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락서 Jul 12. 2018

악몽

[지나가는 이야기]#3

  시작은 기묘한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다. 삼각형 지붕 입구를 들어가 얕은 경사를 다섯 발자국 정도 걸으면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반짝이는 금속의 광택은 어느 정도 사라진 빛바랜 회색 철문. 눈높이의 왼쪽 문에 조그마한 유리창이 달려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다. 어릴 때는 머리 위였겠지만 지금은 허리정도까지 내려온 화살표를 누른다. 앞으로도 화살표는 이 정도 높이에 있겠지. 철문이 열린다. 환한 조명이 내부 어느 곳도 소외시키지 않고 꼼꼼히 빛을 비추고 있다. 아무도 내리지 않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내 무게를 더한다. 13을 누른다. 문이 닫히고 조용히 미끄러지듯 올라간다. 고개를 들어 바뀌는 숫자만을 바라본다. 바라보지 않아도 올라갈 것은 분명한데 마치 그곳만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띵. 1301호. 오른쪽 대각선으로 세 발걸음. 분명 우리 집인데 어쩐지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왜? 띵-동.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시끌벅적한 소리가 안에서 들린다. 노랫소리가 들리고 쿵쿵거리는 비트가 들린다. 문이 열린다. 누가 열어준 것일까? 저절로 열린 것처럼 느껴진다. 현관문에 들어서긴 했는데 모르는 곳이다. 분명 우리 집인데 전혀 모르는 곳이다.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 내부는 파란 조명과 빨간 조명이 가득하다.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벌써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밤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소음.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낯섦을 넘어 섬뜩하다. 현관문에서 얼마를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빨리 이 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돈다. 황급히 뒤로 돌아서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사위가 어두움에도 엘리베이터 앞 조명이 반응하지 않는다. 맞은 편 창문에서 들어오는 달빛을 조명 삼아 내려가는 화살표를 누른다. 초조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 갈 곳도 없지만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분명 조금 전에 타고 온 엘리베이터랑 같아 보이지만 조그만 유리창으로 보이는 내부 조명이 이상하다. 집 안에서 보았던 파랗고 붉은 조명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채우고 있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몸이 경직되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철문이 열리면서 하얀 연기가 새어나온다. 몸이 얼어붙는다. 그리고 얼핏 소복을 입은 긴 머리의 여자를 본 것 같다. 여기서 나는 공포에 이성을 잃는다. 실체가 무언지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뒤를 돌아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다. 내가 내려갈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거의 날아가듯 계단을 내려간다. 더운 날이 아니었음에도 등은 공포로 젖어 있었다. 12개의 층을 내려오면서 어느 층에서도 조명이 켜지지 않는다. 누군가 따라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고개도 들지 않고 계단만 보며 뛰어 내려간다. 이윽고 1층에 도달하고 난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간다. 가로등만이 켜진 어두운 밤. 어디로 가야할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듯 단지 밖으로 달린다. 

  꿈에서 깬다. 얼굴은 눈물범벅이고,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한 번 꾸었던 꿈이 아니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여러 번이다. 계단을 뛰어 내려오게 하던 공포를 몸은 기억하고 있다.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잊고 싶지만 소용없다. 이 악몽은 분명 어느 날엔가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