문제점을 알려주는 태도를 배웠다.
학위는 강의력이 아니다. 이력이 곧 필력인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학교를 다니며 충분히 많은 예시를 보고 자란다. 교과서 내용을 어물쩡 넘어가는 교사와 등록금이 아까운 교수 말이다. 한동안 신문 칼럼 요약 글쓰기를 하느라 온갖 글을 읽었다. 이상한 사례를 가져다가 제 주장에 근거라고 갖다붙이는 글이 제일 끔찍했다. 그런 글에는 필자 뒤에 교수 직함이 붙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심지어 표절이 인정되어 학계에서 쫓겨난 사람이 여전히 칼럼을 쓰고 책을 내는 것도 보았다.
누구나 배우고 말할 수 있는 시대다. 컨텐츠의 진위와 질을 판단하는 데는 수용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듣든 자기 걸로 만드는 과정은 자기 몫이다.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지식에 대해서는 권위자의 글을 찾아야 하지만, 권위만 보고서 무작정 믿어서도 안 된다. 배움이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다. 지적으로 배가 고프다면 강사의 질을 판단할 능력과 성실함도 갖추어야 한다.
권위 없는 사람이라고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지적으로 게으른 태도이다. 자격으로 선을 긋고 자격 밑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야 자기 손해다. 이야깃거리가 줄어든다. 학계는 좁고 연구자들은 연구에 바쁘다보니 대중들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다. 경제적인 여건 상 배우고 싶은 만큼 학위를 딸 수 있는 사람들도 없다. 이런 상황에 논문 저널보다 쉬운 잡지가 나오고 학교 밖 공부가 많아지는 추세는 반가운 일이다. 필자의 질, 강의자의 자격을 판단하는 것은 그들을 경험한 다음이 되어도 나쁘지 않다.
'전문성과 말할 자격'이라는 생각의 끝에는 나 자신이 있다. 박사 학위를 딸 계획은 접었지만 공부를 그만둘 생각도 없다. 전문가의 길을 포기한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나? 당연히 있다. 내게도 말할 자유는 있으니까. 단, 거짓 정보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에는 근거를 대고, 인용이라면 정확히 표시한다. 진실한 글을 쓰는 조건은 권위가 아니라 노력과 윤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