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홍콩에서 국제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실제로 아이를 보내며 느낀 점에 대해 써 보려고 합니다.
저희 아이는 전에 살던 미국에서도 기관에 다녔었고, 잠깐이지만 한국 유치원도 경험했었어요.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 곳 홍콩에서는 ‘국제학교’이기 때문에 가지는 특성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보다 더 다양한 사람이 오가는 '홍콩'이기 때문에 생기는 특유의 장단점도 있는 것 같아요.
최대의 장점은 ‘외국어’일까? 정답은 ‘글쎄요’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너네 아들은 영어는 진짜 잘하겠다”라든지 “홍콩에 사니 중국어까지 하겠네”라는 말을 합니다. 영미권에서 학교를 보내거나 세계 어디에서든 국제학교를 보내면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영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한국에서만 자라더라도 언어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은 외국에서 자란 아이들 못지않게 영어 교육을 잘 받고, 훌륭한 영어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님의 통역사 샤론 최 님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요. 어마어마한 실력은 꼭 외국에서 자라야만 완성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영어과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느냐 하면.. 그건 ‘노노’입니다. 일단 저와 남편의 모국어는 한국어이고, 집에서는 주로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가 가장 편안해하는 언어는 한국어입니다. 저희 아이처럼 국제학교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이 훨씬 많고, 따라서 아이들끼리 제2외국어인 영어로 소통을 해도 쑥쑥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틀린 영어를 모두가 함께 사용하며 놀기도 하고요. (보는 엄마들은 속 터지기도 합니다 ㅎㅎ)
중국어는 진입장벽이 높아서 더합니다. 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부모가 중국어를 못하는 경우 아이의 중국어 학습은 더딜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한국에서 한자 교육이라도 받아서 그나마 아는 한자라도 있는데, 아이에게는 알파벳과 한글도 버거운데 한자는 볼수록 알쏭달쏭한 상형문자일 거예요. 게다가 홍콩은 밖에 나가면 광둥어를 쓰니, 언어 노출은 이것저것 많지만 제대로 하는 언어는 그다지...ㅠㅠ
영어라도 완전하면 그나마 나을 것 같지만, 또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의 고민일 텐데요, 아이들이 영어를 더 많이 쓰게 되면서 문제는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가 섞인 짬뽕 언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저희 아이의 경우는 특히 한국어의 서술어 어휘가 많이 약해서, (영어 동사)+(한다)는 말로 거의 대체하더라고요. “나 이거 choose해도 돼?” “엄마 나 tired 해서 take a rest 하고 싶어” 이렇게요;; 영어 어휘를 섞어 쓰는 건 아마 부모부터 고쳐야 하는 습관이겠죠?
수많은 국적과 문화, 다양성의 향연
외국어가 아니라면 홍콩에서 국제학교를 보내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요? 저의 경우는 아무래도 다양성(diversity)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의 배경이 참 다채로운 거죠. 국적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몇 년 머물다 가는 사람이 많은 홍콩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 이사를 다닌 친구들이 참 많아요.
예를 들어 저희 아이 생일에 교실에서 작은 파티를 했는데, 반 친구들이 영어와 만다린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고 그다음엔 남편과 제가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 주었어요. (엄마가 한국인, 아빠가 호주인인 한 친구도 한국어로 함께 불러 주었어요.) 그런데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스위스 아이가 손을 들며 자기가 다른 언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줄 안다며, 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그 아이는 두바이에서 태어나 아랍어도 약간 배웠고, 홍콩에 오기 전에는 방콕에 살며 태국어도 조금 배웠다고 해요. 엄마는 영국과 프랑스 혼혈이고 아빠는 스위스 사람이라 프랑스어도 하고요. 이 곳은 유달리 여권을 두 개, 세 개 가진 친구들이 많은 듯합니다.
저희 아이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생각해 보면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아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쭉 살다가 홍콩으로 이사 오는 바람에 아랍어만 하던 아이, 인도계 캐나다 아이, 한국 아빠와 홍콩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등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의 국적, 태어난 나라, 살고 있는 나라, 거기에 혹시 필리핀 헬퍼까지 집에 있다면 수많은 문화에 노출되어 자라는 것이지요.
이런 곳에서 자라다 보니 아이가 인종, 국적. 외모에 대한 편견 없이 자란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새로운 친구가 왔다고 해서 어떤 친구냐고 물어보면, 이름은 말해 주지만 피부가 까맣다든가 머리가 노란색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아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무슨 언어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잘하지 않는 것 같고, 그저 친구라고만 생각하는 거죠. 이런 오픈마인드는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큰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그만큼 다양하고 후덜덜한 학부모
이런 다양성은 학부모로서도 큰 장점입니다. 저의 경우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 인생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넓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맛보는 느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거든요. 아무리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왔더라도 같은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둘러싼 어느 정도의 공통분모는 있기 때문에, 다들 조화롭게 어울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국제학교는 일반 공립학교보다 학비가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여유 있는 가정이 많은 편입니다. 아마 비싼 사립학교나 외국인 학교에 보내본 경험이 있는 학부모라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경험을 이해하실 거예요. 저희는 아이가 하나인데도 학비가 늘 굉장한 부담인데, 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회사 지원도 없이 자비로 둘, 셋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거든요. 이전 글에서 소개했듯 국제 학교에 입학하려면 디벤처나 캐피털 피 등 목돈이 드는데, 이미 이런 비용을 지불하고도 다른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으면 다 포기하고 옮기기도 합니다. 홍콩의 여러 명문 국제 학교에는 한국이나 외국의 유명 연예인의 자녀들도 다닌다고 알려져 있어요. 평소에 잘 보기 어려운 문화권이나 계층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셈이죠.
