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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아 Jan 03. 2024

세계는 언어이지만 내면은 추상이다.

추상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생각의 단편들

그림은 정서적 안정을 주는 나의 힐링 도구이다. 나는 그림을 어려서부터 그리지 않아서 패션디자인 학과를 다닐 때도 곤란한 적이 많았다. 일러스트 수업 때 인물의 팔다리 길이가 다르다는 둥 교수님께 꽤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2021년 문득 물감을 잔뜩 사더니 의자에서 단 한 번의 움직임 없이 매일을 꼬박 10시간씩 여섯 달 줄곧 그림만을 그렸더랬다.

그 중에 지인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로 그린 것만 해도 40점 정도 된다. 그림이 중간 중간 팔리기도 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폭풍 같던 6개월이 지난 후에는 10시간씩은 아니고 서너 시간씩 집중하여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그때만큼 많은 그림이 펼쳐지진 않는다. 그림 한 점을 그리고 이야기를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그림에도 이야기가 쏟아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렇게 다른 사람 그림이 궁금해졌다. 누구나 안에 그림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당신의 그림도 궁금할 지경이니 말이다. 그림을 토하듯 그려낸 시간은 아마도 나를 다른 방식으로 만나보는 첫사랑같이 의미가 특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림으로 만나본 세상은 언어와는 또 달랐다. 그렇게 나는 실재의 내면세계는 추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말초신경까지 동원하여 언어로 번역하는 습관이 생기기 이전에는 분명 추상적으로 소통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손짓 발짓도 춤처럼 추상적인 소통 아닌가. 가끔씩 언어를 배우기 전에 아이처럼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일부 차단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의 이유는 체계적으로 언어화되면서 생긴 사고의 틀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추상이 건드려지기 위해서는 그림이 필요하다. 생각 속의 상상의 그림만으로는 재미없지 않은가. 진실한 내면의 소리, 자신의 또 다른 자아는 풀어낼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내면의 신비 또한 그림으로 깨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무질서하지만 질서 하게 하는 것이 그림이니까.

이 그림은 무의식의 바다에도 떠 있는 태양을 표현하였다. 내가 그렸지만, 정말 좋아하는 이 그림. 어떤 순간에도 내면의 '바라봄', '의식'은 떠올라 자기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를 그렸다. 그러한 내면의 태양이 무의식의 대양을 비출 때 우리는 깊은 욕구와 신성함을 인식하지 않을까. 우리는 때때로 자기를 인식하는 자세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자기를 내려다보듯이 인식하는 메타인지라고 하는 자기 객관화는 언제나 우리를 침착하게 하고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하게 하기에 자기를 또렷하게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리며 자기를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 중 하나이다. 나는 우리가 무의식의 바다가 아니라 태양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을 그림에 녹여내면서 나는 한 편의 경쾌함을 느꼈다. 예를 들어 '고통스러운 감정과 생각은 내 자신이 아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나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영화의 한편을 바라보는 관객이며, 연기자이기도 것이다. 하지만 연기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감독까지 되어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조금 더 자기의 인생의 주체성을 찾지 않을까? 아마도 좀 더 원활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내 삶을 떼어놓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자유를 느낀다. 자유자재로 살 것 같은 부자의 삶을 살아보아도 진정한 자유로움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마음대로 사는 것이 비단 자유는 아닐 것이다. 내가 의지하는 대로 삶을 계획한다고 해도 삶 속에 자유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해석은 내가 자유로이 하는 것이다. 그러한 우수한 감독이 속박될 필요가 있나. 우리는 다 주인공이자 감독 아닌가. 당신이라는 영화의 조연으로 또는 관객으로 딱 하나만 간섭하고 싶다.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간절히 말한다. 그 어떤 간섭에도 당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당신이니 늘 주인의식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의 그림이니 당신에게 초특급 힘이 되길 바란다. 삶의 해석의 주체자인 당신은 지금 이 순간 기분은 어떠한가? 그러한 기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또 그 다음 순간에는 어떤 기분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얼 해야 하는가? 당신의 질문도 듣고 싶다.  서로 질문하면서 크는 것 아닌가. 나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건강해질 것이다. 우린 다 다름 아닌 '나'를 만나러 태어난 것이니까!


나를 위한 질문

Q 나를 위해 지금 무얼 하면 좋을까요?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은 감독인가요? 주체성을 얼마나 가지고 계신가요? 저도 부족하지만, 주체성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의 주인으로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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