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너는 사랑

엄마는 새빨간 거짓말쟁이

방학이랑 개학이랑 다를게 뭐야

by 초코파이

방학의 삼시세끼, 나 같은 요리 똥손에겐 생각만 해도 힘에 부친다. 개학엔 아침저녁을 차리니, 점심 한 끼 늘어나는 게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점심 한 끼 때문에 고민은 깊어지고 아침과 점심 사이의 달콤한 휴식 시간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5대 영양을 고려한 학교 급식 덕에, 아침은 대충 먹여도 된다. 계란밥이나 계란찜, 계란말이, 두부부침 등의 비슷한 메뉴를 돌아가면서 하루에 하나씩. 저녁은 그보다 조금 신경을 써서 불고기나 제육, 등갈비 같은 고기반찬에 야채 한두 가지 정도이다. 그것도 귀찮을 땐 고기를 구워주거나 삶아주거나 생선을 구워주거나. 방학이 부담스러운 건 점심을 왠지 급식에 상응하는 식단으로 차려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 때문이다. 가끔은 사 먹이기도 하지만 포동포동한 아이의 뱃살을 보고 있으면, 배민 앱을 켰다가도 조용히 닫게 된다.


이번 방학이 오기 직전, "밥을 주는" 영어방학캠프를 찾아냈다. 거기다 더해 셔틀이 되고 최대한 공부 안 시키고 놀다 온다고 하는 곳으로. 오전 3시간이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방학이 한 달이었는데 그중 3주만 가면 되니, 아이에게도 큰 부담은 안 될 것이었다. 명색이 방학캠프니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단 낫겠지. 집돌이를 집에서 끄집어내어 또래들과 상호작용도 좀 시켜보자는 엄마의 큰 그림도 숨겨져 있었다. 뭔가 대단한 걸 배워오리란 기대만 내려놓으면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너의 방학에 엄마도 함께 행복해져 보자.


그래도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아무 소용없으니, 아이에게 설득을 가장한 설명을 했다.

"거기가 공부 안 시키고 밥이 진짜 맛있게 나오는 곳이래. 가끔은 부대찌개도 나오고, 마라탕도 준대."

"오오 부대찌개애~? 마라탕은 좀 맵지 않을까?"

"안 먹어 봤으니까 이 기회에 한번 먹어봐. 궁금하지 않아?"

"응 엄청 궁금해. 근데 엄마, 공부 안 시키는 거 확실하지?"

"그럼. 영화도 보고 팝송도 배우고 그러면서 노는 곳이야. 또래 친구들도 있다던데? 그럼 더 재밌겠지?"

"그렇긴 하지. 집에 있는 게 더 좋긴 한데, 그래도 가볼게."


이미 부대찌개와 마라탕에서 반쯤 넘어온 아이는, 공부 안 시키고 노는 곳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실히 하고 쉽게 오케이 했다. 식단표를 살펴보고 인스턴트가 나오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니 괜찮을 것이다. 연구하듯 꼼꼼히 식단표는 살펴놓고, 커리큘럼은 자세히 보지도 않은 채로 후기만 몇 개 읽어보고서 '공부 별로 안 시키겠네'라고 판단을 한 건 나였다. 영어학원 한번 보내본 적이 없으니 공부를 시킨다, 안 시킨다의 기준도 사실 명확하지 않았다.




첫날, 둘째 날 방학캠프를 다녀온 아이의 반응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좀 애매했다. 내가 하도 놀다 오는 곳이라고 해서, 아이는 영어캠프를 키즈카페 갔다 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학교처럼 수업시간, 쉬는 시간이 나뉘어 있어서 1차로 당황, 영어로만 말해야 해서 2차로 당황했다고 한다. 영화는 다 안보여주고 5-10분 정도만 보여주는 거였다며 불평을 했고, 제일 싫어하는 영어 글쓰기 시간이 있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오히려 ‘하나도 안 시키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학습이 좀 들어가긴 하네?' 하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애초에 마음을 내려놓고 보낸 곳이지만, 돈을 냈으니 뭐라도 배워왔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내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이 넘어가자, 아이는 방학캠프가 학교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며 불만 섞인 마음을 점점 더 내비치기 시작했다. 학교보다는 공부를 덜 시키기는 하지만 완전히 노는 곳도 아니고, 방학을 이렇게 보낼 거면 개학했을 때랑 뭐가 다르냐고 했다.


