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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y 14. 2020

홍콩의 국제학교 이야기

이제 중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홍콩은 여전히 외국인의 비율이 높은 국제 도시입니다. 그래서 7백만 인구나 영토 대비 아주 많은 숫자의 국제 학교가 있는데요, 한 통계에 따르면 총 54개의 국제 학교가 홍콩 영토 내에 분포하고 있다고 해요. 엄밀히 말해 국제 학교는 아니지만 로컬 스쿨 중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섹션을 따로 운영하는 학교 들도 있어서, 사실상은 더 많은 듯 합니다.


[1] 홍콩 영토 전역에 위치한 주요 국제 학교 지도


홍콩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립 학교가 있고 교육 수준도 높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현지 언어인 광동어를 쓰다 보니 외국인들에게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방안입니다. 또 최근에는 중국 본토에서 좀 더 국제적인 교육 환경을 바라는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홍콩으로 많이들 이주를 하기 때문에, 국제 학교에 대한 수요는 항상 높은 것 같아요. 한편으로 요즘은 홍콩인들도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무래도 로컬 학교들이 너무 빡세서(!) 분위기가 그나마 자유로운 국제 학교를 선호하기도 한다는군요.


[2] 홍콩의 다양한 국제학교(좌: 인터내셔널몬테소리스쿨, 가운데: 해로우스쿨, 우: 캐네디언인터내셔널스쿨)


저희 가족은 작년에 만 5세였던 아이를 한 번 전학(?)시키느라 여러 차례의 입시 전쟁을 치렀습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투어를 하고, 수천 자 에세이를 써가며 지원서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다니고, 떨어지고… 직접 겪어 보니 정말 두 번 하고 싶지는 않더군요ㅠㅠ 오늘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알게 된 홍콩의 국제 학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홍콩의 교육 환경삼중 언어의 문제 

홍콩이 세계 다른 지역과 가장 다른 점은 아마도 기본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언어가 더 많다는 점이에요. 한국인 입장에서 영미권에 가면 공립 학교에 가도 영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고, 제3국에 간다면 현지어는 못하더라도 국제학교에 가서 영어로 학습할 수는 있을 거에요. 그런데 홍콩은 일상에서는 광동어를 쓰고, 배워야 하는 언어로는 영어와 북경어(만다린)가 있는데, 문제는 홍콩은 이제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만다린의 비중이 무척 크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유치원 이전부터 Anglo-Chinese 이중언어 과정을 가지고 있는데, 모국어가 광동어인 홍콩 친구들은 3개 국어를 전부 다 해야 하는 거죠. 


[3] 흔히 볼 수 있는 Anglo-Chinese 유치원들


외국인으로서 홍콩에 살 때 만다린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다가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만다린을 배워 두면 유용하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쓰는 언어와의 괴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만다린을 배운다고 해도 밖에 나가서 연습하거나 활용할 기회가 없는데요, 홍콩에서는 광동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광동어는 만다린과는 성조나 어휘가 다를 뿐더러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니라면 습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어요. 또, 어린이들은 간판을 보며 글자를 익히곤 하는데 중국 본토에서는 간체를 쓰는 데 비해 홍콩에서는 번체를 써서 접근하기가 더 어려워요. 홍콩에서는 대만처럼 만다린도 번체로 가르치기는 하지만요. 


국제 학교들에서는 만다린을 주요 과목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고, 교실 안에 영어 선생님 1명과 중국어 선생님 1명이 상시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언어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도 매일, 주 4회 이상으로 굉장히 비중 있게 다루고요. 시간이 더 지나서 홍콩 체제가 중국으로 완전히 편입되면 일상에서의 만다린 비중도 더 높아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언어의 학습 부담감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4] 중국어 도서관을 따로 운영하는  캐나다 국제학교



많고 많은 국제 학교어떤 학교가 있을까

국제 학교가 이처럼 다양하다 보니 막상 홍콩에 처음 이주하는 사람들은 선택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다 보니 진입 장벽이 낮은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를 들어 영어를 아주 잘하지 못하더라도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과정이 잘 개설되어 있어 아이의 적응이 쉬운 학교라든가, 한국인 비율이 높은 학교 등이 있겠죠. 


