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가을만 되면 자기 동네를 꼭 거닐어야 한다고 몇 번을 힘주어 말했다. 견고하게 지어진 집들 사이로 울창한 나무들이
곧게 뻗은 Canterbury는 멜버른 동쪽에 있는 아주 오래된 동네다.
해가 기울자 거리는 노을빛을 더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언니와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소화나 시킬 겸 슬슬 동네 어귀를 걷고 있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집 창문 틈으로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언니가 멈칫했다.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언니가 말했다.
“나는 빵 굽는 냄새만 맡으면 슬퍼져”
1998년, 언니는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8인실 이층 벙커 침대가 빽빽이 들어선 방을 나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에 들어섰을 때 동양인 딱 한 명,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그저 막막하기만 했단다.
가만히 앉아있지만눈동자는 한없이 주위를 살피던 그때,
‘어떡하지…. 아 괜히 왔나? 어떡하지.."
컴컴한 우주에 덩그러니 버려진 기분. 두렵고 무섭고 외로웠던 그 낯선 감정은 한참을 울어도 멈출 수 없는 슬픔이라고 했다. 언니에게만 시간이 멈춘 듯, 모두 너무나 자연스럽게 흐르는 아침이었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며 자유분방하게 이야기 나누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언니만 정지된 사진 속 사람 같았다.
그때, 언니는 빵 굽는 냄새가 유난히 고소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제과점을 지날 때 나는 빵 냄새와는 다른, 더 진하고 고소한 이질적인 외국의 낯선 냄새. 20여 년의 흐른 지금, 불현듯 바람을 타고 훅 밀려온 빵 굽는 냄새에서
언니는 울컥한다.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그 낯선 슬픔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고 한다.
오랜 세월도 지우지 못하는 기억의 감각은 냄새로 혹은 음악으로 때론 맛으로 소환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그 오감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슬프게 누군가에겐 아련하게 기억될 것이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는 낯선 호텔 방에 들어갔을 때 풍기는 진한 청소용 락카 냄새를 맡을 때
‘아, 내가 여행을 왔구나!’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하얀 침대 시트에서 완벽한 리셋, 여행이 주는 설렘을 경험한다고 한다. 나에게 기억의 감각을 깨우는 것은 어떤 특정한 노래다. 추억의 노래쯤으로 되감아 볼 수 있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 노래를 들을때마다 나는 시공간을 넘어서 과거의 그 장소로 소환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중 <Merry Go Round of Life> 소피와 하울이 처음 만나 알프스 풍 성냥갑 건물 위를 발맞춰 나르던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이다.
그 노래를 들으면 네팔 포카라 시내의 달달한 짜이맛, 안나푸르나 로찌에서 설산을 올려다 보며 느꼈던 피부의 차가운 온도, 한낮에 따뜻했던 햇살, 새까만 하늘에 초코칩처럼 켜켜이 박혀 반짝이던 별, 까르르 웃음이 넘쳤던 내 가벼운 마음에,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던 너까지... 그 노래 안에 모두 저장되어있다. 어떤 기억은 잊고 싶다. 발기발기 찢어 공중에 날려버리고 싶고, 어떤 기억은 너무 좋아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항상 바지 포켓에 넣어 다니고 싶다. 그러나 힘든 기억은 힘든 기억대로 좋은 기억은 좋았던 기억대로 내 머릿속 기억저장소 어딘가에 머물다가 기억을 깨우는 특정 감각을 통해 무장해제된다. 한국에 가지 못한지 올해로 6년이 되었다. 내 기억 속 한국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다. 희미해져 가는 그 기억의 파편들을 나는 호주의 지나가는 계절의 냄새나 습도나 혹은 아이의 웃음속에서도 찾아간다.
오감을 활짝 열고 하루하루 살다보면 지나간 것에도 힘이 실린다는 것을 나는 믿고싶다.
빵굽는 냄새를 맡을때마다 슬퍼진다는 언니가 두달후면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제 서로 안부를 묻는 카톡을 주고 받으며 살겠지만 가끔 호주를 기억할때, 나는 언니의 좋은기억으로 소환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