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너는 사랑

당신의 손톱은 안녕하신가요

오겡끼데쓰까

by 초코파이

아이 학교에서는 학년에 한 가지씩 악기를 배운다. 올해에는 리코더를 배웠는데, 리코더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다음 악기를 맛보기용으로 선생님께서 알려주신다고 하셨단다. 준비성이 철저한 아이여서 다음 악기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쿠팡으로 주문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칼림바. 나도 처음 들어본 악기인데, 운지법대로 한 번 연주해 보니 소리가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칼림바는 엄지손톱으로 연주를 해야 하는데, 엄지손톱이 짧으면 연주할 때 좀 아플 거라며 선생님께서 엄지손톱만 당분간 적당히 기르라고 하셨다. 그게 11월이다.


예전에 제주도를 갈 때, 비행기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사람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손톱 때문이다. 50대 아저씨였는데, 딱 봐도 3센티는 되어 보일듯한 오른쪽 새끼손톱. 그 손톱으로 자꾸만 기름진 머리를 긁는 바람에, 그때 당시 6살이던 아들과 나는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엄마, 나도 아저씨처럼 손톱 길러보고 싶어. 정말 멋있어."

"그건 안되지. 손톱 기르면 보이지 않는 세균이 많이 달라붙어서 병도 생기고, 또 손톱이 부러지면 병원 가야 해."

"그럼 저 아저씨는 왜 기른 거야? 손톱 기르면 엄청 편리할 것 같아. 나도 길러서 머리 긁을래."

"아저씨는 어른이니까 위생관리를 하실 거야(?).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기르고 싶으면 그땐 길러. 지금은 안돼."

아이와 함께 깔깔 웃다가, 아이가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나서 급히 설명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배운다는 칼림바. 소리가 정말 예쁘다.


아이는 선생님 말씀에 몹시 신이 나, 나처럼 그때 그 아저씨를 떠올렸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모범생이라, 손톱을 기를 정당한 명분이 생긴 것에 환호했다. 악기 연주하는데 필요하다고 하니, 일단은 길러보라고 했다. 그래, 6세 때부터 꾸었던 오랜 너의 꿈을 펼쳐보거라. 손톱을 마구마구 길러보아라. 원래 우리 집은 1-2주에 한 번씩 손톱을 자르는데, 다른 손톱이 다 자라 깎이는 동안 엄지손톱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은 훌쩍 지나 한 달이 되었고, 손톱은 꽤 많이 길었다. 손톱을 마구 길러보라는 처음 마음과 다르게 잔소리가 올라온다.

"이제 엄지손톱을 좀 자르자."

"안돼. 방학 전까지 칼림바 한다고!"

"아니, 그럼 절반만 잘라줄게. 절반만 있어도 충분히 칼림바 할 수 있어."

"엄마! 절반 자르는 거랑 남겨놓는 거랑 뭐가 달라? 길면 길수록 칼림바 하기가 편하다고. 우리 반 애들 다 엄지손톱 기르고 있어. 그리고 손톱 기르는 게 내 건강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머리가 커진 아이의 논리에 말문이 막힌다. 일단은 후퇴. 방학 시작하면 자르기로 합의를 봤다.


그 사이, 같은 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계속 자라나는 기다란 엄지손톱으로 경쟁 아닌 경쟁이 시작되었다. 누가 더 기네 짧네 서로 대보다가, 아이는 결국 엄지손톱왕이 되어서 의기양양하게 집에 왔다. 엄지손톱 왕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엄지손톱을 더욱더 사수해야만 했다.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다니는 학원마다 엄지손톱만 보여줬다 하면 애들이(남자 애들이) 우와! 해주는 바람에 뜬금없이 인기의 상한가를 치게 된 아이에게는, 기다란 엄지손톱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무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란 엄지손톱이 소중해진 만큼 그것을 자를 날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자르는 날이라고 하면 반발심이 생길 것을 우려해 방학 일주일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하며 아이에게 날짜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방학 날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의 긴 손톱을 잘라 보내려니, 갑자기 아쉬워지는 건 내 쪽이었다. 손톱과 정이라도 들었나? 왜 갑자기 아쉽지? 그래 뭐, 아이말대로 손톱이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 정말 이상하고도 또 이상한 내 마음의 상태를 설명을 못하겠다.



"우리 오늘은 오른쪽 손톱만 자르고 왼쪽은 12월 31일에 자를까?"

엄마의 예상치 못한 제안에 아이는 당연히 기뻐하며 예쓰를 외쳤고, 우리에게는 비록 한쪽 손톱이지만 며칠의 유예기간이 더 생겼다. 며칠이 더 생겼다고 해서 뭐 손톱과 함께 특별한 걸 한 건 아니다.(특별한 걸 하는 게 더 웃기다.) 우리는 그냥 보통의 일상을 보냈고, 그날이 다가왔을 뿐이다. 12월 31일 카운트다운을 하기 1시간 전. 드디어 손톱깎이와 함께 아이의 기다란 왼쪽 엄지손톱을 마주했다. 두 달간 정성껏 기른 엄지손톱을 이제는 보내주어야 한다. 아이는 엄지손톱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얼마나 정이 들었던지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엄마, 마지막이니까 깔끔하게 두 번에 잘라줘."

"알았어. 최선을 다해볼게."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손톱깎이를 움직였다.

딸깍딸깍

아이가 원한대로 두 번만에 성공. 손톱이 잘려나가는 소리에 나의 마음이 다 시원해진다. 손톱을 어찌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내가, 지금에 와서는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다. 마치 옷장 가득한 옷을 못 버리고 있는 나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우리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손톱과 함께 2024년을 시작해 보는 거야. 네가 손톱을 자르듯 엄마는 옷장 정리를 다시 시작해 볼게. 새 학기가 되면 또 칼림바를 할 거고 그럼 어차피 또 길러야 하잖아. 그때부턴 한 달씩만 기르고 미련 없이 잘라버리자. 사실 두 달은 좀 과한 것 같아.


두 달을 안 자르고 기른 게 이 정도인데, 비행기에서의 그 아저씨는 대체 얼마나 긴 시간 손톱을 기르신 걸까. 아저씨는 아직도 손톱을 기르고 계시려나. 뜬금없이 아저씨 손톱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배경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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