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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May 15. 2020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폴란드 이야기

[해외특파원 소식]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를 헤쳐나가는 사회


[해외특파원 소식]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를 헤쳐나가는 사회 시리즈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각 국가의 어른들과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정책적인 배려부터 몇몇 좋은 어른들의 따뜻한 사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소개할 미국, 폴란드, 독일, 홍콩, 영국,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폴란드는 어제(5월 13일) 3단계 규제완화조치를 발표하였다. 식당, 카페, 극장 등의 휴업령이 해제되었고, 이발소, 미용실 등 밀접접촉이 예상되는 서비스업이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 또한 이 법령으로 인해 5월 25일부터 초등 저학년(1-3학년), 초등 8학년(초등 최고학년), 고등 3학년들이 학교로 복귀한다. 맞벌이 부모의 경우 집에 혼자 있을 수 없는 저학년 아이들의 보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고학년 학생들의 진학지도를 위한 조치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이 나라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규제를 완화하는 폴란드 정부가 못미덥다. 지난 5월 6일에는 이미 유치원의 휴업령이 해제되어 아직 어린 아이들의 시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내몰렸고, 이에 대한 분노의 글을 브런치에 쏟아낸 바 있었다. 마스크 의무착용 법안을 1-2주 이내에 해제할 거라는 기사를 오늘 읽었을 때에는 남편과 동시에 같은 욕을 육성으로 토해냈다. 전날 확진자 증가수는 411명, 사망자는 어제 하루만 22명이 더 증가하였다.


 국민들, 특히 아이들의 안전보다는 정치, 경제적인 이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현재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아이에게 매일 충실한 온라인 수업 컨텐츠를 제공하고, 매일 전교의 학부모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이 시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교 측의 행보를 보면 이런 공동체의 일원이어서 참 감사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폴란드 전역에서 이 시기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인들, 그리고 이 사회의 어른들의 훈훈한 미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바이러스의 시대에도 폴란드 곳곳에는 밝은 이야기의 씨앗이 숨어있다. 오늘은 학교차원에서의 노력과 사회차원에서의 배려.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골조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폴란드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바르샤바 외곽에 위치한 사립학교로, 폴란드 학제가 아닌 미국 학제를 따르는 국제학교(American School of Warsaw; ASW)이다. 학교는 폴란드 전체 휴교령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온라인 수업 모의훈련(Virtual Learning Day Drill)을 계획하고, 모든 전교생이 등교하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아이패드나 노트북과 같은 학습기기를 전교생에게 대여하고, 교사들은 실시간으로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학습 어플리케이션이나 화상미팅을 할 때 기술적인 어려움이 없는 지 점검하기 위한 온라인 웹사이트도 따로 개설하였다. 이런 시스템과 관련한 밑작업을 하고 있던 중 3월 11일 폴란드 총리의 의해 전국 휴교령이 내려졌고, 공교롭게도 온라인 수업 모의훈련 예정일이 바로 휴교령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학교는 미리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했던 덕분에 단 하루의 수업공백도 허용하지 않고 빠르게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학교의 온라인 수업은 (어쩌다 보니 우리 매거진의 이름과 똑같은) SEESAW라는 학습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매일 8시 30분에 선생님이 그 날의 전체수업을 안내하는 5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보통 하루에 5개 내외의 수업이 진행되는데, 아이들은 글쓰기, 수학, 과학, 사회, 미술, 체육, 음악, 프랑스어 등의 과목을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학습한다. 온라인 수업을 옆에서 쭉 지켜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선생님이 강의하고 아이들은 받아적는 일방향적인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 또한 적극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참여하게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체육시간에는 체육선생님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 동작을 자택에서 비디오로 찍어 선보이고, 학생들에게 격리생활 중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운동 아이디어를 비디오로 찍어 올리는 것을 과제로 주었는데, 그 다음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이 올렸던 운동 동작 중에 재미있고 유용한 비디오를 공유하며, 해당 운동을 하는 모습을 각자 집에서 찍어 올리는 것을 과제로 주었다. 아이들이 직접 수업 컨텐츠를 만들고 교수자와 학습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직접 수업 컨텐츠를 제작하는 데 참여하고, 아이들이 만든 동영상이나 미술 과제로 제출한 작품 등을 수업 주제로 삼으며,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각자 집에서 보내는 이 시간 동안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FlipgridZoom같은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학생들끼리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모습을 화상으로 마주하며 아이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동영상을 통해 어느 날은 자신의 집 마당에서 씨앗을 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또 어떤 날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배경을 여름날 바닷가로 바꾼 후에 선글라스와 비키니를 입고 격리시간이 끝난 일상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100% 진행되는 수업이 모두에게 처음인 만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어설픈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이 매일의 수업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아이들이 느낄 불편함과 어려움을 최대한 예측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느날의 수업에서는 학교의 상담교사 선생님 두 분이 등장하여 서로의 일상을 묻고 요즘의 불안한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 시간을 가진 뒤에, 아이들에게 "네가 가진 불안함 마음과 요즘 일상에서 감사할 만한 일이 있다면 알려주겠니?"하는 질문을 과제로 제출해 주었다. 아이가 짧게 녹음해서 올린 5분짜리 오디오파일엔, 그보다 두 배는 긴 선생님의 답변이 올라왔는데, 학교 상담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경우엔 언제든지 온라인 상담을 예약해서 만날 수 있고, 학부모들에게도 항시 무료로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어느새 이렇게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된 지 9주째. 처음엔 아이도 엄마도 선생님도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설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규칙으로, 새로운 학교가 열렸다.




