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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ul 08. 2020

독일의 성교육을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성에 대해 말을 건네는 솔직한 사회]

인종, 젠더 등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각 국가의 어른들과 사회가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 알아봅니다. 정책적인 배려부터 유치원, 학교 교육이나 도서관 등 제3의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각 국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도록 어떤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소개할 해외특파원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시작은 이것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jinmin111/84

(제가 이 곳에 쓴 글 중에서 가장 공유수가 많았던 글입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함께 분노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서 최근, 생후 6개월 된 아기까지 성착취물에 이용했던 세계 최대 아동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가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되었습니다. 너무 배고파 달걀 18개를 훔친 사람에게 구형된 형량과 같은 형량을 받았다는 점이 회자되기도 했지요. 다시 짖으며 날뛰는 제 마음속 시베리안 허스키를 달래느라 애먹었습니다.


이전 글의 서두와 결론을 담당했던 ‘개지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모든 씨앗은 교육과 문화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성교육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SEE SAW의 해외특파원 모임에 각국의 성교육 실태 시리즈를 제안해 보았습니다. Zoom과 카톡으로 모인 공간에서 각국의 성 문화나 성교육에 관해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정말 놀랄 만큼 신기하기도, 놀랄 만큼 당황스럽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 어느 주제로 대화를 나누든 늘 엄격, 근엄, 진지를 담당하는 독일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시는 분들도 계셔서 이번 시리즈 주제는 인종과 젠더 문제를 포함한 '다양성'이라는 큰 틀로 조금 유연해졌지만, 저는 성교육이라는 좁은 주제에 포커스를 맞춰보도록 할게요. 성교육으로 주제를 집중시키는 이유는, 독일에서는 성교육만으로도 더욱 관용적이고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 어린 나이부터, 단계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앞서 링크한 제 글에도 들어있지만, 독일 아이들은 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굉장히 솔직 담백한 교육을 받습니다. 유치원생을 위한 낱말 사전에 'Sex haben'이라는 동사가 위풍당당하게 들어있죠. 크흠.


1) 3살 이상부터 초등학교 이전: 솔직 담백하게 접하는 아기의 탄생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주로 동생이나 사촌의 탄생을 접하게 되겠죠. 그래서 임신과 출산, 즉 아기의 탄생과 관련된 그림책이 많이 나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 코너가 따로 있을 만큼 종류가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예쁜 그림과 아이들의 언어로 두루뭉술, 모호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솔직 담백하게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이런 부분들이 가감 없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신체와 성에 대한 입문서 같은 개념으로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한 번 보실까요.

요런 건 예쁘고 별 부담 없죠
흠. 아이 그림책에서 털(a.k.a.거기카락)....이 성실히 표현된 그림은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처용 설화에 등장하는 "가라리 네히어라"가 보이시나요. 수줍은 저는 여기서부터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음?
아이씨 깜짝이야. (놀라실까 봐 작은 사이즈로 올려봅니다. 저자는 Per Holm Knudsen로 덴마크 사람이고, 이 책은 자그마치 1971년에 발행되었습니다.)

네. 이렇습니다. 마지막 그림책은 영미권에서조차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줄 만한 책"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곤 하더군요. 한 마디로, 쉬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동글동글 세포 차원에서 만나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적인 성관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솔직 담백함. 이게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줄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독일에서는 후자로 생각하는 것 같죠?괜히 비밀로 꽁꽁 싸둬 애먼 상상력만 불러 일으키지 말라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2) 초등학교 저학년: 신체 및 성에 관련한 기초 상식과 일상 속 아동 성폭력 대비


독일은 교육 당국이 성교육에 관해 일일이 간섭을 하지는 않지만 '만 6세인 초등학교 1학년부터 10학년(고교 1학년)까지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폭넓은 지침과, 이를 통해 '성은 인권이며,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게 하라'는 목표는 명확히 갖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성교육은 주마다 도시마다 학교마다 굉장히 자율적으로 시행됩니다. 저희 아이들은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성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주위 사례를 보면 주로 3학년쯤(8-10세)에 첫 성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성교육은 주로 신체와 성에 관련된 상식, 아기를 갖는 사람의 마음 자세, 그리고 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성폭력에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하는데, 일상 속의 성폭력 대비 교육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제가 독일 초등학교 성교육과 관련해서 가장 흥미롭게 본 기사는 한겨레에 실린 기사인데요. (관심 있으시면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그중에서 '각각의 설명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려내고 만일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써가는 숙제'가 제일 인상 깊어 여기에 이미지를 옮겨 봅니다.

