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특파원 소식] 아이들과 코로나를 헤쳐나가는 사회
[해외특파원 소식]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를 헤쳐나가는 사회 시리즈 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각 국가의 어른들과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정책적인 배려부터 몇몇 좋은 어른들의 따뜻한 사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소개할 미국, 폴란드, 독일, 홍콩, 영국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힘을 냈다가 지쳤다가 막막했다가 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가 매일 같은 장소, 집에서 일하고 자고 먹고 살아가는 하루가 느린 듯 바쁜 듯 정신없이 흘러간다. 믿거나 말거나 어느덧 2020년도 반을 항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셋이 복닥거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한 달간의 기록.
두 달여 지나고 나니 이런 생활도 익숙해진 건지 아인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도 회사로 출근하는 시간이 오면 다시 오지 않을 (않아야만 하는) 특별한 시간들이 한편으로는 서운할 것 같기도 하다. 집 앞에서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는 아인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앞 집 아저씨께서 “힘들지? 그래도 나중에 이 시간을 추억하게 될 거야.”라고 얘기하셨다. 그렇다. 아무리 끔찍한 상황 속이라도 분명 좋은 기억과 긍정적인 면면들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늘 그랬듯 나중에 돌이켜보면 좋았던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나의 주말은 전보다 더 특별해졌다. 반강제로 집에 갇혀 아인이를 돌보며 정신없이 일하다가 삼시세끼 해 먹고 지쳐갈 때 즈음 맞이하는 주말이 요즘은 더더욱 반갑기만 하다. 닫아버린 공원이나 산책로, 해변을 제하고 5마일 이내에서 갈 수 있는 한정 적인 선택지 속에서 한두 시간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사람 대신 자연을 만나서 한 숨 돌리는 주말의 시간은 다음 한 주를 준비하는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주변에 산과 바다를 포함한 공원이 가까이 있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자연 속에서 걷기만 해도 얻는 에너지는 대단하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근처의 밀브레(Millbrae)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샌프란에서는 차로 30분 정도 걸리고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비교적 가까운 주거 중심의 외곽도시이다. 주로 단독 주택들이 즐비한 곳으로 집 밖을 나서면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산책을 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많은 낮은 밀도를 가진 동네에 살고 있다. 요즘 같은 때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산책할 수 있는 곳에 사는 것이 장점으로 느껴진다.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서부의 메인 도시이다. (1km2당 7022명, 서울 1km2당 16700명) 쉘터인 플레이스(Shelter in Place) 이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살고 있는 몇몇의 지인들을 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외부 공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살면 꼭 차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차가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교통이나 택시도 제한적인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캘리포니아 주 전체적으로 쉴터인 플레이스가 시작되면서 가벼운 산책이나 하이킹은 허용되었고 초반에는 공원이나 트레일들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쇼핑몰이나 식당, 놀이터나 체육시설 등은 다 닫다 보니 갈 곳이 없고 (최대한 집에 있으라는 의미이긴 하다.) 그래도 집에만 있기 답답한 사람들이 주말이면 바닷가로 산으로 공원으로 더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바닷가, 트레일, 공원마저도 시간차를 가지고 임시로 문을 닫기 시작했다.
반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사람들에게 열리기 시작했다. 최근 SFMTA (San Francisco Metropolitan Tansportation Autority)에서 샌프란시스코 12개의 로컬 도로를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슬로우 스트릿(slow streets program) 정책을 발표하였다. 도로에 면한 곳에 사는 주민의 차량이나 비지니스, 긴급 차량은 여전히 도로를 통과하지만 다른 차량은 통제되기 때문에 보행자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가기에 더 여유로운, 느린 거리가 되는 것이다.
동네의 로컬 도로뿐 아니라 몇 개의 주요한 도로도 임시로 닫고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 격인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파크를 관통하는 도로인 JFK Drive를 닫아 사람들에게 내어주었다. 과거 군사시설이었다가 공원으로 변모한 용산 공원의 롤 모델이기도 한 프레지디오(Presidio)공원의 한 도로는 임시 하이킹 트레일로 바뀌었다. 샌프란 야경을 보는 투어리스트 스팟으로도 유명한 트윈픽스(Twin Peaks)로 올라가는 한 도로도 임시로 닫았다.
도로는 갑자기 사람들의 앞마당, 광장, 공원이 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보너스처럼 사람들에게 내어진 길에서 걷고 달리고 자전거도 타고 분필로 바닥에 그림도 그리며 잠시 여유를 느껴본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이 계속 집에 있으면서 가족과 함께 자전거와 씽씽이, 롤러스케이트 등을 마스터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인지도 잘 몰랐던 이웃과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근처에 살고 있는지 몰랐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는 기사도 본 것 같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난 후에도 일부의 도로는 지금처럼 이웃과 소통하는 집 앞의 동네 앞마당, 동네 공원으로 유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12개의 슬로우 스트릿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진화하고 있고 다른 캘리포니아의 도시인 오클랜드나 엘에이도 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얼마 전 집 근처의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공원에 인접한 넓고도 평화로워 보이는 골프 코스 옆을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골프코스를 닫아 두는 대신 사람들에게 개방하면 좋을 텐데.’
쉘터인 플레이스가 시작되며 골프를 포함한 대부분의 운동이 제한되었다. 슬로우 스트릿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샌프란시스코 프레지디오에 있는 골프코스가 퍼블릭에게 공원으로 개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쉘터인 플레이스가 2단계로 완화되어 골프를 치는 것이 허용되었고 다시 골프코스는 골프 이용자들에게 열렸지만 잠시 동안 주변 이웃들이 공원을 이용하듯 넓은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니 도로를 사람들에게 내어 주는 것과 결을 같이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난주부터 공원 일부도 문을 열었고 하이킹 코스, 바닷가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사진 지형적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원 중 하나인 돌로레스 파크도 다시 문을 열었다. 경사진 잔디밭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며 피크닉을 하고 운동을 하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꽉 찼던 돌로레스 파크에는 사회적 거리인 6피트(1.5미터)의 동그란 원들이 그려졌다. 새로운 일상 속에 공원도 새로운 옷을 입었다.
브루클린의 도미노 파크도 지난 주말 공원 잔디밭이 동그란 옷을 입었다.
지난 두 달간 새로운 일상, 새로운 주말의 시간 속에 살면서 앞마당, 뒷마당, 동네길 구석구석의 소중함을 매일 느끼고 있다. 주말이면 그동안 몰랐던 집 근처의 트레일, 해변, 작고 큰 공원들을 찾아다니며 집 주변 공원 지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매일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원, 정원, 광장, 거리 등의 오픈스페이스를 디자인하고 고민하는 조경가로서 다시금 오픈스페이스 존재의 중요성, 접근성, 새로운 역할 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뉴 노말, 새로운 일상 속에 공원, 오픈스페이스 또한 새 시대의 요구와 필요에 맞춰 유연하게 진화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