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파이 Jun 24. 2024

비 오는 날 카페에 가면 시간은 두 배속으로 흐른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는 고충

비가 온다. 세상을 정화시키는 비. 봄은 이제 끝났다고, 진짜로 계절이 바뀔거라고 알려주는 여름비. 요 며칠 후덥지근한 날들이 이어졌다. 오래간만에 오는 비에 더위가 씻겨내려간다. 이제 장마 시작이라지만, 난 왠지 이 비가 강원도에 이사 간 친구와 오랜만에 조우하는 것처럼 반갑다. 비 오는 날이면 창이 큰 카페에 가는 건 오랜 공식이다. 마침 책도 좀 읽어야겠고. 책 한 권 가지고 카페에 가 창가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조금씩 되찾고 있는데, 완벽하진 않다. 핸드폰으로 가려던 시선을 몇 분에 한 번씩 의도적으로 거둬야 한다. 시선뿐만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이동하는 나의 손도 막아줘야 한다. 뇌의 핸드폰 상태가 아닌 뇌의 책 상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오늘의 독서는 성공할 수 있다. 독서를 하면서 블로킹할 것들이 많아 정신이 없지만 독서에 몰입하는 연습을 다시 시작하는 중이니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요즘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덜 산다. 서점에 직접 가서 끌리는 책들을 골라온다. 수상작부터 먼저 살펴본다. 수상작은 웬만해선 실패할 확률이 적다. 그러고 나서 표지와 제목을 보고 작가의 이력을 읽는다. 목차, 추천사도 읽어본다. 거기까지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소설의 한두 페이지를 읽어본다. 요즘 끌리는 책들은 군더더기 없는 문체다. 화려하지 않은 건조한 묘사, 절제된 감정들. 일 년 전, 영국계 일본 작가의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소설을 읽고 건조함에 매료되었다. 나는 피부만 건조했지 내 글은 과장된 묘사와 드러내는 감정들로 가득하다. 절제 속에 살짝씩 드러나는 감정의 단서들을 찾는 게 재미있다. 글도 내게 부족한 부분에 끌리나 보다. 오늘 내가 가지고 나온 책은 ‘트러스트’다. 에르난 디아스의 장편소설. 흥미진진하다. 소설을 쓰려면 배경지식도 많아야 한다는 걸 느낀다. 한 가지 이야기를 여러 가지 시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류의 신선한 소설이다.


비 오는 날은 어두컴컴하다. 모든 게 더 흐릿하게 보인다. 글자도. 노안이 오고 있나. 책……………을 읽다가, 퍼질러 잔 지 1시간이 지나버렸다. 좋아하는 카페에 왔더니, 시간이 두 배속으로 흘러버렸네. 분명 책을 손에 대고 잠시 엎드렸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잠이 솔솔 들어 버렸다. 그냥 잠든 정도가 아니라 꿀잠이다. 불면증의 특효약은 역시 책인가. 예전에도 시험공부 하다가 전공책만 베면 그렇게 잘 잤는데, 지금도 책 베고 자는 건 똑같다. 상쾌하고 개운한 기분은 덤이다. 다행히 침은 안 흘렸고.


비 오는 날 카페에 오는 건 정말 좋지만, 역시나 독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