친구, 이웃, 근친 간에 일어나는 일들의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고, 이에 관해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클릭해서 읽어 보시기를!


3)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또래들과 자연스럽게 피임법과 각종 성 고민을 다룸


5학년쯤 되면 저런 이론적 차원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서로의 몸을 그려보게 한다든지, 점점 생겨나는 궁금증을 해소할 공간을 만들어 준다든지. 6-7학년(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성병과 피임법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다룬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와는 달리, 어떤 자료에도 청소년기의 성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은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안전한 자위의 방법도 알려준다는군요. 이 시기의 교육은 성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에이즈나 성병, 원치 않는 임신 등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지를 교육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 시기고요.


여기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이들이 혼자만의 방법으로 왜곡된 정보를 얻는 일이 없게끔 무엇이든 편안하게 물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 그리고 남녀 학생들을 적절히 통합하고 분리해 가며, 또래의 이성 친구들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뒤틀린 생각을 갖지 않게끔 해준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여학생들의 많은 수가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저는 참 마음 아팠거든요. 독일 사례를 찾아보니 12-18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남·녀 학생들에게 서로 궁금했던 것을 익명으로 질문하게 하는데, 질문들이 아주 귀엽고 어이없습니다. 남자들은 왜 아침에 발기를 하는지, 여학생들도 자위를 하는지, 생리로 피를 많이 흘리면 의사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닌지, 흑인과 백인은 정액 색깔에 차이가 있는지 등 정말 다양한 질문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독일 아이들도 성이라는 주제를 부끄러워 하지만, 잘못된 것도 두려울 것도 아니라는 식의 교육이 아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하여 아이들은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애가는 것은 물론, 각종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배워간다고 합니다.

섹슈얼리티와 성에 관한 5-10 학년용 교재
비슷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청소년용 교재들

표지의 무지갯빛에서부터 드러나듯이 다양성이 기본 전제가 되고, 아래 표지들의 제목과 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청소년기 몸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성적 호기심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이성교제와 성관계 역시 전혀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고요. 우리나라처럼 청소년기에 성관계를 금지시키는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그 대신 책임감과 이성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자신을 보호하는 법과 올바른 행동 요령을 알려주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교육은 학교 선생님이 아닌 전문가에게 맡긴다


1) 그럼 누가?


앞서 밝혔듯이 독일은 정부 당국이 통일된 성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지침과 목표만 설정하고, 그 안에서 주별로 도시별로 학교별로 다양하게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교 성교육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전문가들에게 성교육을 분업화한 건데요. 지역마다 여러 단체들이 있어서 서로 경쟁하고, 선택은 학생들이 한다고 하네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전달되게 한다고 합니다.


수도 베를린의 경우에는 10여 개의 성교육 전문기관이 있다고 해요. 전문기관에 속해서 직업적으로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교육학 학위가 필요하고, 학위를 갖추면 자체 교육을 받고 성 상담사 자격증을 받아야 성교육 담당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전문기관이 아닌 시민단체들도 많은데,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하기도 하고, 지역 의대생 언니/오빠/형/누나들을 중심으로 수업을 꾸리기도 합니다. 지역 의대생들이 담당하고 필요한 비용은 기부를 받아 충당하는 무료 수업은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하네요.


2) 왜?


본격적 성교육은 왜 선생님이 아닌 전문가들이?


“학생들이 부모님 얼굴도 아는 선생님에게 ‘섹스’, ‘자위’, ‘포르노’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까요? 언제든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는 선생님은 아이들이 안전함을 느끼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파괴하는 존재가 됩니다."


