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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May 06. 2024

게임 시키려는 아빠 vs. 질색하는 아들

프로게이머를 시킬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랬어

나는 게임을 싫어한다. 몇 번 해보긴 했는데, 재미가 없다. 재미를 느낄 만큼 폭 빠져서 한 적이 없어서인지, 애초에 게임 호르몬이 없어서인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매번 그만뒀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오락실도 자주 갔는데, 그때도 재미는 없었다. 재미가 없으니 못하고, 못하니 맨날 지고, 그래서 더 재미가 없고의 악순환이었다. 아, 선순환인가? 승부욕이 대단히 많아서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는 핸드폰 게임도 해봤는데, 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 내기 볼링이나 몸 쓰는 게임, 보드게임 같은 건 좋아하지만, 기계로 하는 게임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뻔'한 흔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오락실 죽돌이였다. 학교 선생님이 오락실 앞문으로 잡으러 가면 뒷문으로 도망가다 귀를 잡혀 나오는 그런 아이. 하루가 멀다 하고 혼쭐이 난 사람이 내 남편이다. 심지어 반에서 꼴찌까지 하여 그 당시 선생님이셨던 시어머니를 기함하게 만들었으며, 그 일을 계기로 다시는 오락실 근처에도 못 가도록 사교육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교육의 역사와 게임의 역사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중학교 때는 새벽까지 게임기로 이불속에서 몰래 게임을 하다가 시아버지께 걸려 망치로 부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아빠한테 혼나는 것보다 게임기가 망가져 더 이상 못하게 된 게 더 아쉬웠다고 하는 걸 보면 얼마나 게임러버였는지 알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시어머니께서 시동생과 허구한 날 피시방으로 남편을 잡으러 다녔다. 멀리서 시어머니의 실루엣을 보고 방향을 틀어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집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척하는 것이 그의 주특기였다. 심지어 고3 때는 디아블로에 빠져 1년이 날아가는 바람에 재수를 했다. 이 정도의 역사를 가진 남편이니 재수생 시절을 게임 없이 무사히 보낸 게 신기할 노릇이다. 그 여파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껏 풀어져 게임에 미친 자들과 함께 게임 대회에 나갔다고 한다. 위닝이라는 게임으로 1등을 거머쥐기도 했다는 걸 보면 그 성과가 대단하긴 하다. 뭐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이어서 게임으로 밀어줬다면 한몫 단단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내 아들의 미래가 그려져 심란함이 함께 몰려온다.


그러던 남편이 나를 만난 이후로 게임을 끊었다. 꼭 나를 만나서라기 보다는, 계속 게임에 빠져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단다. 내가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뭐 취미 생활이라면 '적당히'만 하면 되지, 문제 될 거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다. 적당히 할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고 스스로 그 싹을 잘라버렸다. 나중에 아이가 게임을 하게 된다면 그 때 함께 하는 아빠가 되겠다고 한다. 나도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아이가 영원히 게임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게 된다면 아빠와 함께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이라면 폭 빠져들 게 분명하니, 그날이 최대한 늦게 오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아이가 게임을 처음 접해본 건, 역시 학원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하는 게임을 보고서였다. 아이는 게임을 직접 해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남편이나 나의 핸드폰엔 게임이 깔려있지 않으니 해볼 수가 없었다. 굳이 게임을 깔아서 하게 할 필요성까지는 못 느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놀러 간 호텔에서 게임룸을 발견했다. 투숙객은 한시간동안 무료이용이 가능하단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아이가 처음 하게 된 게임은 테트리스. 기대에 찬 아이의 눈빛과는 달리, 이글이글한 남편의 눈이 대조되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시작부터 불안 불안하다.


처음 하는 아이가 잘할 리 없다. 한판의 게임이 꽤 빨리 끝났다. 아빠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아들이 처음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여 조심스레 묻는다.

“아빠, 나 처음치고는 잘했지? 좀 어려웠어.“

“그치? 그럼 아빠가 좀 알려줘 볼까? 너 빨리 배울 수 있게 도와줄게. 얼른 배워서 아빠랑 같이 하자.“

“응, 좋아. 아빠가 잘하니까 알려줘.“

아빠는 사뭇 진지하다. 아이 옆에 앉아 각을 한껏 잡는다.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는 듯 모든 키들의 움직임을 공들여 설명한다. 그리고는 두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경민아,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지. 좀 더 빨리 모양을 바꿔. 왼쪽으로 얼른!! 빨리 좀!! 옳지! 그건 그쪽이 아니라 이쪽!! 더 빨리!!”

아빠는 게임 속에 들어가 있는 듯 몰입을 시작했다. 아빠의 마음을 처음인 아이의 손이 따라갈 리 없었다. 아빠는 계속 재촉하고 아이는 허덕이는 바람에 두 번째 게임의 스코어는 첫 번째보다도 낮게 나왔다.

“아빠 때문에 헷갈려서 더 못하겠어. 나 혼자 할래!”

아이의 선언에 남편은 알겠다고 하며 잠시 물러났다. 그런데 자신의 후계자가 궁금한지, 곁눈질로 계속 힐끔힐끔 본다. 어느새 그는 아이의 뒤에 서있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또 훈수를 두기 시작하는 남편. 아이는 또 좌절했다.

