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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Dec 04. 2020

"애 엄마도 하고 싶은 거 많아요"

마흔을 넘기면서 매일 주르르륵 갖다 쓰는

두루마기 휴지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처음에는 너무 초라해 숨고 싶었다.


우연히 찍힌 사진 속에 걸린 후덕함이

적나라하게 나온 나의  옆모습이라던지...
무척이나 부산하게 움직이다 찍힌

철퍼덕 퍼져버린 뒷모습을 발견했을 땐

어? 에이 설마.. . 이게 나라고...
빨리 지워라!!!!

인상 팍 쓰며 으름장을 놓는다.
사실은 알고 있다.

이 모습이 사람들이 바라보는 진짜 내 모습이란 걸.

육아로 소비해버린 30대를 지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조금의 자유가 주어진 마흔.
패잔병처럼 나는 외적 내적 부상이 심각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나는 왜

이 치열한 육아전쟁에 지친 나를 달래주지 못했을까.


<NBC 월드오브댄스 시즌 3 올레디 경연모습>
<AII Ready 올레디 댄스팀>

요즘 핫한 댄서 듀오가 있다.
미국 NBC 월드 오브 댄스 시즌 3에 출연해 베스트 4까지 올라가 유명해진 '올레디'라는 댄스그룹이다.
센 언니들의 무대를 씹어 먹는 현란한 춤사위를
보고 있노 라면 혼이 쏙 빠질 정도다.


왜 제시카 로페즈가 극찬했는지 알만하다.
나는 그중 핑크 브릿지 머리를 휘날리며

거친 입담까지 쏟아내는 언니 한 명이

8살 초등학생 엄마라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사람들도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 도전에 얼마나 많은 고난이 따랐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불가능이란 키워드에 맞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 줬기에 사람들은 그녀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몇몇 이런 도전에 성공한 강한 여성들에게 애엄마라는 부캐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이 함축된 훈장 같다.


"애 엄마가 무슨 노래를 해?"
"애 엄마도 하고 싶은 거 많아요"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어린 엄마 박보영이

하는 말은 한동안 내 귓가를 맴돌았다.

애 엄마는 제약이 많다.
애 엄마라는 편견에 맞서야 하고

애 키우는 시간과 나의 꿈을 나눠 써야 한다.
또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잘 저울질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낼 수 있다면

둘 다 잘한다는 조건하에

암묵적으로 꿈을 허락받는다.

결혼하고 꿈을 포기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줄곳 꿈을 꿔왔고 이루지 못한 채 결혼했고
그러다 잊혀진 꿈을 다시 재발굴했다는
도전 경연 프로에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꿈은 마음속에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어려울수록 그 간절함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된 후에  찾는 꿈이다.
첫 번째 좌절은 다 늦은 나이에 무슨.... 이란
생각이 발목을 잡는 것이고
두 번째 좌절은 가사노동과 함께 동시다발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가족 누구의 지원도 녹록치 않다면

포기가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럴 땐 과거의 나를 후벼 파는 방법밖엔 없다.
문간방에 오래 묵혀두었던 젊을 때 나,
온전한 내 이름 석자로 보존되어 있는

과거의 나에게 묻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결이 사람인가....

사막에서는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둔다.
그리고 아침에 끈을 풀어놓지만 낙타는 달아나지 않는다. 묶여 있던 밤을 기억해서다.
조금의 시간이 주어졌을 땐  나 또한  사막의 낙타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기억이 지워져 버린 것처럼...

나는 요즘 더 많이 나의 문간방을 열어본다.
삐~걱 요상한 기계음 뒤로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나의 젊음을 만난다.
하루에도 수차례 "안녕"하고 들어가

과거의 나를 소환한다.
꾸준히 오래 계속하다 보면 지금부터
진짜 되고 싶은 미래의 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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