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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an 15. 2021

홍콩의 옛 공항, 개떡(?) 같던 카이탁

지금이야 매해 세계 1위를 다투는 인천 공항이 떡 하니 버티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공항은 김포였다. 그때는 땡땡이 무늬가 있는 리본을 맨 스튜어디스 언니들도 어찌나 그리 예쁘고 세련되어 보였던지. 객관적으로 보면 인천 공항이 백 배는 멋지겠지만, 김포 근처를 가면 난 아직도 어린 날의 가슴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이 곳 홍콩에도 옛 공항의 흔적이 있다. 지금은 쳅락콕이라는 큰 공항이 새로 생겨서 인천과 마찬가지로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광활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천보다는 덜 깔끔할지 몰라도 홍콩도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보니 쳅락콕 공항도 규모가 크고 활기찬 곳이다. 하지만 개성으로 따지자면 홍콩의 옛 공항을 따라오긴 한참 멀었다. 1998년까지만 해도 홍콩에는 시내에 떡하니 공항이 있었다. 그 공항의 이름은 카이탁(Kai Tak).

옛 홍콩 거리 위를 지나는 비행기 (이미지: Pinterest)

진짜로 시내 정중앙에 있던 공항이라서, 말도 안 되게 가까운 거리에서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Kai Tak airport라고 검색하면 마치 포토샵을 실수한 것만 같은 사진들이 좌르륵 나온다. 당시에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들에게도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다고 한다. 도심에 있다 보니 행여나 사고라도 나면 피해가 클 것이라는 부담감이 있었을뿐더러, 활주로도 짧고 착륙 시 각도를 굉장히 날카롭게 꺾어야 해서 한 번에 착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중국 항공의 경우 활주로 끝까지 미끄러졌다가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전원 구조되었다) 유튜브에 보면 그 사고를 재현한 영상도 있다. 기상 상태까지 안 좋으면 착륙이 더더욱 어려워서, 기장들 사이에서는 이 공항을 "개떡 공항"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하니 그 어려움을 알 만하다. 실제로 한자로 啟德이라, 한국식으로 읽으면 "계덕"이다. (별명이 찰떡) 


비행기가 카이탁으로 접근하는 옛 사진을 보다 보면 신기할 만큼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유독 자주 나온다. 지붕에 안테나가 빼곡하고 빨랫감이 널려 있는 이 곳은 바로 <구룡성채(Kowloon Walled City)>라는 곳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허물어졌지만, 카이탁 공항 근처에 있던 인구 밀집 구역이자 슬럼가였다. 아니, 그보다는 '마굴'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고들 한다.

구룡 성체 위를 지나는 비행기 (이미지: Asia Society)

원래는 청나라 요새였다가 홍콩이 영국령이 되면서 어쩌다 영국도, 중국도 관여하지 않는 이상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빈민들과 범죄자들은 계속 숨어드는데 행정권을 행사할 기관은 없으니 어떻게 되었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소방차도 부르지 못하고, 교육 기관도 없으며, 마약과 도박이 판치는 곳이었다. 당연히 건축법도 그 무엇도 적용되지 않아 아래 사진처럼 서로 다닥다닥 붙은 미로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수도관과 전선이 얼기설기 얽혀 있고,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아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옛이야기. 결국 1980년대에 영국과 중국 정부가 합의해서 없애 버리기로 결정하고, 90년대에 실제로 허물어 버린다.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왠지 예전 같으면 기괴하고 무서워도 한 번은 구경하고 싶었을 듯한데, 번듯해진 곳은 가기가 싫은 건 왜일까. (실제로 수많은 영화와 만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역시 사람이 매료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구룡 성체의 내부와 외부의 모습 (이미지: Unique / Wikipedia)

아무튼 카이탁은 얼마 전까지는 공항 대신 크루즈 터미널로 사용되었다. 아무래도 승객들이 대기하는 공간이나 택시버스 정류장 등의 인프라가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꽤 괜찮은 용도의 전환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창가에서는 카이탁이 보이기 때문에, 홍콩에 이사 오고 나서 하나의 즐거움 중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오는 크루즈쉽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를 일주일에 몇 번씩 볼 수 있었다. 아이도 창가에서 크루즈쉽에 있는 수영장과 헬리콥터 착륙 패드, 구명보트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카이탁 터미널에 정박 중인 크루즈쉽 (이미지: HK Tourism Board)

하지만 코로나와 더불어 크루즈의 시대는 끝난 듯하다. 가장 규모가 큰 크루즈였던 "드림 크루즈"는 승객 중 확진자가 발생해서, 지난해 2월에는 정박한 크루즈에서 승객들이 비좁은 선실에 갇혀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주말 밤에 카이탁에 도착했다가 다음날 위풍당당하게 출발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몇 주씩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얼마나 초라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드림 크루즈에서 모든 승객들이 내린 후, 카이탁에는 단 한 척의 크루즈쉽도 찾아오지 않았다. 집 근처에서 페리를 타면 카이탁 터미널 건물과 근처에 조성된 공원에 갈 수 있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에 요즘은 좀처럼 발걸음이 지 않는다.



나는 처음으로 홍콩 여행을 온 것도 이미 2005년이었고, 이 곳에 산 지도 고작 3년 남짓이니 예전의 홍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남들은 어릴 때 홍콩 영화를 많이 봤다던데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본 몇 의 왕가위 영화가 전부라, 남들이 그리워하는 옛 홍콩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홍콩의 낡 거리를 거닐다 좁은 골목 안 오래된 작은 차찬탱이 눈에 들어오면 어딘지 모르게 <화양연화>의 한 장면이 겹쳐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구룡 성체도, 카이탁도, 옛 홍콩의 분위기 보여주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무질서하기도 하고, 초현실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독특한 모습.


지난 달 블룸버그에 홍콩에 오래 산 영국인이 쓴 칼럼이 실렸다. 제목은 <내가 사랑했던 홍콩에게 고하는 작별 인사(A Farewell to the Hong Kong I Loved). 그는 옛 홍콩의 자유로운 경제와 자유로운 시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던 과거를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변할 수밖에 없는 홍콩의 운명도.

There is still sadness, though. Hong Kong will never go back to what it was, that much seems clear. Its fate will be dissolved into a larger destiny, as was always likely and perhaps inevitable. My poor adopted city. Designed for obsolescence but wanting more life, it did burn so very brightly.

그러나 여전히 슬픔은 남는다. 홍콩이 예전의 홍콩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니까. 늘 그랬듯 홍콩의 운명은 역사라는 큰 흐름에 쓸려갈 것이고,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는 해일 수밖에 없지만 생명력을 갈구하는 나의 가엾은 제2의 고향. 너는 정말 밝게 빛났었구나.

- Mattew Brooker, <A Farewell to the Hong Kong I Loved> [1]

개떡 같던 공항도, 마굴 같던 슬럼가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가 그리워하는 것이 단지 그뿐만은 아니리라.


*표지 이미지 출처: cnn.com

[1]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20-opinion-hong-kong-is-now-a-city-of-the-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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