“성 정체성이 다양한 만큼 교육법도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독일 공교육은 여전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기 어렵죠. 결국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전문 기관을 만들어 낸 겁니다. 굳이 한계가 분명한 학교로 교육을 단일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도 중요합니다. 저희 단체는 강사를 만 30세까지로 제한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성교육 선생님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아무 질문이나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3~4년 전까지만 해도 10대였던 우리를 학생들은 형, 누나처럼 느끼고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저희 역시 학생들의 고민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제가 했던 고민과 똑같으니까요.”


(이상은 베를린 성교육 총괄 담당 핸드릭 씨, BALANCE의 성교육 담당자 얀츠 씨, 시민단체 LORA 소속 의대생 요나스와 레베카의 인터뷰를 조합하여 재구성한 답변입니다. 출처는 여기에.)


3) 어떻게?


자유로운 교육법을 인정하는 대신 목표는 분명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게 하라’는 것. 독일에서는 성소수자 선생님들도 차별 없이 존중받고 있고, 성 정체성은 ‘인간의 권리’로 교육됩니다.


제가 찾아본 많은 사례에서 독일의 전문가들은 "성교육은 생명교육, 인권교육이자 문화교육"이라는 점을 되풀이 해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좋은 성교육이라는 것은 "어린 나이 때부터 우리의 삶이 다양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 " "생명과 인권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좋은 성교육은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인권 개선에 기여하기 때문에 성교육만으로도 더 관용적이고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독일에도 가톨릭이나 무슬림처럼 순결을 중시하는 종교를 믿는 학생들과 부모들은 성교육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다양한 성 관념을 공유하고 차이를 존중하게 하려면 역시 성교육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 독일의 입장입니다. 베를린의 성교육 시민단체 LORA에서는 특히 난민에 대한 성교육도 진행한다고 하는데요. 난민 가정 아이들이 독일에 오면 1년 정도 독일어를 배우게 되는데, 이 수업 과정에 참가해 성교육 수업을 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문화권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캣 콜링(길거리에서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이  독일 사회에서 왜 지탄받는지 등을 알려주는데, 이런 면에서 성교육이 곧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법을 알려 주는 문화교육이 된다고 합니다.


3.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가


이렇게 너무 구체적인 교육이 오히려 쓸데없는 호기심을 부추겨 역효과를 낳지는 않을까요.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요즘 청소년들은 인터넷에서 어떤 정보든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제한하기보다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를 글로 세세히 설명하기보다, 소개 동영상 하나를 첨부할까 합니다. 일찍부터 성에 대해 얘기하게 되면 피임약을 사거나 병원에 가는 것이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다는 어느 10대 소녀의 이야기,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할 줄 알듯 우리는 콘돔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 등이 담긴 영상을 하나 링크할게요. 2010년, 즉 10년 전 영상이라 지금은 많은 것이 또 새롭게 바뀌었지만 그래도 독일 성교육이 궁금하신 분들은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YPwYr2S-M


4. 우리나라는?


저는 원래 어느 한쪽만 좋고 다른 쪽은 형편없다, 이런 식의 결론을 굉장히 경계하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편을 들어줄 수가 없...


앞서 제시된 독일 자료들에 반해 우리나라의 자료는 뭐랄까... 한 번 보시죠. (2017년 자료입니다.)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 가급적 알바를 하지 않는다... 아 네.

일단은 피해자가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입니다.

애초에 예방을 잘하고 거절을 잘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피해자가 잘못 처신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사실 그렇게 쉽게 피할 수 있는 거였던가요. 만원 지하철에서 저런 일이 생기는 경우, 그냥 피하거나 가방 끈을 길게 뒤로 매고 실수인 척 발등을 밟으라는 대처법도 영 탐탁지 않네요. 한 번 발등 밟히고 말 일이면 왠지 용기(?)를 얻어서 계속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 드나요.  


저는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이라고 나온 게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인 부분에서 사실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술을 먹다가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어서 상대가 돈가스 찍어먹던 포크로 지금 저를 위협해요. 너무 무서워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 술을 먹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 시비가 붙었다니까요.”

“..... 술을 먹지 마셨어야죠.”


네??????????

그리고 여기에 이르면, 지금 이 이미지 파일 안에 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단연코 눈에 띄는 것.  

민감하고 말 많고???????

(이러깁니까 진짜...)
남성성은 모험적이고 진취적이고요? 여성 대통령이 있던 시절에 이런 걸 6억 원을 들여서 만드셨다고?


