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지 말고 약을 바꾸자
수요일은 병원 야간진료가 있는 날.
퇴근 후 병원으로 갔다. 이른 퇴근으로 병원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접수를 하고 10여분을 기다렸을까 들어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네~ 안녕하세요~ 000씨 맞으시죠~?"
"아, 네네 안녕하세요~"
항상 인자한 목소리로 맞아주시는 선생님. 나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약발이 안 듣는 것 같아요. 약 좀 바꿔주세요."
나는 지금 다니는 병원에 오기 전에 버스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다녔었다. 그 병원은 주중에 야간진료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토요일 오전에 방문하곤 했는데 손님이 미어터질 듯 넘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당일 병원 간호사에게 들었고, 근처 병원을 소개해줘서 그곳으로 간 것이 지금의 병원이다. 원장님께서는 아마도 그날만 약을 타러 왔을 거라고 생각해서 원래 먹던 약 그대로를 처방해 주셨다. 원장님께서는 인상도 좋으셨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해주셨다.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나는 이 병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쭉 다니고 있다.
계속 다니기로 마음먹었으면 검사도 다시 해보고 할걸... 그냥 예전에 먹던 약 그대로 처방받아서 줄곧 먹었는데, 올초부터 약을 아무리 먹어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루 종일 숨쉬기가 힘들었고 심장은 계속 벌렁벌렁 거리고 온몸이 찌릿찌릿 거리면서 늘 긴장상태였다. 심하면 손이 떨리기도 했다. 우울증은 바닥을 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와... 이러다간 정말로 큰일 날 것 같았다.
나는 원장님께 지금 내 몸이 느끼는 증상을 다 말씀드렸고, 원장님은 내 말을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제 와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지만, 전에 병원에서 복용하시던 약은 사실 지금 증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약이에요. 그런데 처음부터 오시던 분이 아니셔서 갑자기 약을 바꿨을 때 환자분께서 거부감을 가지시거나 하실까 봐 그랬거든요..."
"아뇨!! 바꾸셔도 괜찮아요!"
그냥 지금 이 상태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아마도 그동안에 이 약을 복용하시면서 괜찮았다고 느꼈던 건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클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 증상을 토대로 제가 새로 약을 좀 처방해드릴게요~"
나는 원장님께 2년 전쯤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범불안장애]라고 진단을 받았다는 것도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시면서 내 말에 호응해주셨다.
"다음 주는 설 연휴니까 우선 2주분을 지어줄게요. 만약 오늘 먹어보고 이런저런 부작용이 느껴지거나 생기면 전화 주세요. 그리고 약은 하루 2번 아침, 저녁으로 복용할 건데 이전보다는 약의 개수는 조금 늘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리고 향정(향정신성 약)도 안 넣었고 졸린 약도 없어요. 효과는 좋을 거예요."
뭔가 확신에 찬 원장님의 목소리에 내 마음도 든든해졌다.
약값은 지난번보다 4천 원 정도 더 나왔지만 어서 그 효과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자마자 저녁 약을 먹었는데 확실히 다르다.
사실 새로운 약을 예전에 먹고 (검사했던 병원에서 지어준 약) 속이 뒤집히고 손이 떨리는 증상이 생겨서 바로 중단했던 기억이 있어서 약을 새로 바꾼다는 건 나도 조금 겁이나긴 났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상반응은 없다. 확실히 심장의 두근거림이 사라졌고 기분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일단은 큰 반응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아서 만족한다.
약을 줄이고 싶고 완전히 끊고 싶은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지금까지 꼬박꼬박 약을 먹었는데, 새로운 약으로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내 안에 있는 불안함 들을 급하게 빨리가 아닌 천천히 자연스럽게 내보내고 싶다. 약의 힘에만 기대지 말고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서 노력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