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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21. 2020

 홍콩, 다양성과 그 이면

[어린 시절부터 다양성에 대해 말을 건네는 솔직한 사회]

인종, 젠더 등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각 국가의 어른들과 사회가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 알아봅니다. 정책적인 배려부터 유치원, 학교 교육이나 도서관 등 제3의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각 국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도록 어떤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소개할 해외특파원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중경상림" 중 양조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아니 아니, 이거 말고요. (저도 이 장면 매우 좋아합니다만..오늘 할 얘기는 아닙니다.)

영화의 배경인 청킹 맨션

영화는 바로 이 곳, 홍콩의 "청킹 맨션"이라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첫 에피소드에서 낯선 여자가 맨션 속을 마구 누비고 다닙니다. 왕가위 감독의 감각적인 카메라는 마치 마굴(魔窟) 같은 청킹 맨션의 구석구석을 훑습니다. 서양인처럼 금발 가발을 쓴 동양 여인, 배경에는 중국인들과 중동계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요. 이런 청킹 맨션 안은 마치 과거의 홍콩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여러 국적과 문화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다양성(Diversity), 홍콩의 아이덴티티

실제로 다양성은 홍콩을 정의하는 말 중 하나일 거예요.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서구권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고, 아시아의 금융, 교통 허브로 자리 잡으며 전 세계에서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이 곳에 머물렀다 떠나기 때문이지요.


홍콩이란 사회가 가진 외면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가장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 때 저희 아이가 다니던 데이케어는 대부분 코카시안 아이들에 가끔 히스패닉이 섞여 있었고, 동양인은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또 뉴저지에서 다니던 프리스쿨은 한인이 많은 동네다 보니 대부분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인이었고요. 그래서 이 곳에서 처음 교실을 보았을 때 '아, 이게 바로 다양성이구나'하는 마음이 바로 들 만큼 다채로운 아이들이 섞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종과 국적의 다양성

제가 느낀 것처럼 정말 홍콩에는 외국인들이 많을까요? 실제로는 홍콩 거주 인구는 중국계가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해요. 하지만 홍콩 내 비 중국계 외국인 숫자는 최근 증가 추세인데요, 홍콩 통계청에서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 중국계 인구가 10년 전에 비해 70퍼센트가 넘게 늘었다고 합니다[1]. 또한 아래 자료에서 드러나듯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넘어오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영미권이나 기타 유럽 국가 출신의 외국인의 수도 상당히 많습니다. 

홍콩 내 외국인 숫자(왼쪽: 홍콩 통계청, 오른쪽: 홍콩 이민국)

드나드는 외국인이 많다 보니 내외국인 간의 차별도 많지 않은 편입니다. 7년만 살면 영주권이 나오고, 영주권 취득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홍콩 아이디를 발급받을 수 있어서 여러 복지 시설이나 사회 활동에 제약이 없거든요. 미국에서는 비자 발급부터 까다롭고 비자의 종류마다 취업 활동 등 여러 제약이 많았던 것과 대조적인 부분이에요. (입국하는 순간부터 죄짓는 느낌..)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

홍콩의 풍수 셀럽(?) Thierry Chow

모델 같아 보이는 위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홍콩에서 유명한 풍수 전문가, Thierry Chow입니다. 요즘 시대에 풍수라니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 곳도 풍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요, 집을 사거나 가게를 차릴 때 풍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다른 건 다 마음에 드는데 풍수가 안 좋아서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두 명이나 암에 걸려 고민 끝에 결국 집을 안 샀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Thierry Chow는 풍수를 대단히 힙하고 모던한 컨셉으로 접근하고 있단 거예요.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아서인지 영어에도 능통하고, 풍수를 인테리어 디자인과 접목시켜 다양한 고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동서양이 만나는 지점 아닐까요? 


