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먹은 약이 아깝긴 한데...
이젠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2017년부터였던 것 같다.
출근길 나는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지하철에서 내렸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도저히 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수가 없었다. 급히 회사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집 근처 가정의학과로 갔다. (자주 가던 내과에 사정이 생겨서 잠시 문을 닫았다.) 나는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후~ 하고 내쉬면서 현재 내가 느끼는 증상을 의사에게 말했다.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온몸이 저려요.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요"
"공황장애입니다."
의사는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귀로만 내 증상을 듣고는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당시에 공황장애는 연예인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내가 공황장애라고?? 의심을 조금 할 법도 했지만 사실 나는 병원에 내원하기 몇 달 전부터 이런 증상으로 힘들어서 엄마에게 말하기도 했었다.
"엄마, 나 요즘 숨 쉬는 게 많이 힘들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응응"
"엄마, 아무래도 나 병원 가봐야 할 거 같아. 증상이 딱 공황장애 같아"
"공황장애는 무슨"
엄마는 콧방귀를 뀌었고 나는 아무래도 내 증상은 공황장애 같았다. 그래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을 때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다. 아, 결국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병원을 나와 약국에서 약을 타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야?"
"넌 이 시간에 왜 전화야? 잠깐 나왔지~ 왜~?"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출근 안 하고 집 앞에 가정의학과 왔는데 공황장애래"
"뭐!!!? 그 의사 또라이 아냐!???"
아마도 엄마는 금쪽같은 내 딸한테 그런 병이 생겼을 리가 없어!라고 생각해서 순간적으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아니면 당신의 딸이 '장애'를 가지게 됐다는 거에 짜증이 났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그런 '장애'에 거렸다는 게 화가 났던 걸까.
분명 엄마 나름대로의 걱정이었다고 이제는 생각하지만, 당시 나는 엄마의 대답을 듣고 너무 슬프고 서운해서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엄마의 대답은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냥 작은 위로였다. 하지만 당시 엄마에게 공황장애는 잘 알지 못하는 병의 하나였고 그렇기 때문에 생소함에서 오는 불안감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엄마는 내가 가진 병에 대해서 크게 관심도 없고 전혀 힘든 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정도인 것 같다.
첫 진단을 공황장애로 받아서 그다음에는 동네에 좀 큰 병원의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아봤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의사의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급하게 병원을 옮겼다. (약이 너무 세니까 좀 다른 걸로 해줄 수 없겠냐, 뭔가 질문을 했더니 내가 환자분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아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않냐고 말했던 것 같다. 그쪽이 그렇게 공부 많이 한 전문의인 건 알겠는데 말을 그따위로 하면 가뜩이나 정신이 아파서 온 사람한테 퍽이나 도움이 되는 말인지 의문이 든다.)
아무튼 그 뒤로 동네 다른 병원으로 바꿨고 거기에서 4년을 꾸준히 다녔다. 처음에는 하루 세 번을 먹었던 약이 하루 두 번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루 한 번 두 알로 줄었다. 기뻤지만 약을 줄이는 것도 내가 요청해서 그럼 줄여볼까요?라고 해서 줄이게 된 거였다. 약을 줄여도 몸에 그다지 무리가 가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꾸준히 먹으면서 중간에는 약을 또 줄여달라고 해서 줄였다가 죽을 뻔해서 다시 원상 복귀했던 적도 있다.
그러던 중 병원 원장님께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입원하는 바람에 근처 다른 병원을 소개해주셔서 그쪽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원장님께서 친절하고 내가 하는 말도 잘 들어주시고 설명도 차근차근 잘해주셨다. 그 뒤로 바로 병원을 바꿨고 약은 이전에 계속 먹던 대로 똑같이 처방해주셨다. 그 이유는
"흠... 이 약은 무슨 이유로 복용하게 됐죠?"
"공황장애요"
"공황장애요? 이건 공황장애는 아니고 불안증상을 조금 경감시켜주는 약이에요. 공황장애일 때는 잘 쓰지 않아요. 왜냐면 사실 이걸 굳이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의 함량이거든요... 음.. 그러면 좋아요. 더 빨리 약을 끊을 수 있겠네요. 앞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금방 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힘 내보죠."
이런 말을 해주셔서 나도 금방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직도 여전히 같은 약을 복용하고 있다.
심지어 끊어보겠다고 하루 이틀 먹지 않았을 땐 진짜 두통과 메스꺼움, 과호흡에 시달렸다. 젠장.
약을 복용하면 좋아졌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약발이 듣질 않는다. 평소에 워낙 걱정이 많고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약을 먹어도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심장이 두근거리고 안 좋은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고 진짜 우울함이 정점을 찍는다. 진짜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들 정도라서 나 자신이 무서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이러다가 내가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다음 주에 병원에 가는데 가서 약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고 바꿔보고 싶다고 말해봐야겠다.
약이 세져서 끊기 조금 힘들더라고 지금의 이 기분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기만 한다면 도움을 받고 싶다.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