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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아 Jan 11. 2024

계속될 것 같았던 불행도 끝이 있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

우리는 모른다. 언제 이 행복이 깨질지.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다. 언젠가 부서질지 모를 행복이라면.... 그렇다면 또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이 불행도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불행과 행복은 하나같이 끝이 있다. 그렇기에 흐린 날들에 지치더라도 그 언젠가 볕뜰 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돌아보면 별일 아닌 일들도 어찌나 그땐 아프던지. 그렇게 우리는 늘 오르막 내리막을 걷는다. 문제가 닥칠 때 우리는 그것을 피해 달아나고 싶어 지지만 문제는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원래 폭풍우가 치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폭풍우가 더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니까. 우산도 비가 오는 방향으로 들어야 하듯 폭풍우를 통과할 때는 우리 앞에 온 문제를 바로 바라보자. 그리고 태풍의 눈이 고요하듯이 고요히 그 문제를 직면하자.  어떠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당신을 위해 해결하라. 그런데 사실 고통은 대부분 어찌할 수 없는 문제에서 발생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해결하고 나면 비가 끝나길 기대하듯이 가만히 인내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린 그렇게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을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내맡김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  내일이 두려워도 내일의 행운이 찾아올 수 있듯이 언제나 설렘은 불안처럼 공존한다. 설레이는 마음만큼 불안한 것이니까 늘 감정이라는 태풍의 눈에서 고요히 감정을 바라보자. 당신은 그것의 '주인'이다.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주체인 것이다. 감정이라는 폭풍우에 휩쓸리지 말고 그 태풍으로 걸어 들어가라. 태풍의 눈 속의 고요함은 그것을 바로 보는 '인지적 힘'에 있다. 인지적 힘은 묵상과 명상으로 길러진다. 내적 사유를 하기도 하고, 고요히 감정이 지나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에 꽤 큰 힘이 된다. 고통을 사유해 보고 내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아차리자. 그것에 폭풍처럼 울기도 해 보자.

하지만 고요히 또 그 시간을 흐르게 두어 보다 보면 당신은 그만큼 소중하기에 반드시 행복해야 할 것이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하나이다. 동전의 반쪽인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그렇다면 불행할 땐 지금 바로 동전을 뒤집어보자.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 내가 양극성 장애를 앓으며 아무도 나의 망상을 믿어주지 않았을 때 망연자실한 과거의 나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꽤나 슬프다. 공감해 주기 어려운 나만이 경험한 특별한 체험을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 때의 외로움이란. 하지만 그럼 어찌하는가. 불행에 매달려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지난날 아픔은 행복의 거름이 된다. 조금 더 일상적인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온전한 나의 정신이라던지. 나의 행복은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 있음에  있었다.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도 내가 나를 잃지 않는다면, 그래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당신에겐 소중한 당신이  있다. 나는 그런 당신을 영원히 응원한다.




나를 위한 꿀팁

TIP 날씨를 보듯 나의 행복과 불행도 바라보자. 할 수 있는 것은 우산을 드는 일이다. 할 수 없이 젖어가는 옷들은 조금 있다 해가 뜨면 마를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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