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주변 소음 때문인지 으레 그렇듯 별 반응이 없자 엄마에게 첫째 아이가 뛰어와 동생의 상태를 전한다.
"괜찮아. 별거 아니잖아. 응?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을 깼다. 아이는 그네에서 떨어져 나름 심각한 부상을 얻었다. 엄마는 헐레벌떡 뛰어가 아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살피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가슴을 쓸어 담는다.
"엄마 나 여기 아파." "엄마 형이 밀어서 이렇게 됐어. "으악... 엄마 벌레가 나를 공격해.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는 아이에 대한 면역이랄까. 피가 철철 흐르는 외상 후 상처가 아닌 이상 나는 으레 그러려니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호 하면 다 나아"
아이는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의 아픔을 전하며 엄마 품을 느끼려 한다. 연년생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나는 특히 목청이 큰 첫째 아이가
"아~~~ 으악~~~ 엄마!
비명을 질러대면 재빨리 문부터 받는다. 그 고통을 나눌 여유가 없을 땐 아이의 아픔에 곱하기를 해주는 셈이다.
나도 아이를 위로하고 내 힘을 덜어 아이의 고통을
공감하고 싶지만 내 마음 그릇이 작아 아이의 것까지 담아 갈 수 없을 땐 모진 엄마가 된다. 아이가 자신의 아픔을 목 놓아 알리는 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위로할 거라는
엄마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아이가 뛰어가다 아스팔트 위에 넘어져도 아이는 바로 울음을 터트리지 않는다. 아이도 안다. 괜찮냐고 물어봐 줄 누군가 없다면 아이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쪼르륵 달려가는 엄마를 발견한 아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슬펐던 외로웠던 아픈 마음을
폭풍처럼 쏟아 낸다. 더 큰 목청으로 더 큰 울음으로
나 이렇게 아팠어. 빨리 어루만져 줘. 하고...
그럼 이미 커 버린 어른은 어디서 위로받아야 할까. 스스로 후시딘을 면봉에 발라 상처에 치덕치덕 해줘야 하는 것일까.
어른이 되고 보니 아프다는 말에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특히 마음의 상처는 꽁꽁 숨기거나 어느 특별한 순간에 익을 때로 익은 채 퍽 터져 밖으로 쏟아진다.
차라리 피가 철철 흐르거나 팔이 부러지는 외상 후 상처라면 대 놓고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 속에 치료받을 수 있을 텐데 마음속 상처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는 빛이 사라진 어두운 동굴 안에 집을 짓고 마음속 더 깊이깊이 들어가 온몸 장기를 휘저어가며 곪는다.
나 또한 한때 친구관계 속에서 힘든 적이 있었다. 평범한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 뒤통수를 퍽 가격 당한 것만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믿음에 대한 배신감, 오고 가는 수많은 말들 속에 오해는 산을 이뤄 결국 서로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세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만큼 마음의 상처는 제대로 생활이 안될 정도로 나를 흔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다 지나갈 거야. 잊어. 그럼 괜찮아질 거야. 그냥 덮어"
나는 시간이 꽤 흐른 후에도 괜찮지 않았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왜 잊어야 할까. 아직도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왜 잊고 덮고 외면해야 하는 걸까.
나는 다친 마음을 햇빛 좋은 날 툭 꺼내 평상에 펼쳐놓기로 했다. 먼지 쌓인 날은 툭툭 털어 깨끗이 씻어주고 덧난 마음의 상처엔 후시딘을 살살 발라주며 상처를 치료에 갔다.
그리고 나는 점차 괜찮아졌다. 마음의 상처를 매일 들여다보고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쏟자 상처는 점차 아물었고 "이해"라는 선물을 두고 떠났다.
물론 상처 부위에 아픈 기억이 흉터로 남았지만 그 어떤 상처에도 새살은 올라오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마음 근력이 되어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
가끔은 어른이 된 우리들도 아이처럼 아프다고 호 해달라고 마구마구 떼를 써보면 어떨까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