그즈음, 방학캠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경민이가 정말 잘하네요. 영유 출신인 거죠?"

"아니요. 집에서 했어요. 근데 뭘 잘한다는 건가요?"

"뭐, 빠질 게 없던데요. 4대 영역이 골고루 잘 되어 있어요. 영어학원을 꾸준히 다녔던 거죠? 어딜 보내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학원은 여기가 처음이에요. 아이가 책을 좀 많이 읽긴 했어요."

"그럼 어머니는 정말 복 받으신 거네요. 아이가 언어감각이 타고났나 봐요. 반에 잘하는 아이들 4명 따로 묶어서 반을 만들었어요. 그중에 경민이가 제일 잘하는 아이고요. 경민이 말고 다른 친구들은 다 영유 출신이고 대치동 **학원, ##학원 탑반이라고 해요. 경민이한테 얘기 들으셨죠?"

"네에?? 금시초문인데요."

"남자아이들이 원래 얘기를 잘 안 하죠. 잘하는 아이들끼리 디베이트나 프레젠테이션도 시키고, 쓰기도 잘 시켜보려고요. 선생님도 한 분 더 넣었어요. “


아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잘한다니까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잘 시켜보겠다고 하시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동네학원이 만든 방학캠프 탑반(?)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방학캠프가 시작된 지 일주일도 한참 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당황스러웠고, 놀고 오라고 보낸 방학캠프에서도 반을 따로 만들다니, 그것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의 목적과는 달라져버린 방학캠프였지만, 그래도 더 신경을 써주신다고 하는 부분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라 디베이트나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좋아했지만, 글쓰기가 늘어나자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놀고 쉬고만 오고 싶었던 우리 집 집돌이는 그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안 가면 안 돼? 꼭 가야 해?'를 도돌이표처럼 말하고 또 말했다. 어린이집 거부하던 4세 때의 아이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일주일 남짓 남은 방학캠프를 이제 와서 쉬게 하기도 그렇고, 더 신경 써주신다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아이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아이를 설득하기에 급급했다. 주말에 더 많이 놀자고 어르고 달래며 그렇게 무사히 방학이 지나간 듯했다.




개학 전날, 아이는 일기 주제를 이번 방학으로 하겠다며 불만 섞인 마음을 일기장에 토로하기 시작했다. 일기장에 자신의 마음을 쓰면서 아이는 감정이 좀 격해진 것 같았다. 힘들었던 지난 3주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엄마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였다고, 다시는 방학캠프를 보내지 말 것을 기어이 약속받았다. 일기를 다 쓰고 잠자리 대화에서도 또 억울한 방학이 생각났는지, '엄마에게 속은 것 같아'라고 하며 또 한 번 화를 내고 겨우 잠이 들었다. 잠들기 시작하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아이인데, 처음으로 새벽에 낑낑 소리를 내며 잠꼬대를 했다. 나도 함께 생각이 많아져 미안함에 몸서리치며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일어나서는 방학 스트레스 때문에 목이 아프다고, 차라리 개학을 하니 마음이 편하다고도 했다. 맛있는 밥 먹고 3시간 동안 놀다 오는 방학캠프는 엄마에게나 놀다 오는 곳이었던 거다.

경민이의 일기 (아이에게 허락 맡고 올립니다.)


이렇게 아이의 방학은 끝이 났다. 내 한 몸 편해보고자 밥 주는 방학캠프를 보냈는데, 아이가 힘들었다고 하니 내 마음도 덩달아 불편해진다. 점심 한 끼 더하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방학캠프에서 부대찌개며 마라탕도 먹고 온다는 데 힘들면 그냥 한 끼는 사 먹이면 될 일인데, 몇 번이나 신호를 보냈던 아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온다. 개학이랑 다를 바가 없는 방학, 소중한 한 번의 방학을 날린 억울함과 서러움을 몰라준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아이 키운 지 벌써 10년 차인데,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아이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봄방학엔 아무것도 하지 말자.
집에서 푹 쉬고 충전해서, 다가올 4학년은 행복하게 보내자.


잊어버리기 전에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경민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넷플릭스와 치토스, 프링글스, 도리토스는 좀 아니지 않니…아차차, 또 잔소리가 새어 나온다. 좋은 부모가 되기란 아직도 너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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