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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Dec 04. 2020

"남편은 왜 애정결핍이 생겼을까"

남편과의 주된 말다툼은 그 말을 전에 했네 안 했네로 시작하는 실랑이다.
그러다 보니 신랑은 접전을 오가는 싸움 중에  

휴대폰 녹음기를 켠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말이 나근나근해지니
싸움이 종전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도둑 녹음이다.
적나라한 말들이 그대로 담긴다.

"아, 귀찮아. 저리 좀 가.
"더워. 좁아. 좀 옆으로 가"
"저 방 가서 자면 안 돼?"

퀸은 너무 작아 안된다고 킹 침대를 사고도 이런다.
13년 차 부부 침대에서 오가는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된 걸 들으면 도를 넘어선 나의 핀잔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남편은 자기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다.
처음 2년은 멋모르고 뛰어다녔고
회사가 자리가 잡히고 직원이 늘면서
그는 역대급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껴앉았다.

남들은 가족과의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빡빡한 삶이 괴로워 외국으로 이민을 오고 싶어 하는데,
정작 외국에 사는 우리는 한국보다 더 혹독한 삶을

버텨내야 했다.

이민 초기 정착 중이라면 당연 이해라도 한다만
이민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들이닥친

남편의 빈자리는 아이들과 나를 불안하게 했다.

TV 다큐 프로그램에서도 간혹 나오듯
호주는 가족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다.
밤 문화가 없으니 자연스레 레스토랑도 일찍 문을 닫고
일찍 퇴근해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과 자신의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일은 거들뿐,
그 이상으로 넘치게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
야근과 일에서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가족 중심의 분위기에서
독박 육아 중인 나는 항상 도드라져 보였다.
어린 아들 두 놈을 데리고 억척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외로움으로 숨죽여 눈물 흘린 날도 많았다.
당연히 남편과의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0순위로 둬야 한다는 것이었고
남편은 일이 잘 굴러가야 가족도 지킬 수 있다는 주위였다.
우리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툼과 냉대와 내려놓음을 번갈아 가며 세월을 맞았다.

이 문제도 점점 굳은살이 배겨 무뎌졌을 무렵이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부터 였을까.

남편이 내 등에 딱 붙어버렸다.
그게 귀찮아 모진 말로 떼어내어도
그는 다시금 자석처럼 나에게 들러붙었다.

작년, 나보다 두 살 어린 남편의 마흔 생일잔치를
호들갑스럽게 치러주면서도 알지 못했다.
그에게 중년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여자라면 폐경과 갱년기라는 거대한 산을
언젠가는 맞다 뜨려야 하므로 마흔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연스레 대비한다.

그런데 일중독에 빠진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같이 찾아온
외로움 쓸쓸함 허무함의 3종 콤보의 쓰나미에

그대로 녹다운되었다.

그는 자주 말했다.
하늘과 바다색이 같은 태평양 작은 휴양지에서
손 하나 꿈쩍하지 않고 먹고 자고 데굴데굴 굴러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가족여행을 내심 기대한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유전자라고 열렬히 그를 비난했다.

지나서 곰곰 생각 보니
그것은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남편의 간절한

구조 신호였나 보다. 손 내밀 곳이 나밖에 없었겠지.
우리네 아버지처럼 가족을 먹어 살려야 한다는 막강한 책임감. 해야 한다는 부담감.
위에서는 눌러대고 옆에서는 자꾸 밀어대고
잠깐의 빈틈도 허락되지 않는 일터에서
그도 기댈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느티나무 고목에 앉아 한숨 돌리고
바람도 느끼고 땀도 식히고
잠깐 행복한 상상도 해보고 싶었겠지.


"아빠 힘내세요"
"여보, 힘내, 잘할 수 있어"

이런 응원이 나는 왜 잔인하게 느껴질까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는 말은
채권자가 빛 독촉을 할 때나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다.

힘을 다 쓴 사람한테 또 힘을 내라니.
그냥 그동안 참 잘 해왔어.
조용히 그의 지친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는게 

그를 집어삼킨 쓰나미 속에서 그를 빼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닐까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는 백 퍼센트 충전 후
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생명력 또한 길어진다.
몸이 완전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면

바닥에 땅을 짚고 그 반동으로  

다시 치고 올라오면 그뿐이다.

그가 애정결핍을 진단받고
나는 처방전을 이렇게 내렸다.

안아달라고 지친 어깨를 내어달라고
쉴 자리를 찾는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자, 이제 좀 쉬어가. 좀 퍼져 있어도 돼.
너무 힘주어 살던 삶에 힘을 완전히 빼고
너를 한번 방전시켜봐


다시 충전 가득 채워 돌아갈 일터에서
조금은 여유로워지기를 진심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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