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를 읽고
회사를 다닐 때 제품개발부였다. 우리 부서는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토콜에 따라 제품 진행 일정을 짜서 그대로 진행하면 되었으니까. 물론 일정을 못 맞추는 변수가 생기면 골치 아플 때도 있었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제품 하나를 시작부터 시장에 나오기까지 하나하나의 과정에 다 관여하며 이 부서, 저 부서와 함께 일을 했다. 가끔은 마케팅부와 만나 제품 회의를 하거나 정보를 제공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내가 만난 그들은 한마디로 호랑이 같았다. 우리 부서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은 드물었다. 큰소리가 나올 땐 주로 마케팅부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였다. 제품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우리 부서보다 마케팅부가 아이러니하게도 더 확고한 신념을 가질 때가 많았던 것이다. 호랑이 같다는 건 부지런하고 목표에 대해 열정적이라는 뜻이다. 어떤 제품이든 마케팅은 매출로 바로 이어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예민하고 디테일했다. 마케팅을 괜히 제품 개발의 꽃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는 인간의 구매행동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해, 마케팅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실용서이다. 항상 소설류만 손에 들던 내가 이 책을 손에 집어든 건
1. 뇌과학과 마케팅을 접목시켰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2. 남편의 사업에 적용할 요소가 있는지 궁금했고,
3. 소비자로서 물건을 구입하는 의사결정과정에 주의할만한 점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사실은 충동구매의 선구자이자 노예이자 달인으로서 3번 이유가 가장 컸다.
저자인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은 Limbic유형을 개발했다. 이것은 뇌과학 연구를 기반으로 소비자 목표그룹을 세분화한다. 그리고 각 그룹의 소비자에 적합한 마케팅을 제공한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의식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소비자의 구매결정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거기엔 항상 감정이 개입해 있다. 하지만 감정에 의한 소비자의 구매결정 버튼이 단 하나만은 아니다. 제품, 서비스, 고객 사이의 수많은 접점을 최대한 구매버튼으로 활용할 때, 소비자가 상품을 사도록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스트코를 이용하는 고객과 백화점 식품코너를 이용하는 고객의 기대 수준은 다르다. 코스트코는 최저가와 적당한 품질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그곳을 이용하는 고객은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쇼핑하기를 바란다. 균형을 중요시하는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백화점 식품코너를 이용하는 고객은 최상의 품질이면 많은 값을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다. 값을 지불하는 만큼 서비스와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표에서 지배를 중요시하는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이렇게 고객층을 분류하여 그들이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항목 별로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제공하면 구매를 증진시킬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사례를 들어본다. 몇 년 전, 동생이 명품매장에 시계를 사러 간다고 해서 함께 간 적이 있다. 시계를 사는 과정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유난스러웠다.(시계를 쉽게 구매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이 가치를 올린다.) 명품 매장은 예쁘고 고급스럽다. 어떤 곳은 좋은 향기가 나기도 한다. 셀러들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그 브랜드의 목걸이나 팔찌, 귀걸이, 반지등을 착용하고 있다. 들어가면서부터 셀러 한 명이 손님을 전담한다. 친절한 웃음과 몸짓으로(마치 오늘 하루 당신들과 함께하기 위해 나의 시간을 빼놓았다는 듯) 환대를 해준다. 간단한 인사로 (물건을 사기에 필요한 만큼의)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어떤 제품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보고 오신 제품 있으세요?"라고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친절히 묻는다. 보여주길 원하는 제품을 말하면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며, (예쁘고 푹신한)의자로 안내를 해준다. (만약에 vip손님이라면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은 호텔처럼 생긴 비밀의 방에 데려가 제품을 보여준다.) 손님이 원하는 제품을 먼저 보여주고 팔기에 좋은 제품도 나중에 보여준다. 혹은 손님이 시계를 원한다면 목걸이, 반지나 팔찌도 추가로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 꼭 구매를 하지 않아도 추가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제품을 미리 노출시키는 전략이다. 