한편으로 들어가기 굉장히 어려운 학교들도 정말 많습니다. 역사가 깊은 영국계 명문 학교들은 보통 대기가 무척이나 길어서, 저도 만4세 때 문의하니 “보통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출생과 동시에 대기 리스트에 접수하고, 이미 그 리스트에만 수백 명이 있어. 하지만 그래도 대기하고 싶다면 해도 돼”라는 정중하지만 뭔가 기분이 나쁜(!) 답변을 받았어요. 또 어떤 학교들은 영어는 기본이고 원어민에 가까운 만다린 실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한국인인 경우 여간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죠. 가까스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만다린 수준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요.


영국령이었던 홍콩에는 ESF 스쿨처럼 영국계 학교들이 많이 있고, 입시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고 알려진 중국계 학교들도 몇몇 있습니다. 미국계 학교들도 여럿 있는데, 홍콩에서 제일 유명한 학교 중 하나인 홍콩국제학교(HKIS)도 미국식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고요. 독일-스위스 국제학교, 프랑스 국제학교 등 유럽식 학교들, 한국 국제학교, 싱가포르 국제학교, 호주 국제학교 등도 있어요. 이런 학교들은 대개 두 가지 스트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데요, 예를 들어 한국 국제학교는 국제 과정과 이중언어 과정을 따로 운영합니다. 국제 과정은 다른 국제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영어 베이스고, 이중언어 과정은 절반을 한국어로 가르치고 있어요. 다른 학교들도 본국 언어 과정을 선택할 수 있게끔 하지요. 이 경우 해당 학교의 본국 출신 친구들이 입학에 유리하겠지요.  



눈물나는 학비와 디벤쳐 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홍콩 정부는 1월 하순 춘절 방학부터 전국 모든 학교에 전면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원래 한달 남짓이었다가, 자꾸 미뤄져서 결국 3개월 이상 무기한 휴교를 하게 되었는데요.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휴교령이 적절한 조치라고는 생각하지만, 값비싼 국제학교 학비가 그대로 매달 나가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쓰라리기는 하더군요. 하루도 학교를 안 갔으면서 생으로 내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니까요 ㅠㅠ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국제 학교의 학비는 악명 높습니다. 주재원들의 경우 회사에서 대주는 경우가 있으니 좀 낫겠지만, 그래도 보통 부담되는 것이 아니에요. 홍콩 부동산 값이 높다 보니 임대료가 워낙 비싸고, 또 외국인 교사들을 이직률 낮게 유지해가며 고용해야 하니 아무래도 낮추기가 어렵다고 해요. 


[5] 홍콩 주요 국제학교 학비 


학비가 비싸면서도 방학은 또 길기로 유명한데요, 동서양 휴일을 골고루, 자주, 쉽니다. 중국식 명절인 춘절, 청명절, 중추절 등도 쉬고 서양식 명절인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도 꼭 챙겨요. 여름방학도 두 달 반 남짓 되고요. 


학비만 비싼 것이 아니라 학교마다 일종의 학교 채권인 디벤쳐(Debenture)를 발행하는 제도가 있는데요, 이 디벤쳐를 사면 입학 시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수천만원에서 1억 원에 달하는 큰 돈을 주고서라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문 학교들은 디벤쳐를 사고 싶어도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디벤쳐는 일종의 자산 개념이기도 해요. 실제로 졸업 시에 다른 입학생에게 되팔아 돈을 돌려 받을 수 있고, 잘 나가는 학교의 경우에는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는군요.


디벤쳐를 사지 않으면 연간 캐피털 피(Capital fee)를 내야 하는데, 이는 디벤쳐보다 적은 돈이지만 매년 내야 하고 돌려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차라리 디벤쳐를 사는 것이 유리하기도 하죠. 이는 홍콩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고 어디든 국제 학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꼬마들의 입시 전쟁 

명문 국제 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은 대개 홍콩을 아예 떠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학교를 쭉 다니기 때문에, 되도록 이른 나이에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유치원(pre-grade 또는 reception 과정) 과정부터 입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죠. 


저의 경우는 먼저 여러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서 투어부터 해 봤는데요, 학교마다 캠퍼스나 교직원들의 분위기나 특성이 달라서 맘에 드는 학교가 딱 생기더라구요. 어느 학교를 지원할지 결정하고 나면 온라인으로 입학 신청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물론 부모들의 몫이 큰데요, 서류 심사에서부터 부모의 스펙(?)을 입력하고 장문의 에세이를 쓰는 등 마치 대학원 입학 시험을 보는 것 같았어요. 부부의 양육 철학부터 우리 가족이 해당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 등 어찌나 어렵던지요. 여기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함은 학교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등의 금전적인 기여도 있지만, 다양한 학교 활동에 얼마나 참여할 것이냐를 묻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처럼 홍콩 국제 학교도 PTA (Parent-Teacher Association, 일종의 학부모회)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각종 PTA 활동이나 반 대표 부모(클래 스 페어런츠)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썰을 잘 풀면(?) 학교 입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겠죠.


