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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l 16. 2018

검은 손전등

[지나가는 이야기]#6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눈에 띌 만큼 수척해져 있었다. 흐리멍덩하고 퀭한 눈과 쏙 들어간 볼.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의심 갈 정도로 친구는 심각해 보였다. 지난 1월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아버지를 찾았던 친구는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평온한 모습에 조금 마음을 놓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대게 우리가 그렇듯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가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행방불명’이었다. 그 후 친구는 백방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였지만 허사였다. 어머니가 떠나고 우울증에 시달리시기는 하셨지만, 치매라든지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부러 연락을 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좋은 소식을 기대해왔던 나는 친구의 몰골을 보고 더 이상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묵묵히 술잔을 비우던 친구는 내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읊조리듯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을 되뇌었다.

  “분명 그 날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이셨어. 엄마 돌아가신 이후로 늘 그늘져있던 수심 가득한 모습에 비해 그 날은 평온해 보이셨는데. 내게 모처럼 활짝 웃어주며 배웅까지 해주셨는데.”

  “그때 이미 어디로 떠날 생각이셨을까?”

  “글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평온한 모습이었는지조차 헷갈리기도 해. 다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매일 밤 어머니를 떠올리시며 조명에 대해 이야기하셨어. 자신은 이렇게 밝은 조명이 가득한 세상에 아직 남아있는데 엄마는 어두운 곳에 있다고. 그리고는 자신도 어두운 곳에 가고 싶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하셨었지.”

  친구는 술잔을 비웠고 나는 말없이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후론 불이란 불은 다 끄고 다니셨어. 밝은 조명을 참을 수 없으셨나 봐. 그런데 그렇게 있는 조명을 다 꺼도 아버지는 만족스럽지 않으신 듯했어. 그저 못마땅하다는 듯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밝은 조명이 꺼진 자리를 응시하셨지.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뭔가 아버지는 더 어두운 것을 찾는 것 같아 보이셨어.”

  “어두운 것? 조명 끄는 거 말고?”

  “어. 더 완벽한 어둠을 원하셨던 거 같아.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무언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친구의 말이 선뜻 이해가지 않았다. 그런 내 표정을 눈치챈 듯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아버지의 진짜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그마저도 다 내 추측일 뿐이지. 이제 와서 물어보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모르겠어. 정말 아무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친구에게 더 위로를 건넬 수가 없었다. 막연한 희망을 기대하기엔 친구는 너무 지쳐있었다.

  “슬슬 일어나자. 더 시간 뺏기도 그렇고. 지난 며칠 잠도 못 자서 나도 너무 피곤하거든. 유품이랄 것도 없긴 했지만 그나마도 정리하고 나니 진이 빠지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친구 아버지의 유품은 간단했다고 했다. 집안 세간살이는 그대로 제자리에 단출하게 남아있었고, 유서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특이한 것은 친구 아버지가 즐겨 입으시던 등산복과 등산 가방이 없었다는 점과 집 안 전신 거울 앞 등산화 발자국 그리고 처음 보는 손전등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 손전등 하나만을 들고 올라왔다고 했다. 마치 그것이 아버지 행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끄나풀인 것처럼.

  그렇게 그날은 헤어졌지만, 체념과 회한에 휩싸인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여 급한 업무만을 처리하고 일찍 퇴근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볼 심산이었다. 핸드폰은 꺼져 있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친구 집은 예전 그대로로 숨겨진 비상 열쇠를 찾아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처음엔 보일러가 켜져 있기에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웠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왠지 모를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친구의 옷방에 들어선 나는 두려움에 가까운 낯섦을 느꼈다. 친구는 없었다. 거울 앞에는 손전등이 떨어져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사라졌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지에 이끌리듯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을 주워보았다. 손전등을 응시하던 나는 갑작스레 소름이 끼쳤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이른 시각이고,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손전등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까매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손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바닥을 비추어 보았다. 원형의 그림자가 바닥에 생겼다. 아니, 그건 그림자라고 할 수 없었다. 바닥이 사라진 것 같은 까만 원이었다. 이치에 어긋난 것을 본 느낌에 나는 재빨리 스위치를 내렸다. 뭔가 없어졌다. 그 자리에 있었던 무언가가. 온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은 나는 눈동자만을 움직였다.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 있었고, 나는 그 손전등을 내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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