“테트리스 재미없다, 다른 거 할래.”


이번엔 자동차 게임.

“자, 처음이라 아빠가 알려줘야겠지? 아빠 하는 거 잘 봐.“

아이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실력을 뽐내기 시작하는 남편이다. 아이는 게임이 시작도 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아빠와 아이의 완벽한 동상이몽. 아빠는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지만 너무 급하고, 아이는 그런 아빠가 부담스럽다. 결국 아빠 혼자 게임 설명을 하며 재미나게 한판을 하고, 뒤늦게 부랴부랴 아이를 찾기 시작한다.



아이는 소닉 탈출게임을 하고 있었다. 처음이니까 금방 죽고 다시하고의 반복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탓에 아이의 손이 빠르진 않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조금씩은 늘고 있었다. 분명 재미를 느끼며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게임코치님은 절대 가만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다. 슬그머니 아이 뒤에 다가가 또다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물만난 물고기는 오늘 네버 스탑 잔소리 릴레이를 펼칠 예정인가보다. 평화롭던 아이의 게임은 또 한번 짜증으로 물들었다. 결국 한 시간을 다 못 채우고서, 얼굴이 폭발할 듯 빨개진 얼굴의 아이는 씩씩거리는 콧김을 내뿜으며 내게 왔다.

“엄마, 나 이제 안 할래!“

“왜 무슨 일이야? 화나는 일 있었어? 진정 좀 하고.“

“아빠, 게임은 즐거우라고 하는 거 아니야? 왜 그래?“

“하는 김에 잘하면 또 좋지 뭐. 이리 와 봐. 아빠가 이번엔 잘 알려줄게. 다시 해보자. 응?“

“나 이제 게임 질렸어. 게임을 공부하듯이 하면 재밌는 사람이 어딨어. 아빠는 게임을 공부처럼 시켜. 화도 내고. 게임 좀 못한다고 세상이 달라져? 게임 이제 안 하고 싶어. 세상에서 게임이 제일 싫어!!!”

“아빠가 미안해. 그래도 아빠는 네가 어디가서 게임 못한다는 말은 안들었으면 좋겠어.“

“아빠가 잘하면 나도 꼭 잘해야돼? 그리고 아빠같으면 이렇게 게임 배우면 재밌겠어?!!”

“나는 그렇게 해도 재밌던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재미있는 게임에 흥미를 뚝 떨어뜨려 놓다니 이거야말로 엄청난 능력 아닌가.




아이 7살에 동네 아이들과 축구하는 걸 남편이 본 적이 있다. 코로나 시기여서 거의 하루종일 밖에 나가 놀 때였다. 그때 아이의 모습을 본 파이팅 넘치던 남편이 당장 1:1 축구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물론 아이의 축구는 축구로만 보면 누가 봐도 엉망진창이긴 했다. 하지만 재미로 하는 거고 축구선수 시킬 것도 아닌데 무슨 1:1 씩이나 시키냐고 했더니, 남자들의 세계를 몰라서 그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자들의 세계를 알리 없던 내게 그 말은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 길로 동네 축구학원에 1:1 축구 등록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도 놀라 반문하셨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룹 축구도 운동량이 꽤 되는데 1:1 축구의 운동량은 엄청났다. 따로 힘든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는 파김치가 되어 안 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아이가 안타까워 남편을 설득시켰지만 축구에 있어서 만큼은 남편의 입장이 훨씬 더 단호했다. 무슨 말만 하면 남자들의 세계를 운운하기에 남편의 말이 맞겠거니 했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 가며 1년을 유지하여 실력은 놀랄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은 축구다.


게임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니 사랑하는 아들을 미니미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고, 축구는 자신이 잘 못하는 운동이니 치욕의 역사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조급하게 하나하나 가르치려 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남편은 사교육에 잔뜩 물든 사람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지도하는 게 효과적인지, 몸에 인이 박히도록 배웠다. 그는 효율의 끝판왕을 추구하는 타입이라 몰아붙이는 스파르타 교육의 효과를 맹신한다. 남편의 성향과는 딱이다. 하지만 아이는 슬로 스타터다. 뭐든 지켜보고 천천히 할 듯 말 듯 시작해 보다가, 때가 되면 꽃 피우는 타입이다. 강요하면 할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성향이다. 아빠의 의도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둘의 성향이 대척점에 있어서 아빠의 방식이 아이에겐 지나치게 급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몰아붙이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의 자율성이 담보되어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축구를 교훈 삼아 뭐든 강요하지 말자고 남편과 이야기하며 다짐했었다. 설득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으나, 남편은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사교육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서 우리는 평화를 찾았다. 이런 남편이니 그간 얼마나 근질근질했을까. 게임 훈수를 두면서 지나치게 신이 나 보이던 그에게서 몇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게임 사건 이후로 남편은 아이에게 뭔가를 알려줄 때 친절함과 과묵함을 담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또한 일상에서 쓸데없이 강요하는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난 아이가 게임을 싫어하게 된 게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헷갈린다. 올바른 방식은 아니었지만 게임 자체의 효용성을 따지고 보자면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살짝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는 아이가 흥미를 되찾아 게임을 진짜로 시작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난 게임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회색분자처럼 그저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의 스파르타식 게임 교육이 또 튀어나왔을 때, 그를 말릴지 말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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