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 부부의 MBTI 극복법

어쩌다 보니, 그럭저럭 서로 닮아갑니다

by 초코파이

첫 만남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성향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 180도까진 아니더라도 150도쯤 다른 곳에 그가 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이리 와서 나와 함께 하자고. 처음엔 그의 손짓이 낯설어 어색한 미소를 띠며 내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던 우리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며 우리의 각도는 그만큼씩 좁혀져 갔다. 오래된 자석의 반대극처럼 서로를 천천히 끌어당긴 게 아닌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우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한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았다.


MBTI가 유행하고 나서야 우린 성향이 정말 달랐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연애할 때에는 T와 F/P와 J의 대비되는 특성이 도드라졌는데 살다 보니 그 부분들은 서로 이해하고 심지어 닮아가기까지 하고 있다. 요즘 남편(T)은 교육된 공감능력으로 로봇처럼 공감을 해주고, 나(F)는 문제 상황에서 공감과 해결책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두서없이 일을 벌이던 나(P)는 일 벌이는 횟수를 줄였고, 계획적인 남편(J)은 즉흥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N과 S의 대비되는 특성은 최근에서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이거야말로 바뀌지 않는 본성인 것 같아서 흥미롭다.


MBTI : 4가지 선호 지표를 토대로 16가지 선호유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에너지의 방향으로 외향형(E)과 내향형(I), 정보 인식으로 직관형(N)과 감각형(S), 의사 결정 판단으로의 사고형(T)과 감정형(F), 외부세계에 대처하는 선호 생활양식으로 인식형(P)과 판단형(J)의 성향을 나눈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INFP인 나는 생각이 많다. 하루종일도 생각할 수 있다. 혼자 있을 때도 생각하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도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잠을 설칠 때도 있다. 생각은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에게로 저절로 와서 두둥실 떠오른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듯 생각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물론 가끔은 이렇게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생각이 지겨워서, 생각이 들기 전에 훠이훠이 내쫓고 행동을 먼저 하기도 한다. 그래봤자 생각은 나를 기어코 쫓아온다. 내가 ENFP였다면 생각하는 걸 다 말로 했을 테니, 하루종일 말하고 잠자면서도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 내 머릿속 생각은 주로 쓸데없는 만약에 투성이다.


나(N)의 <만약에 타령>

예를 들어 어느 날 혼자서 산책을 나간다치자. 산책 나가는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되었는데 조금 늦게 멈춰 선을 살짝 넘은 흰색차를 보며 생각은 꼬리를 물고 시작된다. '만약에 내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저 차가 나한테 돌진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내가 치이면? 그런데 저 차에 탄 사람들도 사정은 있었을까? 아마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급하게 가느라 어쩔 수 없이 나를 치게 된 거겠지? 그래도 그중 한 명은 사고 수습을 해야 할 텐데. 그러느라 위독하신 아버지를 못 보게 되면 평생 한이 남겠지. 아냐 아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다쳤는데 그냥 가보라고 할 수도 없잖아. 누군가는 엠뷸런스를 부르겠지? 응급실에 도착할 때쯤 되면 정신을 잃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러면 경민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인데, 엄마가 없어진 걸 알고 얼마나 놀랄까? 애한테 핸드폰을 사줄까? 아냐 지금껏 안 사줬는데 핸드폰을 사주는 건 좀 그렇지. 집에 집전화라도 하나 놔야겠네. 근데 만약에 내가 재수 없어서 죽게 되면 어떡하지? 내가 죽으면 우리 남편은 다시 연애도 하고 결혼을 할까? 1-2년 정도는 엄청 슬퍼할 거야. 그래도 연애는 해야지, 홀아비로 늙어 죽을 순 없잖아. 그렇지만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노후를 또 생각하겠지. 만약에 그 여자랑 결혼한다면 재산은 나눠주지 말라고 얘기해야겠네. 그 여자가 경민이를 아들처럼 잘 키워줄까? 만약에 그 여자가 자기가 키우던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경민이한테는 형제나 남매가 생기게 되겠네? 그건 경민이한테 좋을까? 새엄마가 혹시 우리 경민이만 차별하면 어떻게 하지? 차라리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보낼까? 아니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내 동생은 아들 둘이 있으니 애 하나 더 키울 여력은 없을 거고, 하 이거 우리 경민이 불쌍하게 자라는 거 아니야? 안 되겠다, 재혼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상상 속에서 남편이 재혼하고 경민이는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면, 울컥하면서 상상 수정이 시작된다. 연애는 되지만 재혼은 안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러서 함께 사는 걸로 마무리를 해본다. 이렇게 혼자 감상에 젖어있다가 절반쯤 산책을 왔다는 걸 인식하고, 또 다른 쓸데없는 상상 chapter 2 시작. 소재는 또 이리저리 떠오르는 생각들 중 하나인데, 주로 '만약에 전쟁이 나면'으로 시작한다. 집에서의 상상은 또 어떤가. 특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만약에 지진이 나서 아파트가 무너진다면, 나는 이런 민망한 모습으로 발견이 될 텐데 어쩌지'로 시작하는 만약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나의 생각은 무질서하고 소용돌이치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이 오는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며 싹 잊어버리기 일쑤다. 머릿속으로 유서는 백번 천 번쯤 썼을 거고, 경민이는 틈만 나면 고아가 되었고, 남편은 그놈의 재혼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얼마나 혼이 많이 났는지.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면 좋으련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학창 시절에 이런 망상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공부를 했었는지. 망상이 조금만 덜했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한참 부유하는 생각들은 갈 곳을 잃고 어딘가에 잠시 머물다가 또다시 어느 시점에 기어 나온다. 그래서 나의 글은 체계가 없다.




