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너는 사랑

장바구니 들어주는 아들이라니

하마터면 사춘기가 일찍 올 뻔했지 뭐야

by 초코파이

겨울방학에 엄마 좀 편하자고 3시간짜리 밥 주는 방학캠프를 보냈다가, 최악의 방학이었다는 불평을 몇 날 며칠간 들으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봄방학이 되기 한참 전부터 아이에게 다짐을 받았다.

"엄마, 이번엔 방학캠프 없지? 확실하지?"

"아, 그렇다고!!"

봄방학이 시작되면서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넷플릭스 보면서 간식 먹는' 불가능한 거 말고 현실적인 것들로 말해보라고 하니, 알뜰하게도 엄마 아빠를 한 번씩 잘 활용한 대답이 돌아왔다.

1. 매일 도서관 가기

2. 엄마랑 일주일에 한 번 브런치 먹으러 가기

3. 아빠 쉬는 날에 영화 보거나 워터파크, 스키장 가기

다른 건 몰라도 매일 도서관 가는 건 꼭 지켜주라는 당부의 말씀도 들었겠다, 다짐을 실천에 옮겨보았다.




#1. 매일 도서관 가기


아침 먹고 나면 함께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도 같이 한다. 엄마의 할 일이 끝나야 도서관으로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는 성심성의껏 집안일을 돕는다. 눈치라고는 없는 공대형 아이였는데, 크면서 눈치가 학습으로 길러진다. 날이 갈수록 엄마가 원하는 걸 느린 아이의 속도로 착착하려 하는 마음이 예쁘다. 길고 긴 설거지 시간이 지나면 소원대로 아이가 좋아하는 어린이도서관으로 여유 있게 출발한다. 설거지 하나에 영겁의 시간이 걸린 것처럼 체감하지만, 사실은 10분 정도 더 걸렸을 뿐이다. 나의 답답함만 잠시 내려놓으면 모든 게 다 평화롭다. 아무리 늦어도 아침 9-10시 사이 집을 나선다.


날이 좋으면 웬만해선 걷는다. 아이 어릴 땐 걷는 길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에도 멈춰 서서 한참 보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을 관찰하느라, 어른 걸음으로 5분 거리가 30분씩 걸렸었다. 아이 키높이에 맞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나도 신기해서, 길에서 보낸 시간이 한가득이었다. 이제는 엄마 머리 하나만큼만 작은, 많이 성장한 아이는 어느새 엄마 걸음을 진작에 따라잡고 저만큼 앞선 길안내자가 되어 성큼성큼 먼저 나아간다. 그래, 이렇게 네가 앞장서가면 엄마는 따라갈게.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뭉클, 또 한 번 다짐한다.


함께 도서관에 가면 오랫동안 책을 멀리했던 나도 핸드폰 대신 책을 집어 들게 된다. 10년 이상 사용한 스마트폰 덕에 집중력은 이미 도둑맞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책을 놓고 싶지 않아서 발악을 했었다. 그런데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욱여넣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한 글자도 안 읽던 책을 아들과 도서관에 매일 가는 덕분에 하루에 100쪽씩은 읽게 되었다. 네 덕에 나에게도 온 긍정적인 변화가 고맙다.


#2. 엄마랑 브런치 데이트


도서관이 쉬는 월요일이면 브런치 데이트를 한다. 카페에 책을 몇 권 들고 가 실컷 먹고 책을 읽고 집에 돌아온다. 도서관보다 왠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 읽다가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하는 시간을 아이는 충분히 즐기는 것 같다. 혹시 몰라 문제집도 들고 오지만, 책에 빠진 아이를 보며 잠깐 내 욕심은 내려두기로 한다. 책을 어느 정도 읽다가 지루해지면, 아이 스스로 문제집을 꺼내어 푼다. 시켜서 하는 게 아니어서 효율도 좋다.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다.

"매일이 이랬으면 좋겠네."

아이는 이런 생활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불만 가득했던 표정은 저 멀리 사라지고 내내 웃고 즐기고 행복해졌다. 아이가 10배쯤은 순해진 것 같다.


오전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니, 원래 학원 스케줄이 있는 오후 시간도 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 느끼니 아이의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피아노 연습도 스스로 알아서 하고 학원 숙제도 스스로 챙긴다. 마음의 여유는 없던 습관조차 만들어주는 건가 싶다. 아니면 원래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아이를 내가 바쁘게 몰아부쳐서 오히려 의존적으로 만들었던 게 아닌가 반성의 시간도 갖게 된다.


브런치는 사랑입니다


#3. 아빠 쉬는 날에 함께 영화 보고 마트 가서 장보기


아무 스케줄이 없던 어느 일요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넷플릭스며 디즈니 플러스며 아무리 OTT에 볼 것들이 많다지만 영화관에서 오롯이 집중하며 영화를 보는 느낌은 남다르다. 큰 화면과 내가 하나가 되어 영화에 빠져드는 걸 오랜만에 느껴본다. 우리는 팝콘과 나초를 먹으며 ‘웡카’를 보고, 오는 내내 움파룸파 춤을 추는 아이를 말리며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마트를 들렀다. 장을 보러 돌아다니는 아이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엄마, 이건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잖아. 카트에 넣을게. 와 저기 아빠가 좋아하는 것도 있어. 저것도 넣는다. “

어느새 엄마아빠의 취향을 꿰뚫는 능력이 생긴 아이다. 여유로운 마음이 생겨서일까. 아이의 시야가 넓어졌다. 심지어 계산하고 집에 갈 때는,

“엄마, 내가 들어줄게! “

“아빠, 무겁지 않아? 같이 들자.”

처음 들어보는 감동을 선사한다. 맙소사,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아이가 맞나 싶어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아이가 원하는 것,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학원 다니며 바쁘게 사는 삶 속에서 ‘방학 기간만큼의 쉼’이었다. 일상 속에서 몇 시간씩 책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가끔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짙은 시간이었다. 함께하는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고 육아서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본인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요구할 만큼 아이는 어느새 많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욕구가 충족이 되니 너그러워지는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 내 아이인 듯 아닌 듯 헷갈리는 긍정적인 변화는 멀리에 있지 않았다.


사실은 외동이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아이의 마음을 잘 안다고 착각했다. 엄마아빠의 사랑이 고플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충족되었을 거라고 오히려 우린 예의와 결핍을 가르쳐야 한다고 항상 얘기해 왔다.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하게 기르는 게 맞고 때론 무심한 전략을 써야 할 때도 있지만, 아이의 마음엔 항상 귀를 기울여줘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사랑은 아무리 주고받아도 끝이 없다는 것도. 우리 사랑의 양이 무한대라면 더 많이 주고받자. 어린 시절 생긴 너그러움이 자양분이 되어 넉넉한 어른으로 자라나길.


행복이 뭐, 별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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