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락서 Jul 15. 2018

동경

[지나가는 이야기]#5

  “야. 넌 뭔가 동경하는 게 있냐?”

  “동경?”

  소파에 누워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동생은 티비를 보며 답했다.

  “응. 뭐 간절히 그리워하고 매 순간 생각하는 거.”

  “아. 있지. 계속 생각나는 거.”

  매사에 심드렁하여 웬만한 일에는 열의를 보이지 않는 동생의 대답치고는 의외였다.

  “진짜? 뭔데?”

  “치즈등갈비.”

  “뭐?”

  “치즈등갈비.”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 못 들은 것일까? 아니면 으레 장난처럼 별생각 없이 대답하는 것일까. 동생의 의중이 궁금했다.

  “뭔 개소리야. 이상한 소리 말고. 진짜 진지하게 동경하는 거 있냐고.”

  동생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똑똑히 쳐다보고 말했다.

  “치. 즈. 등. 갈. 비.”

  아. 이 인간은 답이 없다. 제대로 답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진지한 대답을 기대한 나의 잘못이었다.

  “하아. 됐다. 무슨 말을 하냐. 보던 거나 봐라.”

  나를 빤히 쳐다보던 동생은 자세를 고쳐 소파에 똑바로 앉았다. 기분이 좀 상한 듯 내게 차갑게 말했다.

  “뭐. 왜. 동경하는 거라며.”

  “어. 동경하는 거. 근데 너 치즈등갈비라며.”

  “어. 그게 뭐 어때서.”

  “야. 그게 대답이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어.”

  “오빠. 오빠. 나 봐봐.”

  지을 수 있는 가장 한심해 보인다는 표정으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니까. 간절히 그리워하는 거라며?”

  “응.”

  “계속 생각나는 거라며?”

  “그래. 동경하는 거.”

  그러자 동생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니까 치즈등갈비라고! 내가 지금 몹시 배가 고파. 저녁을 이르게 먹었거든. 그래서 난 먹을 게 간절해. 지금 꼬르륵 소리 들리지?”

  과연 타이밍 좋게 티비 소리를 뚫고 동생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다시 말 안 해도 내가 충분히 배고픔을 증명하는 소리야. 그리고 난 지금 치즈등갈비가 몹시 몹시 먹고 싶다고! 계속 머릿속에서 치즈등갈비만 생각난다고!”

  동생은 진심이었다. 결연한 눈빛이 한 치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시 내가 동생의 말을 우습게 여긴다는 눈빛을 비추면 배고픔으로 예민해진 동생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보였다. 평소 배고픈 동생의 흉폭함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나는 최대한 동생을 진정시키며 험악한 상황을 타개하려 노력했다. 물론 허사였다. 동생은 갑자기 일어나 배가 고프다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자신을 배가 고프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배고픈 건 유일하게 가장 활발히 운동하는지 위장한테 따져야 할 문제 아닌가? 물론 이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최근 남자친구랑 헤어진 동생을 더 건드렸다가는 며칠을 고생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진짜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가 신용카드를 눈앞에서 흔들자 동생이 육식동물에서 초식동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윽고 삼십 분 뒤 치즈등갈비가 초인종을 누르자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마치 순한 양처럼 동생은 내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지만, 동생 옆에 쌓여가는 갈비뼈를 보며 나는 동생이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다음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어째 동생이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은 또 왜? 동생은 직장 동료와 전화통화를 하는 듯 보였다. 평소 동생을 괴롭히던 상사 욕이 쏟아져 나왔다. 아뿔싸. 어제는 전남친 때문이더니 오늘은 상사 때문이구나. 나는 어제와 같은 출혈을 피하기 위해 다시 조심스레 패딩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한두 시간 정도 동생이 잠들 때를 기다려 들어갈 심산이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핸드폰을 만지작하던 중이었다.
  카톡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동생 : ‘올 때 치즈등갈비.’』

  오늘도 잘못 걸렸구나. 나는 마시던 캔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우리 집인지 아시는 치즈등갈비 가게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발 전남친이든 상사든 내 동생 좀 건드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그리워하며 주야장천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둣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