남편은 ISTJ다. 명확하고 단순 명료하고 이성적이다. 무엇을 하든 판단의 근거가 정확하다. 나의 시각은 따뜻하긴 하지만 한없이 개인적이고 줏대 없음에 비해, 남편의 시각은 냉정하지만 뭔지 모르게 이타적인 면이 있고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나의 만약에 타령을 남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처음으로 만약에 타령을 남편에게 들려준 날, 그는 "무슨 그런 쓸데없는 가정을 하냐"면서 면박을 주었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만약에 내가 먼저 죽는다면 재혼은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남편에게 만약에는 없는가? 있다. 그에겐 성질이 많이 다른 만약에가 있다. 상상은 1%만큼도 들어가지 않는다. 세상에, 만약에도 현실적이라니. 예를 들어 새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는 최선부터 최악의 상황까지 경우의 수를 그린다. 최선의 경우에는 수익률만 계산해 보고 패스, 최악의 상황으로 넘어간다. 수익률이 몇 % 정도 되어야 사업을 접지 않아도 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본 후, 만약에 폐업을 하면 어떻게 할지 더 최악의 상황을 그린다. 한 번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쉬운 가정일 수 있다. 그의 현실적인 만약에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미리 대비를 한다. 변동이 많은 사업의 세계라 해도 최악의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대비덕에 항상 잘되지는 않았어도 최악은 면했던 셈이다.


만약에가 나와 다른 대신, 그에겐 한 번씩 툭툭 나오는 현실적인 말들이 있다. '돈 많이 벌고 싶다'라든가, '부자가 되고 싶다'라든가. 맥락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이런 말들은 그가 늘 외우는 주문이다. 10년 넘게 매일을 불경 외듯 외운다. 그의 생각의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야말로 단순 명료하다. 가족, 돈, 행복 끝. 그래서인지 매일 그렇게 꿀잠을 자나보다.


N(직관형)과 S(감각형)의 차이 <출처 : 이람 님의 네이버 블로그>


우리가 신혼이던 시절, 양말 논쟁이 있었다. <양말은 뒤집어서 벗어놓는다 - 뒤집힌 그대로 빨래를 한다 - 빨래를 갤 때도 손에 잡히는 대로 갠다 - 그리고 신을 때 또 뒤집어서 신는다> 30년 넘게 이 패턴으로 살았다. 엄마는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살아라' 하시는 분이어서, 잔소리는 적었으나 습관 교정은 별로 없었다. 결혼 후 처음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남편, 뭐든 같이 하겠다는 신혼의 패기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여보, 이게 뭐야!!"

"응 왜 왜? 뭐 잘못됐어?"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놓으면 어떻게 해? 원래대로 해놓고 빨아야 갤 때 편하지."

"아 그래? 근데 신을 때 다시 뒤집으면 되는 거 아냐?"

"아냐 아냐. 벗어놓을 때부터 그렇게 하는 거야."

"그래, 알겠어. 그게 더 편하긴 하겠네. 다음엔 그렇게 하지 뭐."

