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너는 사랑

공대형 아이를 아시나요?

약은 약사에게, 상담은 전문가에게

by 초코파이

공대형 아이라는 말을 들어본 건 아이 4살 때가 처음이었다. 24개월을 꽉 채우고도 몇 개월이 지난 2월 어느 날, 아이가 꽤나 성숙해진 상태로 첫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애를 먹었다. 3월이 지나니 이제 좀 적응하고 한숨 돌리나 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가 눈 맞춤이 안되네요, 어머니. 아직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요. 제가 한 달 정도 더 지켜보고 말씀드릴게요.”

가슴에 무거운 추가 걸린 듯 덜컥 내려앉았다. 일단은 바쁜 남편대신,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우리의 걱정인형이다. 인터넷에서 눈 맞춤 부분을 찾아보시고는 조심스럽게, 혹시 자폐가 아닌가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아이를 처음 키워봤고, 아이를 셋 키운 엄마는 나에게 하늘이었다. 나의 하늘이, 내 아이를 보고 자폐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 길로 아이발달센터를 예약했다. 인기가 많은 곳이었는지, 2주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는 2주는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우리가 걱정되어 집에 오신 엄마는, 말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찌나 손주를 애틋하게 바라보시는지 눈빛 레이저로 우리의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육아서의 눈 맞춤 부분을 샅샅이 뒤졌다. 읽다 보니 눈 맞춤뿐만 아니라, 자폐와 일치하는 아이의 행동들이 점점 많이 보였다. 예를 들어 반향어라든가, 일렬로 쌓기라든가, 자동차 바퀴만 굴리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가만 보니 표정변화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아이의 행동,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걱정은 꼬리를 물고 산처럼 쌓여갔다.


아니길 빌었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진단을 받는다면 충격이겠지만, 그래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사랑에 빠졌는데 어쩌겠는가. 그걸로 됐다. 치료받아야 한다면 치료받게 하지 뭐. 조금 다르게 키워야겠지만 거기엔 또 다른 길이 있겠지 싶었다. 모르니까 무서운 거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온갖 감정변화를 다 겪고서, 조금은 단단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렇지만 한숨도 못 잔 채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검사는 먼저 아이가 놀이방에 들어가 보조 선생님과 놀기 시작하면, 엄마아빠는 상담선생님이 있는 방에서 cctv로 노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진행되었다. 아이가 놀이방에서 잘 노는지 잠깐 지켜보고, 상담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처음 뵙는 상담선생님이 외쳤다.

“얘는 자폐 아니에요. 얘를 보고 자폐라고 얘기한 사람이 불안증이에요. 불안증 약 먹고 치료받으세요.”

상담 신청할 때 이메일로 상담 내용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그때 비슷한 내용을 어렴풋이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시작된 상담은 뚫어뻥처럼 시원시원했다. 처음 보는 선생님께 신랄하게 혼이 나면서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찾아보았던 어떠한 병명도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들에 감사함이 가득해졌다. 나랑 친정 엄마가 불안증 환자이고 약을 먹으라고 해도 그저 감사했다. 오히려 선생님에게는 후광이 비쳤다.


상담은 2시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정상 속도로 잘 크고 있었다. 눈 맞춤이 잘 안 되는 것은,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일 때 회피하는 성향이었는데, 눈 맞춤과 연관이 되어 자폐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외에도 아이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는 공대형 아이라고 했다. 눈치와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순수하고 한 가지에 대한 집중력이 높은 타입. 아이 발달이라든가 훈육 방법, 어느 쪽으로 키우면 좋은지,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알려주었다. 단시간에 저게 가능하다고? 2년 넘게 키운 나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아이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시해 준다는 게 신세계였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당부했다.

1. 나가서 일을 하고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키울 것. (친정엄마는 제외)
그게 안된다면 집에 방문 선생님이라도 자주 들여서 엄마가 꼭 쉬는 시간을 가질 것. (그러면서 방문학습 리스트를 주셨는데, 거기엔 가격이 싼 것부터 쭉 정리해 놓은 표가 있었다. 공부를 시키라는 게 아니라, 아이에 대한 신경을 좀 꺼두라는 의미였다.)
2. 아이의 단점보다 장점을 크게 보도록 노력할 것.
3. 부부 둘만의 시간을 꼭 가질 것.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엄마는 나의 육아에 걱정을 많이 덜으셨다. 엄마의 세계는 나와 동생들을 키운 것에서 멈춰있었고 다른 성향의 손주를 이해하려면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나는 나대로 이번 상담으로 아이의 성향 파악이 되어서 아이를 대하기가 너무나 편해졌고, 아이에 관한 부분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아이와 남편의 성향이 같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남편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이 상담은 우리 가족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가정의 중심을 잡는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살다 보면 풀리지 않는 문제는 언제 어디서든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하면 불안은 찾아온다. 주위 사람의 조언은 소중하지만, 경험에서 비롯된 해결책이어서 넓은 시야를 가릴 수도 있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방식대로 문제 해석을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이며, 우물 밖 세상은 넓고 다양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걸 인정하니 비로소 겸손함이 생긴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몰라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새로운 세계로의 가능성이 열린다. 왜냐하면 세상에 전문가는 많고 그들은 (돈만 내면) 우리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약은 약사에게, 상담은 상담 전문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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