동생은 사고자하는 시계가 분명했기에 그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이즈를 고민하자, 직원은 큰 사이즈로 권한다. 큰 사이즈는 지금 가져갈 수 있고, 작은 사이즈는 주문해야 해서 한 달 정도 후에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다가온다. 이제 두 명이 큰 사이즈를 권하는데, 설득하는 방식이 굉장히 디테일하다. 자신의 경험, 고객님들의 경험, 나이 들어감을 고려, 가성비 등 생각지도 못한 면들을 이야기한다. 두 직원이 마치 만담꾼들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설득을 하는데, 마치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결국 동생은 고민 끝에 작은 사이즈를 선택한다. 직원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고서, 잠깐 전산을 확인해 보겠다고 한다. 마침 오늘 들어온 작은 사이즈의 시계가 있다고, 고객님은 운이 좋으셨다고 얘기한다. 아까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던 시계가 바로 생겨나는 마법이 신기하기도 하다. 직원이 앉아서 결제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결제 방법을 안내해 준다. 동시에 에비앙 생수 혹은 피지 워터를 가져다준다. 굳이 스위스나 피지산 물을 주는 것은 물로도 대접받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마시면서 편안하게 기다리라고 하며 제품과 보증서에 대한 설명을 한참 한다. 제품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은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한다. 그러고 나서 제품을 포장해 준다. 포장도 간단하지 않다. 시계를 케이스에 넣고 예쁘게 또 한 번 포장을 한다. 포장을 마치고 중세 유럽에서나 편지 쓸 때 찍었을 것 같은 실링을 찍어준다. 우리 브랜드의 특권이라고 한다. 실링이 마르기까지 기다려 쇼핑백에 넣어준다. 시계줄이 혹시 변색되거나 문제가 있으면 쇼핑 나온 김에 언제든지 들러서 세척을 해주겠다, a/s 해주겠다고 안내를 해준다. 세척을 하면서 또 한 번 구매 유도를 하기 위한 이 브랜드의 전략이다. 이 모든 과정이 다 끝나면 무겁지도 않은 쇼핑백을 매장 앞까지 기어이 들어주며 배웅을 한다. 마지막으로 명함까지 건네주고 90도 인사를 하신다. 엉겁결에 맞절을 하고 나오는 동생과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이렇게 시계 하나 사는데 반나절이 걸렸지만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명품 매장에서 지켜야 할 마케팅의 여러 요소들을 셀러는 최대한으로 활용한 것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무의식적인 효과를 과장광고하는 것도 마케팅의 일종이다. 물건에 담긴 이야기는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이 신비로운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유럽의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의 노트였다는 스토리가 담긴 몰스킨. 일반 노트에 비해 가격이 다섯 배나 차이나도 경제적 합리성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구매한다. 물건의 효과가 실은 마케팅에 못 미치지만 그 효과를 (과장하여) 광고하는 제품도 많다. 법에 저촉될 정도의 허위나 과장 광고는 지양해야 하지만, 약간의 과장은 허용해도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광고를 믿고 이용한다면 플라세보 효과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소가 많이 들었다고 광고하는 물을 마시면 우리는 왠지 더 상쾌한 기분을 가지는 것처럼. 그렇다면 반대로 소비자인 우리에게는 광고를 100%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건강기능식품 같은 경우, 어떤 제품의 특정 성분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하며 임상을 제공할 때, 거기에 어떠한 허점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소비자의 역할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플라세보 효과나 보자고 섭취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좀처럼 전공책 말고는 비문학은 손에 집어 들지 않는데, 비문학 그중에서도 마케팅 관련 책을 처음 읽어본 입장에서 신선하다는 게 나의 첫 느낌이었다. 회사 다닐 때의 열정 가득한 마케팅부 직원들이 떠오르며 그들의 제품에 대한 열정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떤 요소를 어떻게 도입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무작정 시도하는 것보다 과학적 분석을 통한 감정 건드리기라는 것. 일단 소비자 타겟층을 정하고 그들의 특징을 분석한 후, 감정을 움직이는 다양한 요소들을 집어넣는 과정이 세밀하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거기에 더한 진심 한스푼일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마케팅적인 요소들을 알고 나니, 내가 심리적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알 것 같다. 나의 소비는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디테일하고 세심한 서비스와 대접받는 느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 같은 착각으로 인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 또 충동구매를 하려고 구매버튼을 클릭하려 할 때, 이 책이 생각난다면 구매를 미룰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구매과정에서의 심리를 누군가는 다 읽고 이용하고 있을 거라는 기분 나쁜 느낌. 이 기분만 간직하고 있어도 충동구매를 반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