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택 <슈뢰딩거의 아이들> 서평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문윤성 SF 문학상의 첫 대상 수상작입니다. 제목만 보면 하드 SF지만 10대 아이들의 발랄한 학생회 이야기입니다. 학교 구석에서 발견한 사소한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세상을 뒤흔드는 결과로 끝나는 것도 여느 학원물과 비슷합니다.
SF다운 설정은 아이들이 다니는 가상현실 학교 정도입니다. 가까운 미래 한국, 중고등학생 아이들은 모두 모여 가상공간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학령인구 대다수를 한 공간에 넣은 덕분에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야기 속 가상 학교의 모습은 실제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SF적 장치로서 지니는 힘은 약합니다.
가상현실이라는 배경은 등장인물과 맞물려 힘을 발합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장애인이거나 장애인의 주변인입니다. ‘슈뢰딩거의 아이들’이라는 제목도 여기서 나왔고요. ‘가상현실+장애인’에 떠오르는 클리셰가 있죠. ‘게임 세계에서는 최고의 전사지만 현실에서는 사고로 다리를 잃은 청년'같은 이야기요. 책은 이보다는 구체적으로 장애인을 다룹니다. 가상현실 세계를 누비는 장애인 아이가 있으면 세계를 창조한 장애인 어른도 있습니다. 이야기에서 장애는 캐릭터의 개성으로 존재하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낯설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죠. 현실에도 장애인은 있으니까요. 신체 능력이 부족한들 직업과 무관하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일할 수 있고요. 책을 읽고 제 주변 장애인은 어떻게 사는지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사회가 장애인을 가려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가렸길래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산 지도 10년이 넘어갑니다. 저상 버스는 늘었지만 저상 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거리나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본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한참을 떠올리고 나서야 대학교 복도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휠체어 탄 사람들이 기억났어요. 전 회사 다닐 때, 백 명이 넘는 층에 장애인이 딱 한 분 있었고요. 아마 장애인 의무 고용 덕분이었겠지요.
2020년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 현황을 보면, 대한민국 인구 5%는 장애인입니다. 스무 명 중 한 명입니다. 연령대를 고려하더라도 출퇴근 지하철에 한 명씩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길목 어디에도 장애인은 안 보입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장애라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조금만 정리를 미루면 금세 수백 명으로 늘어나는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도 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격리하는 학교 교육은 비장애인들에게도 손해입니다.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랐기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멋진 이야기도 경험할 수 없었고요. 장애인을 떠올릴 때 하필 대학생 시절 복도에서 잠깐 마주쳤던 장애인이 생각난 까닭은 그 순간 무척 긴장했기 때문이었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실수할까 두려웠습니다. 빤히 바라보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눈을 마주쳤을 때 외면하는 것도 실례일 테니까요. 억지로 앞만 보고 갔던 것 같아요. 함께 길을 걷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과 가까워지기는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피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은 격리되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능력이 있는 인원을 사회가 활용하지 못하니 경제적으로도 손해입니다.
책 속 이야기처럼 중등 교육을 가상현실에서 한다면 다음 세대는 장애인을 훨씬 익숙하게 대할 것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아이도 모두와 같은 속도로 복도를 이동하고, 청각 장애인의 수어나 언어 장애인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머리 위 말풍선으로 전달될 거예요. 이런 공간에서 10년을 교육받으면 살아가며 만나는 장애인을 안경 쓴 사람 보듯 대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교육이 실제 현실에서는 과연 불가능할까요. 친구가 교실에 늦게 도착하는 게 그렇게 큰 일이었을까요. 방과 후 교육으로 수어를 배우거나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도 필담을 나누면 되었을 텐데요.
짧은 글을 쓰면서 많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직접 노력해야 했던 일을 과거 교육 탓으로 돌리고, 자신도 하지 않을 일에 대해 타인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었어요. 통합 교육에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요. 그럼에도 삶에서 몰랐던 부분을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기에 글로 나누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활동이 아니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하고요. 장애학 책을 읽으며 몰랐던 예절을 갖추거나, 수어를 배울 수 있겠지요. 이후로 제가 장애인을 이해하려는 아주 작은 노력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전부 서울 국제 도서전에 갔다가 별생각 없이 산 이 책 덕분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일이야말로 SF의 역할이니, 모두에게 이 멋진 SF 이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