시어머니께 등짝을 맞아가며 만들어진 남편의 오랜 좋은 습관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먼저를 위해 나중을 희생하느냐' 아니면 '나중을 위해 먼저를 희생하느냐' 선택의 문제였다. 집안일은 일하는 시간이 짧았던 나의 몫일 때가 많았고, 나는 '뒤집어 벗어놓지 않기'를 번번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빨래도 내가 하고, 개는 것도 내가 하고, 옷 입을 때도 내가 다시 뒤집어 입으니 평소엔 정말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항상 양말을 원래대로 벗어 놓는 남편도, 내가 그대로 개어놓으니 양말을 신을 때 한 번도 불편했던 적이 없었다. 문제는, 그가 집안일을 함께 하겠다고 나설 때였다. 또또또, 잔소리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니, 여보!!! 양말 좀 뒤집어서 벗어놓지 말라니깐."

"집안일 주로 하는 건 난데, 왜 이렇게 잔소리야? 내가 입을 때 뒤집겠다는데, 저리 가!! 훠이 내가 할 거야."

결국 빨래더미에 그는 발도 못 디디게 되었고, 빨래는 나의 몫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빨래 뒤집어놓는 걸 포기한 후에야 그는 나와 함께 오손도손 빨래를 널고 갤 수 있게 되었다.


지금껏 살면서 집안일을 누가 하느냐로 한 번도 아웅다웅해본 적이 없다. 주로 내 몫이긴 했지만 거기에 불만도 없었다. 가끔은 둘 중 시간 되는 자가 '해야겠다'싶은 걸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을 도왔다. 체계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몇 가지 파트로 나뉘었다. 서로를 위한 배려들이 생겨난 셈이다.

- 그가 나에게 해주는 배려 : 아침잠이 많은 나를 대신해 매일 아침, 달걀 요리를 한다. 가끔 빨래산을 보며 한숨 쉬면서 따로 또 같이 빨래를 갠다. 재활용 쓰레기날을 잊지 않는다.

- 내가 그에게 해주는 배려 : 그가 안 해도 될 수 있게(내가 그의 잔소리를 안 듣게) 웬만한 집안일은 해놓는다.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해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상의하는 그와 적절한 솔루션을 함께 연구한다. '양말 사도 돼?' 이런 건 좀 안 물어보면 좋겠지만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응 얼른 사.' 긍정의 대답을 준다.




매일밤 하루의 마무리는 거실 소파 혹은 안방 침대다. 책 한 권씩 들고 옹기종기 모여, 편안한 온기를 느낀다.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한 번씩 읽어주기도 하고, 읽던 책이 재미없으면 주거니 받거니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한없이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함께 미래를 설계도 하고 상상도 한다. 설계는 남편의 것, 상상은 나의 것. 그것들이 합쳐져 우리의 미래는 한 방향으로 간다. 예를 들어,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지?"라고 질문인 듯 혼잣말인 듯 말을 꺼내며, "몇 살까지 무엇을 이룰 것이다" 현실적인 설계를 시작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만약에 돈이 많이 모이면'으로 시작하는 단편 드라마를 한 편 써준다. 그러면 상상은 장밋빛으로 변하고, 우리는 에펠탑뷰의 아름다운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궁궐 같은 집에서 이미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있다. 상상은 자유니까.


가끔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머리 싸매고 연구도 한다. 서로에게 가장 도움이 될 때이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니, 혼자서만 끙끙댈 때보다 훨씬 빠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나무를 보며 꼼꼼하게 문제를 분석하는 그와, 멀리서 숲을 보며 문제를 펼쳐놓고 바라보는 나와의 차이가 우리 둘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내가 들어보고 맥락을 파악해 말해주면 그는 문제를 분석하여 꼼꼼하게 하나하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꼭 필요한 눈이 되어준다.


이렇게 매일 오가는 많은 이야기들이, 농밀한 시간들이 우리 부부를 정반합으로 이끌어준 셈이 아닐까. 정반대 부부의 사이에 그들을 반씩 닮은 (사춘기가 오기 전의) 귀여운 아이도 늘 함께 한다. 그렇게 그들 부부는, 아니 그들 가족은 벌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서 서로 닮아가며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연재 브런치북이 처음인 초보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시고, 관심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연재일의 압박과 기다려주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마무리까지 오게 만든 동력이 되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는 일 다 잘되시길 바랍니다. 다음 연재 브런치북도 곧 시작할게요!









keyword
이전 10화서울에 집 한 채, 꼭 사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