또, 홍콩에서는 크리스마스도 설날만큼 크게 축하하고, 부활절도 단오절만큼 꼬박꼬박 챙깁니다. 도심에 무슬림 사원도 도교 사원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요. 실제로 퓨 리서치 센터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홍콩은 한국, 대만 등과 더불어 종교적 다양성 지수가 가장 높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미국 등 서구권 국가들은 대부분이 기독교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이 지수가 훨씬 낮게 나왔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성을 접할 수 있는 학교 

다양한 어린이들이 모인 학교(이미지: Vectorstock)

- 다양성이 자랑거리가 되는 '국제학교'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다양성을 가장 장려하는 곳은 홍콩의 국제학교일 겁니다. 제가 지난번 홍콩의 국제학교에 대해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 이 곳 국제학교 학생들은 국적이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몇 년 머물다 가는 사람이 많은 홍콩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 이사를 다닌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유럽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지는 싱가포르나 두바이인 경우도 많고, 홍콩을 거쳐 뉴욕이나 도쿄로 가는 아이들도 있고요. 즉 엄마와 아빠의 국적, 태어난 나라, 살고 있는 나라, 거기에 혹시 필리핀 헬퍼까지 집에 있다면 수많은 언어와 문화에 노출되어 자랍니다.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의 다채로움은 언제나 중요한 가치이자 자랑거리입니다. 어느 학교든 투어를 가면 "우리 학교에는 이만큼이나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다닌답니다"라는 말은 꼭 들어가고요. 매년 Multicutural Day나 International Day를 지정해서 각국의 전통 의상이나 식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할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먹는 급식에도 채식주의 식단 등을 포함시켜 모든 종교와 문화권의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있지요. 


- 다양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공립학교'

그러면 홍콩의 공립학교는 어떨까요? 로컬 학교에서는 다양성을 위한 목소리가 최근에 들어서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개별 학생의 출신 배경이나 문화 차이로 야기되는 학습 다양성(learning diversity)을 인정하고 이에 맞춰 각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주려는 시도를 찾아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홍콩 자키클럽(Hong Kong Jockey Club, 경마 수익이 어마어마한 홍콩에서는 경마를 주관하는 이 기관에서 사회 각 부문에 리서치나 프로젝트 자금을 대는 경우가 많습니다)은 최근 다양성에 대한 교사의 이해도를 높이고 교육을 시키는 Diversity at School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2017년부터 공립 고등학교에 Special Educational Needs Coordinator (SENCO) 제도를 도입하며 학습 능력이 상이한 학생들을 맞춤형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홍콩 자키클럽의 Diversity at School 프로젝트 페이지

이처럼 자신과 다른 타인을 많이 보며 자라는 어린이들은 아무래도 외모나 문화가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이러한 오픈 마인드는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큰 자산이 되겠지요. 



다양성의 이면, 젠더 이슈와 인종 불평등  

하지만 겉에서 보았을 때 사회의 구성원이 다양하다고 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결론지어도 될까요?  여러 인종, 국적, 언어, 문화가 한 사회 내에 공존한다고 해서 모든 소수자들이 자신을 긍정하며 사는 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문화적인 환경 내에서도 서열이 있고 불편을 느끼면 그저 드레싱 없이 섞여만 있는 샐러드 같은 사회에 불과한 거죠.


홍콩의 젠더 이슈와 성교육

일례로 젠더 이슈가 있습니다. 홍콩은 여성 취업 인구가 높기는 하지만 미국, 유럽, 브라질, 싱가포르 등에 비해 남녀 임금 격차가 클 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여서 그런지 성 담론이 터부시 되고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편입니다. 성소수자가 홍콩에 취업하는 경우 그 파트너도 남녀 부부나 동거 커플과 마찬가지로 디펜던트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 외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 담론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로는 적절한 성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을 거예요. 청소년기의 성교육의무가 아니라 각 학교의 자율성에 맡기고 있다고 하는데요, 학습 부담이 높은 것으로 악명 높은 로컬 학교들은 수학, 영어 등 커리큘럼을 따라가기가 바빠 성교육은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2018년의 한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표준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21년간(!)이나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고 해요. 동성애자나 크로스 드레서에 대해 비정상적인(abnormal) 성적 취향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현시대에 맞지 않는 선입견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교사 지원자의 무려 80퍼센트는 성교육, 또는 젠더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교육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성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기관(이미지: famplan.org.hk)