또, 아이도 존재 자체로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데요, 보통 국제 학교에서 아주 중시하는 가치는 다양성(diversity) 이기 때문에, 해당 학교의 성비나 국가별 학생 비율 등을 알아본 뒤 우리 아이는 한국인이라서 (또는 남자아이라서, 특정 문화권에서 와서, 등등) 너네의 다양성에 기여할 거야! 라는 식으로 어필할 수도 있어요.


서류 심사에 통과하면 곧 연락이 오는데, 인터뷰를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대기조에 편입될지 통보를 합니다. 좋은 학교들은 인터뷰라도 따내면 다행인데요, 행여나 대기조에 들어가게 되면 몇 년도 기다릴 수 있다고 해요. 어떤 학교들은 서류 심사에 합격하더라도 아이 인터뷰 외에 부모 인터뷰도 따로 보는데, 교장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야 해서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해요. 


 좀 더 큰 아이들은 인터뷰에서 간단한 입학 시험을 보게 되는데, 어린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 글씨를 쓰는 방식의 시험을 볼 수가 없으니 보통은 몇 명의 지원자들을 함께 묶어 선생님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입학 심사관이 이를 관찰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아이의 성향이 어떤지, 친구들과 장난감을 나누어 가지고 노는지, 선생님의 지시 사항을 잘 듣는지 등을 본다고 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인터뷰는 결국 해당 학교의 분위기랄지, 중시하는 가치에 얼마나 아이가 잘 부합하느냐 를 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국국제학교의 경우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자랑으로 삼는데,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 에게도 어느 정도의 리딩 레벨을 요구한답니다. 몬테소리 학교의 경우, 독립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과업을 끝까지 마치는지를 보는 것 같고요. 또 분위기가 다소 자유롭고 밝은 학교들의 경우에는 어린 아이들인 만큼 분위기에 맞 춰 즐겁게 어울려 노는 것을 보는 것 같아요.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두세 시간까지, 어린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혼자서 낯선 곳에서 있는 것이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우는 친구들도 많고, 제대로 인터뷰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인터뷰를 연습시키는 학원도 따로 있기 때문에, 어떤 친구들은 그 어린 나이에도 빠릿빠릿하게 잘 놀다가 나오기도 하지요. 저는 이런 학원에 보내본 적이 없지만, 홍콩 로컬 명문 사립 학교 인터뷰를 준비한 한 홍콩 엄마의 말로는 유치원 입학 대상자부터 준비반이 있다고 합니다. 낯선 상황에서 선생님이 아이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져서 돌발 상황에서도 아 이가 잘 대처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해요.


국제 학교 뿐 아니고 홍콩 로컬 학교들도 명문으로 알려진 학교들은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이런 인터뷰 진풍경은 해외 주요 언론에서도 여러 번 다룬 것 같아요.


[6] 초등학교 인터뷰를 대비하는 어린 아이들과 울음을 터뜨린 아이


저는 아이를 데리고 인터뷰를 갔을 때 대기실에서 본 한 홍콩 친구가 기억에 남아요. 저희 아이와 같은 만 5세였는데 자기 지식을 자랑하듯 칠판에다가 무려 세 자릿수 덧셈을 (그것도 정확하게) 하더라고요.. 속으로 기가 팍 죽은 순간이었어요.ㅎㅎ 


제가 아는 친구는 만 3세에 좋은 학교에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엄마가 일주일 전부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시키려고 낮잠 시간을 조절하고, 원래 다니던 유치원에도 안보내고, 알파벳과 숫자 등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등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더라구요. 뭘 저리 유난을 떠나도 싶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 지원하는 비용과 노력이 굉장하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 바라던 학교에 보내게 되면 과연 어떨까요? 다음에는 홍콩에서 국제 학교를 실제로 보내며 느낀 점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자료 출처>

[1] ischooladvisor.com

[2] 좌: ischooladvisor.com, 가운데: harrowschool.hk, 우: expatliving.hk

[3] 좌: kornhill-edu.com, 우: South China Morning Post 

[4] cdnis.edu.hk

[5]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2673692

[6] 좌: CNN, 우: South China Morning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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