#학교의 대외활동은 모두 온라인으로


 중, 고등학교 고학년의 경우에는 학습적인 부분의 공백은 온라인으로 대체되기가 초등학생에 비해 수월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과외활동은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데 한계가 많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팀 단위로 이루어지는 스포츠 활동, 그리고 단체로 이루어지는 공연 활동이다. 휴교령이 내려졌던 직후인 3월 중순, 학교의 예술교육기관 SNS계정에는 화상미팅으로 뮤지컬 연습을 하는 학생들의 사진이 올라왔었다. 바이러스도 예술을 향한 우리 학생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다. 사진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뮤지컬 초대장이 날아왔다. 코로나사태 이후 교장선생님은 매일 이메일을 통해 아이들의 출석 상황과 학교의 상황, 그리고 폴란드 현지의 발병 현황을 알려주고, 매주 Facebook Live를 통해 전교생과 학부모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한다. 오늘 교장선생님의 이메일에는 다음주 화요일, 뮤지컬 인어공주의 개막이 알리는 초대문구가 있었고, 모든 학부모에게 Zoom 계정과 접속번호를 공유했다.



 과연 이 두달간의 화상 연습이 어떤 결과로 만들어졌을 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공연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학교 극장에서 열렸다면 늦은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볼 엄두를 못 냈을텐데... 코로나 덕분에 많은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공간을 초월해 함께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 셈이다.


 연극을 제외한 예술분야(개인공연 및 시각미술)에서는 지난 두 달간 계속해서 활발하게 전시가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그간 준비해왔던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선보였고, 포트폴리오를 착실하게 쌓는 데 게으를 틈이 없었다. 학교는 Art from a Distance 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서 학생들의 전시를 모든 학부모와 공동체의 일원들이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심지어 전시에 참여한 학생들이 직접 도슨트가 되어 활동함으로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관심있는 작가의 계정에 접속하면 실시간으로 작가 본인과 소통할 수 있었다.


 비어있는 학교의 공간에서도 전시회는 계속되었다. 평소에는 거의 1-2주마다 다양한 학년, 새로운 주제로 아이들의 예술작품이 계속해서 바뀌어가며 전시되는 곳이 바로 학교 복도였다. 교문은 굳게 닫혀있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장소가 되어버렸지만, 휴교령 이전의 학교와 다를 바 없이 계속해서 학교 복도는 학생들의 새로운 미술 프로젝트로 가득찼다. 그리고 학교는 SNS계정으로 끊임없이 그 모습을 온라인 공간에 실어날랐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오랜 기간동안 공들여왔던 학생들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계속해서 작품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고자 하는 학교 측의 배려였다.


