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럽지가 않어, 하나도 부럽지가 않어
남편과 아이가 2주간 집을 나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주변을 돌고 비행기타고 영국으로 간다고 한다. 원래는 나도 포함해서 3주간 가는 거였다. 하지만 급작스런 컨디션 저하로 인해 못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두 남자들에게 일주일만 줄여서 다녀오라고 했다. 그 사이 나는 친정에서 요양을 하고 오기로 했다. 내 딴엔 크게 인심을 쓴 거지만 둘은 당연하게 생각하길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큰놈은 말로는 나를 걱정하지만 여행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피식 피식 자꾸만 눈치없는 웃음이 새나온다. 작은 놈은 엄마 걱정은 커녕, 줄어든 여행 때문에 투덜투덜 하면서 입이 댓발 나왔다. 푸닥거리를 한 번 하고서야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아냈다. 억지 사과에도 마음이 풀리는 거 보면 나도 단순하긴 하다.
나는 남들을 별로 부러워하는 편은 아니다. 누가 뭘 갖고있든, 뭔가로 자랑을 하든 우와 하고 끝이다. 예쁘다 좋겠다 생각은 하지만 그런가보다 한다. 어릴 때야 부러운 것 투성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며 감사하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여행이다. 누가 여행 얘기를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초롱초롱 해지며 듣고 있다. 한번은 시부모님이 여행간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번쩍번쩍 빛나는 눈으로 “저도 데려가세요!!”라고 외치는 바람에 서로 당황한 적도 있었다. 아버님께서 “어, 응. 우리 며느리가 정말 여행이 가고싶구나. 다음엔 꼭 미리 물어보마.” 라고 하시며 멋쩍게 웃고 넘어갔지만, 나 혼자 밤에 이불킥을 해야했다. 그 이후엔 어딜 가실 때마다 내게 함께 갈 거냐며 농담처럼 여쭤보신다. 평소에 만날 땐 칼같이 시간 맞춰 보는데, 함께 여행갈 때면 나도 모르게 30분씩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다들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설렘을 긁어모아 여행갈 때 한번에 분출해내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여행에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둘이서 이런 나를 두고 시도때도 없이 여행 계획을 세우는거다. 어찌나 재미나게 얘기를 하는지, 쿵짝소리가 들리기까지 한다. 안가지만 궁금한 나도 껴달라고 했다. 처음엔 껴주다가 자연스레 또 둘이 신나서 얘길 한다. 당연한 거지만 서럽다. 이 서러움은 ‘아픈 날 두고 너희끼리 가냐’가 아니다. 그저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다. 둘에게 쿨하게 다녀오라고 해놓고 어찌나 질척거렸는지. 괜히 짐싸는데 옆에서 시시콜콜 간섭도 해본다. 여행 루트가 어떻다느니 날씨가 어떻다느니, 그들은 신경도 안 쓸 사소한 것들로 툭툭 시비도 걸어본다. 그 와중에 시부모님은 파키스탄 여행을 가셨는데, 단톡방에 올려주시는 풍광이 예술이다. 친정 부모님은 곧 있으면 코카서스 3국으로 여행을 떠나신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여행 이야기를 하는 통에 약간의 소외감이 들었다. 어디든 여행가는 무리에 소속되고 싶다. 내가 소속감이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나. 나는 부럽지가 않다고 친정에서 쉬는 게 제일 좋다고 정신 승리를 해보려 하지만, 사실은 부럽다. 부러움에 몸부림쳐질 정도로 부럽다.
부러운 나는 그동안 글을 쓸테니, 모두들 여행을 잘 다녀오시오. 한석봉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본다. 그녀의 열심히 떡써는 고행길을 왠지 뼈저리게 이해할 것만 같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어디에도 없구나. 오늘은 근래 보이던 따뜻하고 강렬한 햇살조차 무심하게 숨어버린 그런 날이다.
훨훨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황조가, 유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