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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Aug 27. 2020

생명은 합의로 정해지지 않는다

N.K. 제미신 <오벨리스크의 문> 감상

스포일러 주의! 책을 읽지 않은 분은 스포 없는 <다섯 번째 계절> 감상을 먼저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playkids55/40 함께 부서진 대지 3부작에 빠져봅시다.



N.K. 제미신의 <오벨리스크의 문>은 전작과는 다른 주제로 차별을 말합니다. 전작 <다섯 번째 계절>에서 정체성에 의한 차별이 어째서 옳지 않은지를 가장 극단적인 소수자인 ‘오로진’을 창조해 알려주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소수자가 사람들과 겪는 고통을 비유합니다. 에쑨은 오로진이 인정받는 공동체 카스트리마에서 살아가며 사회 속 소수자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에쑨의 딸 나쑨은 딸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지자와 갈등합니다. 차별에 대한 은유 외에도 ‘달’, ‘오벨리스크’ 등에 세계에 대한 단서가 가득합니다.


원서 표지보다 한국어 표지가 더 에쁘다..!


<오벨리스크의 문>의 주 배경인 카스트리마는 <다섯 번째 계절>의 메오브와 비슷한 향입니다. 둘 다 오로진 지도자 아래에서, 오로진의 힘을 빌려 아버지 대지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오로진을 대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오로진과 함께 살아온 메오브 사람들은 시에나이트와 알라배스터를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마지못해 오로진과의 공존을 감내하게 된 카스트리마 사람들은 빌미가 생기자마자 혐오의 날을 세웁니다. 에쑨은 죽어가는 알라배스터에게 ‘언젠가는 메오브 사람들도 우리를 배신했으리라’ 말하며 절망합니다. 메오브는 고요 대륙에서 수호자의 손이 미치지 않았던 공동체였습니다. 오로진과 둔치가 편견 없이 공존할 수 있던 섬이었지요. 이런 곳에서도 오로진 혐오가 일어났을까요? 이유야 어쨌든 오로진 아이는 사고를 치면서 세상에 드러나니까요.


그 답은 나쑨과 지자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자는 어릴 적 오로진 아이에게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 이유로 세 살배기 친아들을 죽였습니다. 그에게 오로진은 아내든 아들이든 똑같은 괴물일 뿐입니다. 나쑨은 아버지에게 동생을 죽일 이유도 없었음을 깨닫고, 그 순간부터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입니다. 딸이 괴물임을 부정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나쑨은 스스로 괴물이 됩니다. 




카스트리마의 지도자는 제 쓰임새명을 로가로 부르는 이카입니다. 오로진 지도자 이카는 모두가 화합하는 공동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카는 오로진과 둔치, 향의 원주민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며 최악의 계절 속에서도 생존을 도모합니다. 그런 이카조차도, 오로진과 둔치들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 ‘자기편을 든다’는 비판을 들을까 봐 자기 검열을 합니다. 오로진 동료인 커터가 둔치에게 '정당방위'를 했을 때, 커터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를 직접 죽여야 했습니다.


마침내 둔치들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오로진 어린아이조차 죽이려 듭니다. 에쑨은 아이에게 주먹을 들어 올리는 둔치를 보자 ‘아이들은 안 된다’고 외치며 이성을 잃습니다. ‘아이들은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은 우체를 잃은 어머니의 절규인 동시에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당부입니다. 


어린 오로진은 고요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입니다. 살아남은 오로진은 야생이든 펄크럼 출신이든 제 힘을 조절할 줄 알지만, 제 힘을 자각하지 못하는 오로진 어린아이는 언제든 마을 하나를 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괴물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살려야 할까요? 에쑨은 심판봉 대신 스피넬 검을 휘두르며 답을 냅니다. ‘투표로는 생명을 정할 수 없다’ 고요. 이카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은 투표함은 스피넬에 닿자마자 재가 되어 사라집니다. 세상에는 무시해야 할 의견이 있고, 투표로 정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오로진 아이 하나를 위해 마을 전체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해결책을 내려고 하기도 전에 흑백 논리를 강요하는 나쁜 물음입니다. 코런덤은 수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메오브에서 모두의 젖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티리모는 나쑨이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고요. 태어난 오로진 아기 때문에 펄크럼이 뒤집어졌다는 언급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로진 아이는 오로진 성인과 함께 있으면 안전합니다. 고요 대륙의 향들은 오로진을 살려둔 적이 없었기에 아기 오로진을 감당하지 못했고, 대가로 매번 재앙을 맞았습니다.


오로진 부모에게 육아는 반지 두 개짜리 고역입니다. 고통을 참아내며 오로진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는 둔치 아이를 키우는 이유와 똑같습니다. 공동체에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오로진이든 둔치든, 트랜스젠더이든 무성애자든 자기 정체성을 존중받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은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http://sign.healthysociety.or.kr/


현실 세계의 오로진은 종교 집회와 차별금지법 반대 호소문 속에 있습니다. 우리 세계 소수자들은 지진을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없는데도요. 사람들은 고요 대륙의 둔치만큼이나 그들을 두려워하고 존재를 지우려 합니다. 오로진 아이는 오로진 어른이 키워야 하지만, 사회에 한 아이가 자라는데 우리가 감당할 일은 고작 그들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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