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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녀 Jan 02. 2022

[코로나 일기] 2022년 1월 02일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 2002년 11월~2003년 7월까지 발생 

신종 인플루엔자 A(H1N1) : 2009년 03월 미국에서 첫 발생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2012년 첫 발생, 2015년 우리나라 상륙

코로나19 :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 확진자 첫 발생


20대 초반, 나는 신종플루에 감염이 됐다. 일하는 곳이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수입과자 판매점이었는데 외국인도 꽤나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다. 하루에 한두 명은 무조건 오는 곳이었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신종플루 이야기가 막 나오는 시점이었고,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날도 외국 손님이 방문하셔서 과자를 사 가셨다. 그 외국인의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키가 크고 피부는 구릿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그 손님이 나가시고 30분? 1시간 정도 됐을까?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춥기 시작했다. 그날 내가 입었던 옷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겉에 초록색 재킷을 입었었다. 가을 정도였던 것 같다. 간절기라서 긴팔 재킷을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일하고 있던 가게는 이벤트홀로 나갈 수 있는 문과 쇼핑몰 내부로 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쇼핑몰 내부에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문은 자동문으로 돼 있었고, 이벤트홀로 가는 문은 자바라식으로 돼 있어서 항상 열어두었다. 날씨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었기에 그렇게 추운 계절도 아니었는데 주체할 수 없는 오한으로 입술까지 덜덜 떨렸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매니저님께 말씀드리고 조퇴를 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팔짱을 끼고 잔뜩 웅크린 채로 1시간을 견뎌야 했다.

드디어 우리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약국에 먼저 들렀다. 


"갑자기 열이 나기도 하는데 오한이 심해요"

"감기약 드릴게요~"


약사님은 신종플루 의심은 전혀 못하시고 감기약을 주셨다. 나도 단순 감기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밥을 겨우겨우 먹고 약을 먹었지만 저녁 9시가 지나서도 오한은 줄어들지 않았고 더 심해졌다. 나는 신음 소리를 내며 춥다고 징징거렸고 엄마는 안 되겠다고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그 이후는 정말로 정신이 너무 없어서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데 응급실에서 증상을 보니 신종플루 의심이 되니까 지금은 검사시간이 끝났으니 내일 다시 와서 검사받으라고 했다. 양성이면 약 받아가서 약 먹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엄마랑 다시 병원을 찾았고 병원 입구에는 이미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그때는 면봉으로 입속 타액을 채취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결과는 양성으로 나왔다. (결과가 다음날 나왔는지 그날 바로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를 듣고 [타미플루] 약을 받아왔다. 그때 약을 주시면서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먹으면 속이 울렁거릴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토를 할 수도 있는데 약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 토하면서 약이 나올 수가 있어요. 꼭 확인해서 약이 나왔다면 바로 약 다시 먹어야 해요!"


도대에 얼마나 독하길래 토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걸까... 잔뜩 겁을 먹었다. 아니, 사실 약 먹는 건 무섭지 않았다. 내겐 다른 걱정이 있었다.


[2009년 8월 15일 신종플루 국내 첫 사망자 발생]


첫 사망자 소식 이후로 계속 사망자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배우 이광기 님의 아드님께서도 신종플루로 세상을 떠났던지라, 나는 약 먹는 두려움 보다도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약을 먹고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거실 천장을 바라보며 그동안 살아온 짧은 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진짜 죽기 싫은데...

슈퍼에서 이온음료를 사 온 엄마가 일어나서 마시라고 했다. 속이 울렁거릴 때 이온음료를 마시면 진정이 된다. 다행히도 토는 하지 않았고, 5일 동안이었나, 하루 두 번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먹었다. 그렇게 먹고 별도의 추가 검사는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복용하고 나니 열도 떨어지고 망할 오한도 사라졌다. 




5일 동안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전염성이 있다는 말에 내가 또 걸릴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옮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집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아, 일하는 곳은 친언니가 직접 방문해서 가게 열쇠를 반납하면서 매니저에게 내 상황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로 나는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다. 