아래의 이미지를 보다 보면 강한 회의감마저 듭니다. 2015년 1월에 발표된 성교육 표준안을 기초로 한 자료라고 하는데요. 제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전부 구해 읽지 못하고 어느 보도 자료의 이미지를 가져온 건데, 누가 이거 틀린 내용이라고 얘기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아래 내용이 워낙 여론 뿐 아니라 외신의 뭇매까지 맞아서 나름 고친다고 고친 것이, 앞서 보여드린 2017년 자료라고 합니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

보고 싶지 않지만 하나하나 차례로 봅시다.


- 이성교제가 건전하지 못했을  성폭력이 발생할  있답니다. , 건전한 이성교제를 하면 성폭력은 대체로 발생하지 않는군요. (근데 건전한 교제는 어떻게 하는 거더라?)


- 남성이 돈 많이 쓰면 보답(... 말하고 싶지 않네요)을 원하게 마련(!! 마련??)인데, 이때 자칫하면 데이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군요. 여성들이 은혜 갚는 까치가 되지 않아서 폭력을 당하나 봅니다.


- 여성이 거절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면 성폭력, 임신, 성병 등을 많이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 네. 우리가 원래 이성적인 토론으로 성폭력과 성병을 잘 예방할 수 있죠. 암요.


- 생물학적인 측면의 성과 사회적인 측면의 성까지는 나름 좋았는데 그래서 딱 두 개 밖에 없다고요? 정말?


- 미혼 여성은 외모를, 미혼 남성은 경제력을 높여서 배우자를... 뭐라고요? 우리 할머니도 이런 소리 안 하셨는데!!!!!!!!


- 동성 간의 사랑을 인정하는 건 내가 바라지도 않았지만, 나이가 차면 꼭 결혼을 해서 아기까지 낳으라는 옛 으른들 같은 말씀을 꼭 여기다 해야 하나요? 결혼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아이를 선택지로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 어떤 사정으로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커플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난임부부들은 모두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닌 걸까요? 이런 문장을 왜 굳이 여기에 넣어야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이 표준안에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받을 상처는 아랑곳없이, 미혼모와 미혼부를 폄하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많이 비뚤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표준안’이라는 단어 자체도 저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성 문제에 표준이 있다니요. 독일의 한 성교육 전문가는 "성은 한 사람과 사회와 국가가 평생 동안 다뤄야 할 주제"이며, 그렇기에 시간을 두고 현실에 맞는 생각과 교육을 부단히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표준안이라는 단어로 이것이 마치 바뀔 수 없이 옳은 답인 양 선언적인 지침을 만들기보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 느린 걸음으로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고 맞춰 나가는 그런 모습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최근에,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706081400054

아니 대체 이 중요한 걸 왜 못하게 하는 걸까요.

아이들이 콘돔을 사기 부끄러워 비닐을 끼고 시도하다 찢어지곤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생리대를 사지 못해 신발 깔창을 이용한다던 이야기 이후로 아아악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였어요.
콘돔은 인간이 사서는 안 될 불지옥의 고무풍선이라도 되는 걸까요.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현실 인식, 그리고 너무 쓸데없이 낯 뜨거워하는 분위기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내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성교육이 꼭 좋다는 건 아닙니다. 반드시 이렇게 가자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 나름의 속도와 고려해야 할 감정들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저 우리 국경 밖의 어떤 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견문이 짧아 디테일까지 제대로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분위기는 전해졌을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성교육이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몰라도 돼, 공부나 해, 이런 자세로 두루뭉술하게 상상력만 키우게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궁금해해도 괜찮다고, 솔직해도 된다고 일러주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력을 키워주는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영어 수학 수업과 성교육 수업 중에서 뭘 선택하겠냐고 하면 저는 고민 없이 후자를 택할 겁니다.
영어 스펠링 모른다고 큰일 나거나 수학 문제 못 푼다고 잡혀가는 거 아니지만 성 문제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잡혀 갑니다. 

되풀이되는 성범죄를 향한 분노들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온 상처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부디 이 들끓는 분노가 효과적인 힘으로 모여 아이들이 이미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료해 주고, 자라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 줄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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