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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Oct 17. 2017

수용소의 삼천육백오십삼 일 중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https://youtu.be/Mn49ftYWKjE

  극도로 열악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견디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상황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희망’일까요? 언젠가는 이 모든 고통이 끝나고 일신의 평안과 자유가 찾아온다는 희망. 이런 희망은 분명 작금의 고통을 감내케 합니다. 그렇다면 이 진통제와 같은 희망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요? 하루? 하루는 너무 짧은가요? 일 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버틸만한 기간인가요? 그렇다면 십 년은 어떤가요?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면? 희망은 여전히 유효한 진통제가 될 수 있을까요?


  ‘이반 데니소비치’는 죄수입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작업하며 형기를 보냅니다. 수용소에 있는 다른 인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죄수로서, 감시를 받으며, 각자가 속한 반원들과 함께 하루를 지냅니다. 이미 수용소라는 말에서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끔찍하지요. 여기 그들의 수많은 날 중 하루를 소개하려 합니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입니다.



구멍 난 펠트 장화, 희멀건한 죽 한 그릇, 고장 난 승강기


  수용소의 하루는 참혹합니다. 비록 이반 데니소비치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그의 말을 토대로 객관적으로 이들의 삶을 조망해본다면 분명 끔찍합니다. 영하 삼십 도의 추위가 수용소들을 위협하지만, 그런 가혹한 공격에도 이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옷가지뿐입니다. 제아무리 옷을 단단히 여미어도 손발이 얼고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옷을 더 껴입는 것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작업을 시작하기 전 죄수들은 혹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옷을 벗어 검사를 받아야 하죠. 규정된 옷 이외의 무언가를 입고 있으면 혹독한 처벌이 이어집니다. 장화는 구멍이 나기 일쑤여서 차가운 눈이 스며들어오지만 온전한 장화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먹을 것은 더 끔찍합니다. 이들이 먹게 되는 것은 온전한 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죄수들에게는 빵 조금과 ‘죽’ 한 그릇이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없어서 매 끼니 식당은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건더기라고는 거의 없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살점과 생선 가시들만이 있는 죽 한 그릇. 죄수들은 살점 없는 가시들을 쪽쪽 빨아먹으며 허겁지겁 먹어치웁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배고픔에서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생존을 위한 행동이지요. 그릇을 깨끗하게 씻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쓰던 그릇이든 상관하지 않고 죄수들은 혓바닥으로 그릇을 핥아가며 허기를 채우기 급급합니다.


  작업환경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업을 위한 도구는 충분치 않고, 작업장 내의 기계가 온전히 작동하는 꼴은 보기 힘들지요. 승강기는 고장 난 지 오래고, 이를 고치러 누군가 오기도 하지만, 결국 못 고치고 돌아갑니다. 안전장치는 당연히 있을 리 만무하고, 죄수들은 그저 온몸을 사용하여 고된 작업을 수행해야 하지요. 불을 때도 온기를 받을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모두가 간절한 담배는 구하기가 힘들어 누군가 담배를 피우면 꽁초라도 받아 볼 수 있을까 눈치를 봅니다.



담배꽁초, 양배춧국, 빵 이백 그램


  외부에서 소포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가난한 이반 데니소비치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104반 반원들이 그에게 형기가 얼마 안 남지 않았냐고 말하지만, 그의 형기는 십 년입니다. 설령 형기가 끝나간다고 하여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속절없이 형기가 추가되는 걸 이반 데니소비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도 이반 데니소비치보다 길면 길었지 짧지 않은 형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십 년이나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형기가 끝나리라는 희망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큰 희망은 되돌릴 수 없는 절망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이반 데니소비치를 지탱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입니다.


  ……체자리가 슈호프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반 데니소비치! 자, 한 모금 피우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호박으로 만든 짧은 물부리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꽁초를 뽑아들었다.
  슈호프는 약간 당황한 채(물론, 체자리가 먼저 권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상대방이 이렇게 말하자 약간 당황했다), 감사하다는 손짓을 얼른 하고는, 한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행여나 땅에 떨어질까 봐 받치면서 들었다.


  요컨대 기대는 하였지만 정말 자신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꽁초 하나. 담배가 간절하던 차의 이반 데니소비치에게는 작은 담배꽁초가 큰 선물과도 같지요. 혹은 죽 한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슈호프는 현장 사무소에 있는 체자리에게 죽 한 그릇을 갖다 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는 했다(체자리는 수용소 안에서는 물론이고, 이런 작업장에서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파블로가 두 그릇을 자기한테 건네주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심장이 다 멈춰버릴 정도였다. 두 그릇을 다 나에게 준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일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반 데니소비치에게는 큰 희망은 별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내일 혹은 내년 같은 미래의 일,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그저 복잡한 일입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이반 데니소비치를 비롯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자신에게 주어지는 죽 한 그릇과, 견딜만한 작업, 젖지 않은 펠트 장화, 이백 그램짜리 빵입니다. 부당한 것에 전복을 바라는 영웅적인 면모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현실은 보다 냉혹한 법이지요. 당장에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작은 희망이 최우선입니다. 설령 그것이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말이지요.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슈호프는 먹기 시작한다.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켠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죄수들이 사는 것은 먼 미래의 순간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눈앞에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이 놓이는 저 순간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지요.



수용소의 삼천육백오십삼 일 중 하루


  삶에는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고달픈 순간도 있습니다. 고달픈 순간이 짧다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겠지만, 그 기간이 연장되어 끝이 너무 아득히 멀어지면 버텨내기가 힘들지요. 이런 순간에는 먼 미래의 일 같은 희망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 순간을 버텨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희망이지요. 희망이라고 이름 짓기도 애매한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러니 삶이 우리를 너무 고달프게 한다면, 소소하지만 성취할 수 있는 눈앞의 것들을 먼저 손에 쥐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벗어나기 힘든 막막하고 고단한 삶을 어쨌든 한발 나아가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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