 코로나 사태는 학생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래 학교에서는 디자인센터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매년 Maker Faire라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개최한다. 아이들이 지난 1년동안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고, 생산한 제품들을 전교생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 공동체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나도 작년에 작은 열쇠고리를 사 왔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의 Maker Faire는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의료진에게 기부된 페이스실드였다. 3D 프린터로 제작되는 과정에서부터, 완성된 페이스실드를 의료진이 착용한 모습까지 모두 학교 디자인센터 SNS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교는 끊임없이 아이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이 시기를 이겨내는 소통의 창구가 되고자 노력한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earthday)에는 교장선생님이 유치부 운동장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고,

지난 4월 24일 세계 책의 날에는 학생들이 화상미팅을 통해 각자 읽고 있는 책의 표지를 나누며 이 시기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 독서를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학교 봉사센터가 주축이 되어 이 시기의 소외된 이웃에게 필요한 물품을 모아 전달한다거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전달하는 등, 코로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학교와 학생들, 선생님들의 노력은 일일히 다 나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폴란드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듬고 있을까


 그렇다면 학교 바깥에서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어떤 노력의 이야기들이 있을까?


 전 세계 어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에도 학교가 없으면 밥을 굶게 되는 결식아동들이 있다. 독일특파원 진민 님이 공유하셨던 미국의 급식을 실어나르는 스쿨버스와 같이, 폴란드에서도 밥을 굶는 아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빌라누프의 사립초등학교는 학교가 문을 닫으며 학교 급식실이 비게 되자 이 공간을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마련하는 공간으로 제공하였다. 해당초등학교와 복지재단, 그리고 그 외 주변 교회와 어린이공동체 등을 통해 음식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고, 위생지침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진 음식을 아이들의 가정에까지 매일 저녁 배달한다. 휴교령은 9주째 이어지고 있고,지금까지 배달한 음식만 해도 5000인분의 식사가 넘는다고 한다.


 또한 폴란드의 심리치료사 도로타 부르드카(Dorota Bródka)는 이 특수한 상황을 경험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한 편의 동화를 썼다. 제목은 '나쁜 바이러스 왕과 좋은 격리생활에 관한 동화(Bajka O Zlym Krolu Wirusie I Dobrej Kwarantannie)'. 대부분의 어른들은 격리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지만, 이 질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왜 계속 집에 있어야 하고, 왜 유치원에 갈 수 없는 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사악한 바이러스 왕에게 침략당한 사과 왕국과(사과는 병에 걸려 색이 회색으로 변한다), 그에 대응해 벽을 쌓고 검역소를 만들어 철저한 격리를 통해 바이러스 왕을 이긴 토마토 왕국과 버섯 왕국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제목 링크에서 동화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폴란드어 입니다.

 작가가 블로그를 통해서 공개한 이 동화는 순식간의 폴란드 엄마들의 입소문을 탔고, 외신에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숨기거나 가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현실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해 주는 동화이다. 아이들의 궁금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살피고, 아이들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헤아리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이다. 곧 영문으로도 번역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동화가 폴란드를 넘어 전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란다.


 바르샤바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과학관에서는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통해 매일 어린이들을 위한 새로운 과학콘텐츠를 선보인다. 폴란드는 이미 2단계 완화정책을 통해서 박물관 및 미술관의 재개관을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많은 전시물이 직접 만지고 체험하고 느끼는 것으로 이루어진 코페르니쿠스박물관의 경우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휴관을 더 연장하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코페르니쿠스 과학관은 내가 이 도시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 중 하나이고, 휴교령이 내리기 전 주에도 큰 아이와 방문했었던 장소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비평가보다는 모델이다.'라는 박물관의 철학에 맞게 전통적인 교수법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직접 과학을 만지고 체험하며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박물관의 직원들은 이런 운영철학에 맞게 페이스북페이지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모델이 되어 일상적인 학교 학습의 연장선이 될 만한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한다. 또한 최근에는 박물관 재개관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문을 닫고 있는지, 어떤 위생지침과 가이드라인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필요한 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대중들과 나누기 위해, 폴란드 각 지역의 박물관장, 미술관장 그리고 문화부장이 모여있는 약 2시간 동안의 화상회의 영상 전체를 공유한 바 있다. 폐관 이후에도 운영철학에 맞는 행보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할수 있는 만큼 투명하게 의견을 내보이고 소통하고자 하는 이 공간을 나는 여전히 사랑할 것 같다.


