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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Sep 22. 2020

모든 마주침이 환영받지는 못한다.

낱장 일기02

모든 마주침이 환영받지는 못한다. 마주침의 결과를 당사자 간의 친밀도로 구분했을 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서로 아주 친할 때 : 가장 긍정적인 경우로 문제가 생길 요소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친한 지인과의 만남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이유가 있을까. 기쁨의 놀람과 반가움을 나누고 피차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헤어질 때까지 밀린 안부를 나눈다.
2. 서로 친하지 않을 때 : 이 경우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는 척도 하지 않거나, 눈이 마주쳐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경우라도 그 조우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수박 겉핥기보다 간단하면서도 불편하게 해산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간결하다.
3. 한쪽만 친하다고 생각할 때 : 둘은 만났으나 서로에게 갖고 있는 호감도 수치가 다르다. 바로 이 경우가 진짜 곤란한 문제를 야기한다. 한쪽은 이 마주침을 하나의 긍정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우연을 기회로 삼아 모처럼 긴 이야기를 나누려는 반면, 다른 쪽은 이 마주침이 전혀 운명처럼 느껴지지 않고, 상대방의 반응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스타벅스를 갔다. 1층에서 커피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보니 마땅하지 않아 3층으로 향했다. 한가운데 여럿이 앉을 수 있는 긴 원목 테이블 끝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한 여성분(A)이 거리를 두고 먼저 앉아계셨는데 그녀는 맞은편에 조금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남녀(B, C)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아도 이들은 우연히 마주친 지인이었다.
그리고 그 마주침은 세 번째 경우인 듯 보였다. 여기서 추측성의 표현을 쓴 것은 나는 책을 읽을 생각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귀마개를 낀 탓으로 그들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고(물론 구태여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들의 마주침 이후에 내가 자리에 앉은 것이라 그 앞의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앉은 후 약 10분여의 시간 동안 그들은 반가움을 나누었지만 그게 어쩐지 한 쪽(A)의 격앙된 목소리로 드러나고 있었고, C는 계속해서 이 우연을 종식시키고 남자친구(B)와의 둘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C는 이제 가야 한다 가야겠다는 말을 정말 몇 번이고 했고, 그때마다 A는 지금 나를 버리는 거냐며 조금만 더 있다 가라며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거냐며 C를 붙잡았다. 여전히 A는 C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 순간 대뜸 자신의 가방을 가리키며 이거 얼마처럼 보여?를 시전했다. C는 A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숫자를 말하긴 했지만, 정말이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아 보였다. 끝끝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야 한다를 반복하던 C는 A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B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는 아주 잠깐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내 착각이었을까? 아무 관련이 없는 옆 사람마저 불편함을 느낀 그들의 마주침은 도대체 어떤 전후 사정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인간관계라는 것이 좀 전에 옆에서 벌어진 일 같은 것까지 삶의 한 몫으로 감수해야 함을 내포하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오해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판단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남자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올라간 4층에서 나는 아까 분명 내려갔던 커플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이 지점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A에게 말하지 않았다. 여자 화장실은 3층에 있었으므로 A가 4층으로 올라올 리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본 것은 어떠한 촉이 발동한 것은 모르지만 4층으로 올라가는 A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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