아이들이 찾아가는 어린이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LGBTI 관련 책은 어린이 도서 진열대에서 자유롭게 뽑아볼 수 없고, 사서에게 직접 요구해야지만 잠긴 서고를 열어(...) 열람할 수 있다고 해요. 또, 다양성을 존중하고 장려하는 국제 학교들에서조차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유달리 경직적인 모습을 보이는데요, 한 국제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이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인종 간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

그래도 국제 학교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종 구성이 다양하고, 흔하지는 않지만 학부모 중 아이를 입양한 동성 부부도 찾아볼 수 있기는 하거든요. 하지만 로컬 학교들은 더욱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다양성과 평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장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비중국어권 출신의 학생들은 언어의 부족을 보완해 주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학습이 뒤떨어지고, 나아가 대학 교육과 직업 선택의 폭도 좁아지는 등 뿌리 깊은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요. 값비싼 사립학교에 가지 않으면 제대로 배울 수도 없는 현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죠. 균등기회위원회(Equal Opportunities Commission ) 등의 NGO는 2016년 경부터 학교 커리큘럼에 다양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꾸준히 권고하고 있는데, 아직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 학교에서조차 인종 간 차별로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2]. 홍콩에는 ESF라는 영국계 학교 그룹이 있는데요, 최근 일부 교사들이 아시아계 이름을 가진 학생들을 조롱하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학교에서 백인이 아닌 학생들의 이름을 일상적으로 잘못 발음하고, 의도적으로 희화화시켰다는 거예요.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홍콩도 인종에 따른 사회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는데요,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래의 연구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피부가 흴수록 교육 수준과 소득이 높고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진다는 거죠[3].


실제로 홍콩에 거주하는 동남아시아 출신 사람들은 대개 가정부나 운전기사로 일하며, 이는 적은 임금을 받고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직군에 속합니다. 출퇴근 시간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 하루 종일 일하고,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날에는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은 해외 언론에서도 여러 번 다룰 만큼 유명하지요. (저희 가족도 홍콩에 처음 왔을 때 일요일에 길거리에 앉아서 밥도 먹고 잠도 자는 가정부들을 보고 큰 문화 충격을 받았는데요,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어느덧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가치관이 이미 정립된 어른들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이 이 풍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라고 생각하지나 않을까요? )

일주일 중 하루의 휴일을 길에서 보내는 헬퍼들(이미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 ≠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다양성에 대한 여러 측면을 살펴보니, 결국 여러 문화가 섞여 있기만 한다고 소수자가 진정으로 포용되는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콩은 분명히 다양성과 다문화의 도시이지만, 이면에는 젠더나 인종 간 불평등 같은 이슈를 떠안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다양성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교육을 하더라도, 아이가 밖에 나갔을 때 동남아시아 출신 가정부들은 더운 땡볕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한편 잘 차려입은 서양인들은 근사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본다면 알게 모르게 편견이 심어질 수 있겠지요.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스며드는 것이지 주입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한 기사에서 나온 이 말이 와 닿습니다 [4].

Diversity is a fact, inclusion is a choice.
다양성은 팩트고, 포용은 선택이다. 




[1] https://www.scmp.com/news/hong-kong/community/article/2126710/just-how-much-melting-pot-hong-kong-asias-world-city

[2] https://www.scmp.com/news/hong-kong/education/article/3090302/hong-kongs-biggest-international-school-group-esf-vows

[3] https://www.hku.hk/press/press-releases/detail/13284.html

[4] https://hongkongfp.com/2018/02/25/hong-kong-diverse-far-inclusive-heres-can-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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