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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26. 2024

비 맞을까 두려워 너의 길을 멈추지 마

엄마가 네 우산이 되어줄게

3월 말부터 12일간의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가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그립고 빨리 흐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즐거웠던 여행이기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여행이 좋았고 그만큼 계속 생각난다. 하지만 아이의 그리움은 시간이 빨리 흘러 추억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속상함으로 이어졌고, 그러다 어느새 10살, 11살이 고, 시간이 흘러 엄마는 할머니가 되고, 더 시간이 흘러 자기는 할아버지가 될 테고 그럼 엄마는 죽을 거라며 슬퍼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 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에 30번은 한다. 스쳐 지나가는 행운의 뒤통수를 간발의 차로 놓친 사람처럼 안달복달한다. 이성적인 설명도 감정적인 공감도 아이의 시간에 대한 강박적 태도를 걷어낼 수 없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글로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봐도 좋아지기는커녕, 죽음으로 닿는 사고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가족이 같은 순간에 죽기를 바라는 아이에게 하늘나라에서는 다 같이 만나서 잘 지낼 거라 이야기했더니, 그런 곳이라면 내일 아침에 죽어서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죽자는 건지 살자는 건지...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지금의 인지능력으로 3살로 돌아가서 모든 걸 기억하고 싶다고 하며 어릴 적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커서 결혼도 안 하고 엄마랑 아빠랑 평생 살며 애도 안 낳겠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다.


여러 고민을 하다 아이와 여행을 떠올리며 감정카드놀이를 했다. 여행에서 느낀 감정에 해당하는 카드를 꺼내 펼치고 그 카드를 설명했다. 당연히 즐겁고 설레었을 여행 첫날로 시작했다. 아이가 꺼낸 카드에 예상하지 못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 슬픈, 속상한, 불안한. 이 감정들을 왜 느낀 걸까?

"여행 가는 건 좋은데 아빠랑 헤어져서 슬펐어."

"엄마도 그랬어. 그래도 며칠 후 만나서 다행이더라."

"후니랑 같이 있고 싶었는데 엄마가 밥 먹어야 한다고 데려가서 속상했어."

"그래 보이 더라."

"여행 가기 전에 혼자 자라고 해서 불안했어."

"아..."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그것도 에이스 투수가 제대로 던진 직구에.


감정카드놀이하며 웃다 울다


올해 들어 잠자리에 누워 매번 아이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있다.

"빨리 자. 엄마 너 자고 나면 엄마 나가서 일해야 ."
글쓰기에 재미가 생기면서 아이가 잠들고 난 후가 너무 소중했다. 아이가 빨리 잠들어야 내 시간이 확보되니 마음 편히 재우기보다는 재촉을 했다.
"엄마도 피곤하니까 너 혼자 자봐. 자고 있으면 엄마가 빨리 하고 들어올게."
아이가 잠드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결국 혼자 잠들기를 강요했다.
새벽기상을 시작하며 아침에 아이 혼자 눈뜨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옆에 없는 엄마를 찾고 외치며 일어났다.
그렇게 나의 연두빛깔아이는 의도치 않게 방치되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 함께 있을 때도 매 순간 아이 옆에 있었지만 아이 대신 컴퓨터를 쳐다봤다. 책 읽는 좋은 엄마가 되려 했는데 책만 읽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아이 옆에 머물지만 소홀했고, 아이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 역시 엄마의 무신경한 대답에 "엄마가 생각하지 않고 대답할 때는 이렇게 하더라"라고 말하며 자기 나름의 사인을 보냈었다. 그렇게 지내다 여행을 떠났고 여행지에서 아이와 함께 잠들고 깨어났다. 컴퓨터를 쳐다보는 대신 아이를 쳐다보고,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며 바다와 풀장에서 함께 놀았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불안하고 싫은 게 이해가 됐다. 긴 여행이 문제가 아니었고 결국 내가 문제였다. 아이가 잠들고 답답한 마음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책장을 뒤지다 책을 한 권 발견했다. 4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지인 추천으로 구매한 책이다. 책의 띄지에 아이의 이름이 적혀서 배송되는 내 아이만을 위한 엄마의 선물이 그것이다. 그 당시 도착한 책을 읽어보고 유치원에 갓 들어간 아이에게 읽혀주기보단 좀 더 자라고 의미를 깊게 느낄 수 있는 나이에 읽혀주고자 책장에 꽂아 놓고 잊고 있었다.




아침에 함께 일어난 아이를 끌어안고 책을 읽어 주었다. 한번 더 읽어달라는 아이의 말에 다시 읽어주고 원할 때마다 읽어주었다. 혼자 읽어 주기도 함께 읽기도 하며 아이 곁에서 머물렀다. 책을 읽지 않는 순간에도 최대한 아이에게 집중했다. 마침 장염으로 학교를 못 가는 아이에게 온 신경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니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아이의 건강이 호전되고 학교를 가야 하는데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 학교를 안 가고 싶다 한다. 드디어 아이의 솔직한 마음이 나왔다.

엄마도 너를 사랑해서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학교는 가야 하는 거야. 네가 학교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엄마도 엄마일을 하고 만나자. 그리고 우리 같이 재밌게 놀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


떼를 쓰던 아이도 6일 만에 등교를 했고 다시 일상으로 녹아드는 중이다. 여전히 시간과 추억을 이야기하고 엄마를 찾지만 점점 나아지는 중이다. 그런 아이 옆에서 전보다 조금은 더 아이를 마주하고 귀 기울이려 노력한다. 아직은 엄마라는 자리가 내가 머물러야 하는 자리인가 보다. 머지않아 엄마보다 친구가 좋고 하숙생 같은 생활을 할 거라는 이야기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렇게 변하는 관계가 나한테 또 얼마나 속상하고 그리울지 눈에 보인다. 그러니 엄마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이 시간 역시 아이의 선물이라 생각해야겠다.



아침 등교 전에 엄마의 선물을 읽고 학교가며 아이가 조용히 부른다.

"엄마, 내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애를 낳으면 그 책 가져가서 읽어줄래."


그렇게 우리 집 가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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