다양성을 장려하고 축하하는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배경이 이렇다 보니, 학교 차원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은 존중하며 즐겨야 할 중요한 가치입니다. 국제 학교라면 거의 다 Multicultural Day 또는 International Day를 지정해서 학생들이 출신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등교한다든지, 학부모를 초대하여 각국의 요리를 팟럭 형식으로 즐긴다든지 하는 식으로 특별한 행사를 진행한답니다.
또 한편으로는, 특정 문화권의 축제를 크게 축하하지도 않는데요, 예를 들어 기독교 문화권의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을 따로 기념하지 않는 것이지요. 요즘은 미국에서도 연말에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대신 ‘연말 휴일 잘 지내세요(happy holidays)'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데요, 여기서도 크리스마스 즈음의 공연을 ‘윈터 콘서트’나 ‘연말 공연’ 등의 말로 대체하곤 합니다. 핼러윈의 경우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즐기는 학교들도 많지만, 저희 아이의 학교의 경우는 핼러윈을 즐기지 않는 문화권이 더 많다는 이유로 따로 코스튬을 차려입지 않는 것이 방침입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할 때도 특정 종교에서 먹지 않는 음식이 있기 때문에 채식주의 메뉴 등 되도록 많은 옵션을 마련하고 있고, 기타 학교 행사 때도 문화적, 종교적 이유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미리 소통하도록 안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 되도록 많은 배경의 사람들을 아우르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아쉬운 점들은 무엇일까?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몇 년 예정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한국 분들도 마찬가지로, 아예 자리를 잡고 사는 교민들도 많이 계시지만 부모 중 한 사람이 회사에서 발령을 받아 3년에서 5년을 예정으로 나오시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어요. 따라서 국제 학교도 거쳐 가는 친구들이 참 많은 편이에요. 친구들과 친해져서 1-2년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바로 작별을 고해야 하기 때문에 참 아쉬워요. 국내에서도 이사를 하거나 해외에 살면 항상 겪는 일이지만요.
또, 일정 시간이 지나 귀국이 눈앞에 다가오면 국내 학교 학습을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저는 로컬 스쿨을 보내본 적이 없어서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국제학교가 확실히 분위기가 훨씬 자유롭다고 합니다. 학교 따라 다르지만 저학년 때는 학습 부담감이 적고 많이 놀게 하는 학교가 많고요. 저학년 때 많이 노는 건 물론 좋지만, 문제는 만일 몇 년 후 본국에 귀국한다면 학습 측면에서 좀 불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국처럼 공교육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는 귀국했을 때 학습 수준 차이로 적응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국 계획이 있는 한국인 부모들은 사교육을 한다든지, 한국 국제학교 한국어 스트림(한국과 커리큘럼 동일)에 보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학습을 돕곤 합니다.
물론 단순히 교과목 학습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학교 생활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국제학교가 장점이 많기는 합니다.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수영이나 오케스트라, 연극 등이 기본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고, 방과 후 활동으로 펜싱이나 코딩 등 보다 다양한 활동을 접해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바닷가에 위치한 한 국제 학교의 경우 해양 생물 체험관이 있을 뿐 아니라 학교 전용 배가 있어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이 배를 타고 친구들과 바다에 나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경험의 지평을 넓히며 즐겁게 지낸다 해도, 최종 목적지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이라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학습 전반을 맘 편히 학교에만 맡겨 놓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위 두 가지가 외국에서 학교를 보냈을 때 부딪칠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면, 마지막으로 ‘홍콩’이기 때문에 걱정되는 점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반환된 지 시간이 꽤 지나며 홍콩 자체의 특수성이 점점 옅어지고 중국 체제로 편입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이 나오고 있는 시점인데요. 특히 최근 ‘국가보안법’ 관련하여 코로나 사태 중에도 시위도 지속되고, 한편 미국도 홍콩을 특수 영토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더더욱 앞날이 불투명한 시점입니다.
홍콩은 중국의 영토이지만 통화도 따로 쓰고 정치, 경제 시스템을 다르게 유지하고 있는데요, 하다못해 페이스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죠. 본토 사람들도 이러한 홍콩의 특수한 위치를 고려해 자녀 교육을 위해 이주하는 경우도 있고, 중국을 상대로 경제 활동을 펼치는 외국 기업들에게도 언제나 1순위로 홍콩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홍콩의 장점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는 시점이에요. 홍콩의 국제학교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만큼 이 곳을 향하는 다양한 발걸음이 많고 안정적 사회 체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 텐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그만큼 어필하지 못한다면 이제까지 유지되어 왔던 국제 학교의 위상도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국제학교 시리즈를 마치며
상황이 이렇지만 그래도 홍콩에서 국제학교를 보내는 건 대체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어요. 특히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들은 특유의 자부심으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본국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이 많아, 갑자기 명문 학교들에서도 공석이 많이 생겨 대기자들에게 갑자기 인터뷰 제의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과연 몇 년 후, 몇십 년 후 국제학교들의 모습과 성과는 어떨지, 나아가 홍콩의 모습은 어떨지 참 걱정되면서도 궁금합니다. 동서양이 만난 도시, 70-80년대 홍콩 영화에 나올 법한 낡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거리들, 한 때의 영광이 눈부셨던 이 곳은 어떤 모습일까요?
*표지 이미지 출처: Little Steps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