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어색하고 뻘쭘한 마음
노트북을 켰다. 타자를 치는데 글자가 왜 이리 작아진 건지, 그새 노안이 온 건가 눈부터 비비고 본다. 무슨 글을 써야지 생각하고 켠 건 아니다. 두어 달간 노트북은 열지도 못하고 구석에 먼지만 잔뜩 먹고 있었다. 이러다 절필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드디어 뚜껑을 연 것이다. 내 노트북을 노리는 하이에나로부터 이걸 뺏길 위기도 몇 번을 넘겼는지 모른다. 글쓰기는 근육과도 같아서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브런치의 알람이 백번 맞다. 처음 글을 쓸 때처럼 머릿속이 청순하기만 하다.
그간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아픈 것도 맞고 내 입으로 아팠다고 말했으나 정말 아팠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 생활을 하고 네발 달린 동물처럼 기어 다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나 그동안 아팠어'라고 하기에는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미안한 감이 있다. 글을 쓰지 못한 건 전자기기를 보고 있으면 울렁거림이 계속되어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멀미약을 들이켰던 10대의 어느날처럼, 폭탄주를 들이붓고 숙취에 시달렸던 20대의 그날들처럼. 사실은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소화가 안 되는 것을 기본으로 구역+구토, 변비, 설사 세 가지 중 하나에 33프로의 확률로 당첨되어 시달려야 했다. 전자기기를 보면 그 증상이 좀 더 가속화되는 이유로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의 고정석은 침대가 되었는데,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주로 자거나, 또 자거나, 또 자거나. 이러다 내가 침대인지 침대가 나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1%라도 더 인간답게 있고 싶어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소파로 갔다. 종일 침대만 되는 건 지겨우니까 소파도 되어보겠다, 잠자는 사람이더라도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겠다 이런 일념들로. 종일 자다 보면 컨디션이고 뭐고 잠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잠깐 천장을 보며 멍을 때리다가 눈을 돌려보는데, 우리 집 소파에 항상 널브러져 있는 책들과 눈 맞춤을 하게 된다. 고개를 어느 각도로 돌려도 책, 책, 또 책이다. 머리맡에도, 발밑까지도.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 놓은 건 아니었는데. 다행히 책은 전자기기보다는 백번 나았다. 하지만 책도 오래 보고 있으면 그새 내 속이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 트위스트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므로 하루에 읽는 시간은 제한이 되었다. 이런 악조건이 되니, 오히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독서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도둑맞은 집중력에 대해 고민한 지 몇 년이었다. 강제로 핸드폰, 노트북과 멀어져 보기도 하고 나름 애를 써왔으나, 한번 집 나간 집중력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적절한 비유인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 상황 + 천장만 보느니 책이라도 읽고 싶다는 열망 + 동서남북 사방으로 발에 차이는 접근성 최고인 책들, 이 세 가지의 완벽한 조화로 풋풋한 독서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두어 달간 읽은 책이 스무 권을 육박한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십 대의 어느 날 이후로 이런 적은 처음이다. 집중해서 읽다 보니 읽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게 되었다. 이러다 수능 국어 영역도 풀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오만함이 생긴다.(그럴 리 없지만.) 그간 열심히 책쇼핑을 했던 보람이 있구나.
요즘은 (여전히 소화가 안되지만) 컨디션이 전보다는 좋아져서 조금씩 다시 글을 쓰려한다. 늘어난 잠은 줄지 않았다. 밤새 꿀잠을 자고도 아침에도 낮에도 잔다. 전엔 약간의 불면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젠 잠자는 숲 속의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전자기기의 사용량 감소 때문인지, 책 때문인지, 호르몬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 다 때문인지. 긍정적인 또 한 가지 변화는 전자기기를 사용해도 컨디션이 나빠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 덕분에 올림픽에 진심인 우리 집 초딩과 함께 응원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번 생긴 습관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전자기기와는 거리두기를 하려고 한다. 수불석권의 이 습관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진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은 게 또 한 가지 생겼다. 지켜내지 못한 기억 때문에 사실은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은 감정이 요동치기도, 그러다 걱정이 밤잠을 이기기도 했다. 내가 풋풋한 독서가가 된 것처럼, 또 하나의 생명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사히 불릴 수 있게 되길. 남은 날들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많은 걸 바라면 안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바라본다. 왔다 갔다 하는 컨디션만 좀 더 안정이 되면 좋겠지만, 지금 이 상태도 내겐 충분히 좋다.
반갑고 고마워, 내게 찾아온 소중한 나의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