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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Oct 20. 2017

편의점 인간: A+B+C=A+B+C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언제부터였을까요? 편의점이 간단한 물품을 구비한, 편의를 위한 장소를 넘어선 때가? 어느 순간부터 어린 시절 방바닥에 앉은 할머니가 돈 받으시던 슈퍼마켓이 사라지고, 깔끔하고 젊은 알바들이 카드 받는 편의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요. 처음에는 말 그대로 간단한 편의를 위해서 들리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실 편의점에 구비된 물품만으로도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수많은 과자와 음료수, 끼닛거리, 생필품 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죠. 이제 정말 주변에 편의점이 없으면 이상한 기분도 듭니다. 당연히 있어야하는 것이 없는 느낌일까요?


  편의점과 관련하여 또 하나 친숙한 것은 ‘편의점 알바’입니다. 많은 알바 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지요. 특별한 관련 직종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대체로 배우기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의점 알바에 관련된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노동환경도 언제나 따라다니는 이야기지만요.


편의점과 인간성


  편의점을 이용하는 우리는 편의점과 그 직원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원하는 상품을 찾지 못할 때 직원에게 묻고, 직원은 알려주고, 상품을 결제하고, 끝이지요. 잘 정리된 상품, 잘 보이는 가격, 빠른 계산. 그야말로 효율적인 장소입니다. 불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편의점은 어쩌면 현대적인 것과 가장 잘 합치하는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니 편의점이 결점 없는 완벽한 장소처럼 보이지만, 현대적인 이미지와 걸맞게 찾기 힘든 것도 있지요.


  인간성.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편의점의 존재 이유와 구매 과정에 무슨 인간성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겠지요. 확실히 우리는 편의점에서 어떤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죠. 하지만 편의점에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도, 진열하는 것도, 판매하는 것도, 모두 인간입니다. 제아무리 효율성을 추구하는 곳이지만 인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모든 게 편의점을 위한 인간이 있다면 어떨까요? 편의점의 소리를 듣고, 편의점에 맞게 신체를 맞추는 인간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런 존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을 소개합니다.


  주인공 후루쿠라(게이코)는 어쩐지 좀 이상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남들과는 달랐죠. 남들은 당연하게 느끼는 것을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놀던 후루쿠라는 죽은 새를 손에 들고 엄마에게 다가가 말하죠. “이거 먹자.” 동생은 닭튀김을 좋아하고, 아빠는 새 꼬치구이를 좋아하니 집에 가서 꼬치구이를 해 먹자는 말이었죠. 그녀는 자신의 말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이 새는 작고 귀엽지? 저쪽에 무덤을 만들고, 모두 함 게 꽃을 바치자꾸나”하고 열심히 말했고, 결국 그 말대로 되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일화도 있습니다. 교실에서 두 아이가 싸우자, 누군가 말리라고 소리쳤고, 후루쿠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싸움을 말리죠. 삽을 들고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려야 하나 보다고 생각한 나는 옆에 있는 도구함을 열어 안에 있던 삽을 꺼내 들고 난폭하게 날뛰는 아이한테 달려가 그 애 머리를 삽으로 후려쳤다.


  그녀의 부모님은 아이를 데리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죠. 후루쿠라는 다만 자신이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 정도를 느끼며, 되도록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편의점 인간: A+B+C=A+B+C


  그렇게 겉보기에는 그냥 조용하고 소극적인 인간으로 자란 후루쿠라는 문득 새로 오픈하는 편의점 직원 공고를 보고, 편의점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되었죠. 편의점 인간’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알고 보면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그녀가 여동생의 조언에 따라 선택한 방법은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미묘하게 다른 사람의 말투, 행동, 옷차림까지 따라 합니다. 그런 그녀를 편의점 직원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요.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3할은 이즈미 씨, 3할은 스가와라 씨, 2할은 점장, 나머지는 반년 전에 그만둔 사사키 씨와 1년 전까지 알바 팀장이었던 오카자키 군처럼 과거의 다른 사람들한테서 흡수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후루쿠라처럼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습니다. 알게 모르게 서로 닮기도 하죠. 하지만 후루쿠라의 경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그녀 자신은 없습니다. 우리가 A, B, C라는 사람을 모두 닮아도 그 합인 ‘나’는 단순한 A+B+C가 아닙니다. 아예 새로운 D가 되거나 혹은 (A+B+C)'가 되죠. 어떤 부분에서는 타인과 다른 자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후루쿠라는 단순한 A+B+C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 말처럼 시간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한다고 하여도 그건 그녀가 마시는 물(환경)이 달라지면서 다른 것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녀 역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요.


기본적으로 후루쿠라 씨가 먼저 불평을 하거나 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보기 싫은 신참한테도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움찔했다.
  내가 가짜라는 것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황급히 표정을 고쳤다.



기묘한 인간 유형 Uncanny human type


  독자로서 화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읽노라면 응당 화자의 시선에 공감이 가야 하지만, 어쩐지 후루쿠라의 시선에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책에서 은근히 비꼬는 인간 사회의 세속적이고 강압적인 면모들이 공감 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충분히 이미 인지하고 있고, 여전히 문제시되는 것들이니까요. 다만 후루쿠라가 보는 시각과 이윽고 그녀가 도착하는 인간의 모습이 인간인 듯 인간 같지 않기 때문일까요?


  새로운 인간 유형의 탄생인 것일까. 효율적인 세상에 가장 효율적인 존재.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최적화된 인간. 우리가 이런 ‘편의점 인간’ 유형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일까요? 짧고, 금방 읽히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어쩐지 거부감이 드는 것은 편의점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기존 인간 유형의 본능인지 모르겠습니다. 더더욱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짧더라도 말이지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아니, 누구에게 용납이 안 되어도 나는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인 나에게는 어쩌면 시라하 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할지 모르죠.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편의점을 위해 또 다시 몸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좀 더 빨리 정확하게 움직이고, 음료를 보충하는 일이나 바닥을 청소하는 일도 더 빨리할 수 있도록, 편의점의 ‘목소리’에 좀 더 완벽하게 따를 수 있도록, 육체의 모든 것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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