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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Mar 12. 2024

결혼식장에 갔다가 첫사랑을 마주쳤다

오랜만이야, 여전히 반짝거리는 너의 모습

대학교 3학년, 어리버리한 1-2학년에서 벗어나 대학 생활을 주도하는 나이. 지금 생각하면 22살도 어리고 귀여운 때지만, 당시에는 두 학년의 선배님이 되고서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 있었다. 동아리에서도 3학년은 집행부였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들 투성이었다. 3학년쯤 되면 '대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야'하는 꼰대놀이를 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신입생 시절, 나와 친구에게 밥을 사주는 고마운 선배들은 알고 보니 전부 같은 동아리 선배들이었다. '원래 신입생들은 지갑 여는 거 아니야'라는 무서운 말의 의미를 그땐 몰랐다. 1-2주간 그렇게 선배들에게 돌아가면서 밥이며 술이며 얻어먹다가 친밀감이 쌓여갔다. 그리고는 그들 중 마지막 타자가 내미는 동아리 가입 신청서에 어느새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악명 높은 산악동아리였다. 신나게 얻어먹은 대가로 제 발로 그곳에 들어간 것이다. 사람 좋았던 선배들은 엠티에서 무서운 괴물들로 변신해 힘들게 산행을 시키며, 순둥이들이었던 우리를 무서운 여성 3인조로 단련시켜 갔다.


산이라 함은 무릇 사랑이 싹틀 수도 있는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던가. 산에 오르내리는 힘든 과정 속에서 밀어주고 끌어주며 슬쩍슬쩍 손도 잡고 그렇게 썸을 타고 남자친구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저만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멋있게만 보였던 카리스마 가득한 선배들은 이미 내로라하는 예쁘고 무서운 언니들 차지였고, 우리 곁에는 오징어 같은 동기들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우리보다 더 바보 같고 술도 약하고 픽픽 쓰러지는 나약한 동기 놈들. 그들 뒤치다꺼리하느라고 1-2학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선배들이 불러다가 혼내면 대신 싸워주고, 술 마시고 뻗어 있으면 택시 태워 보내주고, 산에 갔다 쓰러질라 옆에서 물이며 포도당 캔디며 챙겨 먹이고, 족보가 돌면 그들에게 제일 먼저 갖다 바치며 공부까지 시켜주었다. 그야말로 우리는 산악부의 신사임당들이었고, 그들과는 사랑 빠진 애증의 전우애만 겨우 남아 있었다. 이러다 남자친구도 못 사귀고 처녀귀신 되는 거 아냐? 여자 셋이 모이면 늘 고민을 했다.




그해 3월, 동아리 신입생으로 나와 같은 나이의 잘생긴 남자애들이 몇 명 들어왔다. 같은 나이의 신입생들은 다른 신입생들과는 좀 달랐다. 능구렁이처럼 능글맞아서, 밥 사달라고 할 때만 선배라고 부르고 평소에는 이름을 불렀는데 그게 싫지는 않았다. 선배들이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어리버리하고 예쁜 후배들에게 왠지 우리는 동아리 가입을 목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신입생 같지 않은 능구렁이들이 스무 살 여자애들까지 데려와 우리 대신 동아리에 가입까지 시키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같은 나이다 보니 선후배 사이이긴 했지만 그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틈만 나면 같이 밥 먹고 놀고 술 마시고 하다 보니 점점 더 가까워졌다. 1, 3학년 간 유대가 생겼다.


유대감을 더 결속시키기 위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마니또 게임을 하게 되었다. 1학년은 3학년을 뽑고, 3학년은 1학년을 뽑았다. 처음엔 그저 나의 마니또에게 잘해주기 위함이었다. 매일 가벼운 농담조로 익명의 문자를 보내고 사물함에 음료수며 간식을 넣고, 가끔 쪽지도 남겼다. 절대 그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는 내 익명의 문자 말투에서 이미 나인걸 눈치채고 장난스럽게 나에게 익명의 답문을 보내왔다. 그렇게 모르는 척 서로 문자를 주고받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뭉게뭉게 감정이 피어났다. 마니또 게임은 1-2주 만에 끝났지만 우리만의 마니또 게임은 그 뒤로도 한참 계속되었다.


그는 낭만을 아는 사람이었다. 작은 감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안겨주는 그런 사람. 동기 남자애들만 보다가 그 친구를 보니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았다. 비어있던 우리 집 우편함이 분주해졌다. 그 해 화이트 데이에 장미꽃 한 송이가 툭 하고 꽂혀있던 걸 시작으로, 어느 날은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툭. 또 어느 날은 봄에 피는 단풍잎이라며 빠알간 단풍잎을 코팅해 와 편지와 함께 '오다 주웠다'느낌으로 툭 놓고 갔다. 마니또 게임에서 자기가 받았던 것들을 갚는 의미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말까지, 내 마음을 읽고 있는 듯 느껴졌다. 모두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우정인 듯 사랑인 듯 쌓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벚꽃이 활짝 핀 길을 함께 걷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내 신발끈을 묶어주는 그를 보았을 때, 내 가슴속은 대책 없이 방망이질 치며 설렘으로 물들어 버렸다. 내 마음에도 활짝 꽃이 피었다.



