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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Oct 27. 2020

비우니까 채워지더라

어쩌다 보니 미니멀 라이프

요즘 한국에서는 당근 마켓이 인기라고 한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이 집안 정리를 시작하면서 안 쓰는 물건들을 중고장터에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도 미국에 최소한의 짐만 유박스 스토리지에 남겨 놓고 가기로 결정했기에 그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최대한 정리해야 했다. 한국의 당근 마켓에 비견할 만한 사이트인 크랙 리스트(craglist)와 요즘 많이 쓴다는 오퍼 업(offerup), 두 가지 서비스를 통해 6년 동안 도토리처럼 쟁여둔 가구와 물건들을 팔고 나누기 시작했다.


자유로움의 시작

책은 미리 상자에 넣어두면 된다는 생각에 책장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학기가 시작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책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문의가 쇄도했다. 학교가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아이의 방을 수업 환경에 맞게 만들어 주기 위해 책장을 사 간다던 가족, 멋스럽게 옷을 입고 나타난 중년의 남성, 책장을 다 해체해 달라며 못의 개수까지 꼼꼼히 챙기던 여리여리한 여학생까지 다양한 사람이 다른 이유로 책장을 가지고 갔다. 책장을 보내는 아쉬운 마음보다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가져가니 뿌듯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뿌듯함 뒤에 남은 뽀얗게 먼지가 앉은 책들은 방 한구석에 층층이 탑을 이루었다.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이 아닌 한 최대한 모두 나누기로 했다. 이고 지고 살던 짐들이 하나씩 다른 주인을 만나 떠나고 나자 집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넓어진 집만큼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어디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짐 정리 시작.

비움

평소에도 우리 부부가 쿵작이 참 잘 맞을 때가 있는데 심심하다 싶으면 가만히 있는 가구의 위치를 바꿔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걸 즐긴다. 여행을 갔다 오면 도착하자마자 거실 바닥에 늘어진 여행가방의 짐을 순식간에 다 풀어서 제자리에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비슷한 정도의 정리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물건을 팔고 물건이 나간 자리를 정리하고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재미를 느꼈다. 팔 물건을 결정하고 사진을 찍고 설명을 써서 사이트에 올리고 가격을 결정/ 조정하고 물건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등 모든 과정을 서로 같은 아이디를 공유하여 함께했다. 커피값도 안 나오는 물건을 팔고 나서 수고했다며 커피를 사들고 동네를 걷다가 웃기도 하고 코로나로 아는 사람들도 맘 편히 못 만나는 이 시국에 잠깐이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 한번 보고 지나갈 인연임에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물건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어수선한 집에서 아인이가 혹시나 불안해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인이는 집에 있는 물건들이 없어지는 것에 비교적 덤덤했다. 오히려 옆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아인이 장난감은 그대로 두고 주로 큰 가구들을 보내는 것이었기에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날까지 아인이 장난감들은 집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덕분에 썰렁할 틈은 없었다.) 다시 미국에 와서 사면된다고 안심을 시켜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대신 대부분의 물건이 떠나기 전에 충분히 아인이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아인이는 물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안아주고 뽀뽀를 하는 등의 나름의 이별 방법을 만들었다. 누가 와서 어떤 물건을 가져가는지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아인이는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물건을 옮기고 차에 싣는 과정을 함께했다. 아마 아인이도 우리처럼 물건을 보내는 과정에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돈을 팔고 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눔에 기쁨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물건을 실은 차가 떠날 때까지 현관문을 못 닫고 끝까지 배웅하는 아인이를 바라보다가 괜히 안쓰러운 마음에 나름의 위로를 하는 것이 나에게도 물건을 파는 과정의 마무리가 되었다.

물건들이 떠나는 걸 배웅하는 아인이.


채움

아인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사용했던 의자가 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 토요일 아침 떠났다. 사실 진작 팔았는데 사겠다는 사람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 떠나기 전 마지막 주말까지 쓰고 넘기기로 했다. 덕분에 마지막 순간까지 아인이가 편하게 의자에 앉을 수 있어 정말 고마웠다. 아기를 차에 태운 부부가 와서 의자를 픽업해 갔는데 이날은 아인이도 다른 물건을 보낼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나도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이게 뭐 울 일인가 싶어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는데 아인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쪼르륵 달려가 "아빠, 엄마가 울어요." 한다. 아인이가 태어나고 나서 세 가족이 함께 웃고 울던 우리의 삼시세끼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의자를 보내니 우리가 이 곳을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짐을 정리하며 찾았던 미국 12년 동안의 다이어리, 테니스 시합에서 받았던 트로피 같은 그 당시 나에게 소중했던 것들, 수많은 사진들과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은 카드와 편지, 정리하는 시간 동안 지난 시간들을 다시금 돌이키며 추억하고 감사할 수 있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

이렇게 특별한 기억과 애정이 담긴 물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물건에 얼마나 애착이 없었는지를 깨닫고는 놀라기도 했다. 아인이가 엄마는 '버리는 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물건을 팔고 정리하고 버렸다. 정말 필요한 것만 신중히 골라서 살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줄이고 또 줄이며 남은 자리는 물건이 아닌 더 나은 가치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마드 라이프

불행인지 다행인지 렌트로 지낸 덕분에 비교적 간단하게 집을 정리했다. 1000sqft(28평) 정도의 방 두 개, 화장실 하나의 집에 6년을 살았다. 카펫 바닥과 낡은 화장실과 부엌처럼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난 6개월 동안 집을 더 열심히 사용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구석구석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머금은 따뜻한 보금자리, 뒷마당에서 보이는 키 큰 야자수 나무,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다  한 번씩 우리에게 인사를 전하던 다람쥐 친구들과 고양이, 아인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흐뭇하게 바라봐주던 윗집 아저씨와 따뜻함을 채워주시던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 이웃들, 낡은 카펫 바닥이나 작고 오래된 화장실마저 그리워질 것 같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우리의 첫 집과 안녕하고 다음 우리가 살 곳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벌었다. 한동안은 부모님 집에 잠시 들어가 짐으로 채우는 대신 그동안 그리웠던 가족의 사랑을 최대한 채우며 살아보는 것이 지금의 단기 목표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집이 없고 가지고 있는 짐이 적지만 마음 가득 든든하기만 하다.

165 broadway, 뒷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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