타미플루 복용이 끝나고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엄마랑, 언니랑 다 같이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매니저님께 전화가 왔다. 매니저님은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그거라 매?"

"네?"

"그거~ 그거라 매!?"

"아... 네"


괜찮냐는 말도 어쩌냐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그냥 내가 살아있는지 궁금했나 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곳이었다.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조금 한가해지면 가서 얼른 먹고 와야만 하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종플루 덕분에 잘 그만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바이러스가 유행을 하고 있었어도 마스크를 지금처럼 쓰진 않았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도 아니었고 착용해야겠다는 생각도 지금처럼 없었다. 옛날에 찍은 사진첩을 뒤적거려보면 메르스 때 마스크를 착용한 사진이 있다. 그마저도 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국내에 코로나가 발생한 지 2년째다.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백신이 나왔고 사람들 얼굴의 절반은 마스크로 덮여있다. 마스크를 쓰는 건 의무가 됐고 백신은 말은 자유라고는 하지만 의무화가 된 분위기다.

사실 나는 불안증세가 남들보다 조금 있고 매일 저녁 약도 복용하고 있다. 백신이 나오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바랐지만 부작용 소식과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백신 거부자가 됐다. 그러나 내가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는 매일 가야 하는 곳이고, 재택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눈치는 보였다. 마스크를 누구보다 잘 쓰고, 점심도 도시락을 준비해 가서 자리에서 먹는 다고 했으나 어느새 사무실 안에는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리스트가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그중에 내 이름과 같은 팀에 있는 A 언니 이름 옆에 미접종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걸 모두가 알게 됐다. 당연히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지만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접종자들은 이기적이라고 말하거나 슬며시 다가와 왜 접종하지 않느냐고 묻거나 아침에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에 접종했어요? 안 할 거예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일의 특성상 사무실에 사람들이 없고 상사 3분과 나 이 정도만 남아서 일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2021년 12월 31일 저녁 친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접종자들 입장에서 미접종자를 보면 무임승차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 나도 부작용 감수하면서 맞았는데 자기는 뭐라고 안 맞아? 자기 주변 사람들이 다 접종하면 본인은 접종하지 않아도 안전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무임승차하려는 것 같아서 싫다고..."


이 말을 듣고 머리를 띵~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접종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가 걱정하는 건 접종을 하고서도 물론 감염이 되기도 하지만 중증으로까지 가진 않고 증상 없이 가볍게 지나갈 수 있으니까 접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니는 2차까지 접종을 끝내고 3차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접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거의 집에서 생활한다지만 나는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하고 매일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생활하다가 집에 와야 하니 나 때문에 엄마가 감염되면 정말 대략 난감이니까. (엄마는 주사 알레르기가 있어서 접종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1월 내로 1차 접종을 시작하려고 한다. 접종 생각만 하면 너무 떨려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접종한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하루 이틀 정도만 견디면 괜찮으니까 타이레놀 준비해놓고 마음 편하게 접종하고 오라고 말해줬다. 당장이라도 예약은 하겠지만 이번 달 생리가 곧 시작이라서 생리 기간 끝나고 몸 좀 쌩쌩할 때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3차까지 접종을 하지 않으면 식당, 카페는 물론 앞으로 백화점과 마트 출입도 불가능하다고 하니 기본적인 생활권마저 박탈당하는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오지만 오늘 0시 기준 추가 확진자는 3,833명으로 12월 8일 7,175명 발생한 이래 근 한 달 만에 3000명대로 떨어졌다. 기분이 너무 좋기도 하면서도 하루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마냥 기쁠 수만도 없다. 


여전히 뭐가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이 시기가 언제쯤이면 끝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불안감을 가지고 맞는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있다. 올해도 접종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잘하면 잘릴 수도 있겠다고. 나는 먹고살아야 하는 월급 쟁이니까 살아가려면 접종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씁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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