학교 캠퍼스를 몇 시간씩 산책하고, 헤어지기 아쉬워 집 앞에서 눈이 시뻘게지도록 밤새 이야기하곤 했다.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교외로 놀러 다녔다. 함께 나눠먹는 빙수 하나에도 즐거웠고 볶음밥을 먹다가도 까르르 웃었다.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픽픽 넘어지는 것도, 함께 버스를 놓치는 순간까지도 재미있었다. 내겐 그의 사투리 말투, 장난치는 취향, 함께 듣는 음악까지 다 완벽했다. 정말이지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축복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전에 고백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어도 아무런 감정을 못 느꼈었는데, 얜 이상하게 보기만 해도 설렜다. 짝사랑을 제외하고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우리는 1학기 내내 그렇게 애매한 관계로 지냈다. 사귀자 말자 가타부타 말이 없던 그에게, 굳이 나도 묻지 않았다.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건 1학기가 끝나기 며칠 남지 않아서였다. 그것도 다른 친구에게 들어서였다. 충격을 받았지만, 용기가 없었던 나는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묻지도 못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점점 그를 피하게 되었다. 눈치 백 단이었던 그가 먼저 대화를 하자며 나를 불러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술 한잔 얼큰하게 마시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어. 그런데 떨어져 있어서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았어. 널 만나고 계속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어. 내가 완전히 정리할 그때까지, 좀 기다려줄래?"

"......"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나는 예정되어 있던 한 달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도저히 관계를 끝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쪽도 하고 싶지 않았다. 1학기 내내 날 속였던 그였다. 머리가 터지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개학 후 만난 나를 먼저 정리한 것은 그쪽이었다. 대답 없이 떠난 여행이, 그에게는 no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걸까. 그렇게 처음으로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 사귄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가 내가 겪은 실연 중 제일 아팠다. 어렸고, 모든 게 다 처음이었고,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러웠으리라.


내 마음의 꽃이 졌다. 지는 꽃을 붙잡고 싶어서 이미 끝난 관계에 집착을 했다. 내가 기다릴 테니 다시 기회를 달라고 몇 번을 울면서 매달려도 보고, 밤에 새벽에 문자도 보내보고,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가 안 되겠다고 했다가 혼자 난리법석, 할 수 있는 온갖 찌질한 짓은 그때 다했다. 그는 내가 그럴 때마다 냉정하게도 선을 딱 그었다.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돌아선 마음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 학기의 지우고 싶은 시간이 지나니, 신기하게도 실연의 상처가 아물며 마음 정리가 되고 모든 아픔과 미련이 싹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그와 마주쳐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른 오징어들처럼 그냥 친구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할 만큼 했고 이제 됐다.


그 이후로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그에게서 몇 번의 신호가 왔다. 첫사랑의 감정에 매여있던 순진하고 서툴던 때를 지나고 나자, 그의 마음이 보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점점 알아갔다. 더 이상의 미련도 감정도 남지 않은 나는 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복수는 전혀 아니었고 단지 감정이 전부 다 썰물처럼 빠져나가서였다. 뜨거웠던 마음이 차게 식었다.


22살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니, 첫사랑을 했던 나의 아름다웠던 감정만 추억으로 남았다. 우리의 추억이 아니라, 나의 추억. 나의 첫사랑. 그 순간들을 예쁘게 기억하고 싶어서였는지, 첫사랑의 그와 현실의 그는 내 마음속에서 분리되었다. '환상 속의 그대'로 내 마음속에 저장. 내가 진정 남기고 싶었던 것들은, 사랑에 퐁당 빠져 허우적대던 어린 나의 모습. 찌질했지만 간절했고, 순진했지만 귀여웠고, 온 마음 다해 진심이었던 그때. 다시는 이런 마음으로 사랑을 하지는 못하겠지 씁쓸했지만, 아픔을 견뎌내고 성장한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동아리 남자 동기 중의 한 명이 얼마 전 늦은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 투성이다. 마치 동창회를 나온 듯 시끌시끌. 말투며 모습이며 결혼만 했지, 동기들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때, 저 멀리 나의 첫사랑이 보인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괜히 반갑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해서 뭐 하고 사나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린 시절의 추억은 미화되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그때 그랬었지, 나도 모르게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예쁘게 잘 차려입고 오길 잘했다.


가까이 다가와 웃으며 인사하는 내 첫사랑을 보며, '아 우린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세월의 흔적을 정통으로 맞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내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멀리서만 보고 인사하지 말껄. 가끔 떠올리고 궁금해하기만 할껄.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사정없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껄껄거리는 나에게 말을 거는 그는, 빛나는 대머리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할 때 가장 아름다운 법. 갈 곳 잃은 내 추억은 이제 정말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반짝반짝 아름다웠던 나의 추억 안녕. 나의 22살 이제 영원히 안녕.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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