 코페르니쿠스 과학관에서 후원하는 과학 행사 중 하나인 PIKNIK NAUKOWY(과학 피크닉)은 올해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폴란드 내 가장 큰 과학 행사 중 하나로 작년에는 PGE과학경기장에서 열렸었는데(작년에 여러가지 이유로 근래들어 가장 크게 개최되기도 했었다), 이 대규모의 행사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과학행사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방구석' 문화행사는 폴란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쇼팽의 나라, 폴란드의 음악회는...


 폴란드는 쇼팽의 나라다. 특히 2020년인 올해는 5년에 한번 있는 쇼팽 콩쿨이 있는 해로(지난 2015년 콩쿨의 우승자는 조성진이었던 바로 그 콩쿨),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세계적인 음악 축제이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쇼팽 콩쿨뿐만 아니라 여름의 폴란드, 특히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다면 가장 놓쳐서는 안될 이벤트는 바로 쇼팽콘서트이다. 매주 일요일, 도심의 와지엔키 공원 쇼팽 동상 앞에서 하루 2번의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 우리 가족도 작년 여름에 세 번이나 방문했을 정도로 가장 애정하는 이곳의 행사는, 올해 코로나로 인해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작년 7월의 쇼팽콘서트

 올해 쇼팽콘서트는 5월 17일부터 시작되며 매주 일요일 12시(폴란드 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채워주기 위한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쇼팽콘서트에 가기 위해서 여름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르샤바 시민 모두가 사랑하는 축제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실제로 쇼팽콘서트에 가 보면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누워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풍성한 예술적 경험을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온라인이라는 한계가 아쉽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니까.

쇼팽도 마스크를 피해갈 수 없다

도심의 와지엔키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쇼팽콘서트와는 별도로, 바르샤바에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외곽의 쇼팽 생가, 젤라조바 볼라에서도 리사이틀이 진행된다.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진행되며 이미 지난 일요일(10일)에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파베우 바카레치(Pawel Wakarecy)의 공연이 있었다.

 쇼팽콘서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단체들이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공연을 공개한다. 일례로, 이번주 토요일(5월 16일) 폴란드 국립 오페라단에서 오페라 <리골레토>를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한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주인공 만토바 역으로 한국인 정호윤 테너가 나온다. 온라인으로 다양한 공연 감상의 길이 열린것은 사실 오페라와 같은 아이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일 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사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한 사람의 부모로서, 전세계를 뒤흔든 이 질병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전염병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졌는지,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그저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전한 집 안에서, 아무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를. 그러나 아이들은 끊임없이 주변상황을 살펴보고 인생의 주도권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고자 다. 그냥 아주 길고 지루했던 방학과, 집에서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자급자족의 시기만으로 이 시간을 요약하기에는, 아이들은 궁금한 것도 많고, 불안한 것도 많다.

  요즘 우리집 아이들은 병원놀이를 할때, "콜록콜록,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이런 대사를 한다. 엄마나 아빠, 혹은 형제들이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자주 한다. 남편과 내가 식사를 하며 확진자 현황이라든가, 정부 규제 변화라든가, 최근의 코로나와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하면 아이들도 갑자기 조용해져서 우리 부부의 대화를 슬며시 엿듣는다. 그리고 많은 정보를 부모들이 스스럼없이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이들을 분명 이 시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숨기지 않고 솔직해지되,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무섭지 않게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함께 얘기해줄 밝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면. 아이들을 향한 작은 배려와 존중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가길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시기를 기억할 때 그런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그리고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주변 어른들의 듬직한 모습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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