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이야기]#1
신호등
얼어붙은 길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횡단보도에 도착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있잖아.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무슨 생각?”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너 엉뚱한 소리하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뭔데 말해봐.”
“우리가 지금 신호를 기다리고 있잖아.”
“그치.”
“근데 참 시간이 안 가잖아.”
“무슨 시간? 아. 신호 떨어지는 거? 그렇긴 하지.”
“심지어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 순간에도 아직도 신호가 안 바뀌었단 말이지.”
“신호 원래 늦게 떨어지잖아. 새삼스럽게.”
“아니, 아니. 그래도 뭔가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시간이 너무 처언천히 가는듯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안 그래?”
“흠.. 확실히 뭔가 짧으면서도 한참 기다리는 것 같기는 하다. 실제 몇 분 안 될 텐데 말이지.”
“그치? 이상하지? 그래서 내가 생각을 해봤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왜 시간이 천천히 가는가!?”
“하여튼 별 생각을 다 해요. 그래서 뭔데? 뭐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냈어?”
“음. 그니까. 실은 시간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시간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딱 켜지면 멈칫하고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러니까 시간이 느리게 갈 수밖에 없는 거지.”
“으흥. 계속 해봐.”
“뭐 계속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그니까 파란불일 때도 마찬가지 인거야. 왜 건너다보면 또 막상 파란불 신호가 엄청 짧다고 느껴지기도 하잖아. 처음엔 뭐 깜빡거리지도 않아요. 화살표도 한 칸 한 칸 천천히 내려가는데, 갑자기이 막 두 개씩 내려가듯이 파바박 화살표가 내려가. 안 그래?”
“그럼 그건, 시간이 우리처럼 느긋하게 건너다가 신호 떨어지는 거 보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막 서둘러 가서 그런 거야?”
“오. 이제 좀 아는데? 그러니까 결론은 시간도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어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껴지는 거지.”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야.”
나는 실실 웃어대다가 이윽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엉뚱한 인간이 아주 큰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짓고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 오늘도 삶의 미스테리를 하나 풀어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