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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낱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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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Sep 28. 2020

오래된 사진을 보면 마음 한켠 묵직한 슬픔이 차오른다.

낱장 일기03

그 핫하다는 넷플릭스를 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넷플릭스에 속한, 밤잠을 이루게 하지 못하는, 요즘 같은 시기 코로나 특수로 대박을 맞고 있다는, 방대한 컨텐츠 중에 다큐멘터리 하나를 보았다. 그렇게 꿀잼인 컨텐츠가 넘쳐난다는 넷플릭스에서 하필이면 또 고른 게 다큐멘터리라니.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러고 싶었고, 그건 다큐를 시청할 충분한 이유처럼 느껴졌었다. 그렇게 고른 다큐는 ‘아폴로 11’ 제목에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1969년의 역사적 사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그 여정을 다룬 다큐다. 발사부터 도착 그리고 귀환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인류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만들었는데 이건 어쩌면 국뽕을 넘어선 인(류)뽕?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그 유명한 닐 암스트롱의 한 마디. 1969년 7월 21일 02:56:15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바로 그 말.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 문장을 들을 때는 약간의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그 문장을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본인이 인류에 대한 막연한 증오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나 그를 넘어서 알고 보니 인간의 외피를 뒤집어쓴 외계 생명체는 아닌지 정체성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인류가 우주로 뻗어나간 과정에 대한 세세한 썰 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건 나무위키만 들어가도 아주 세세하게 알 수 있으니까. 그보다는 과거. 지금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에 박제된 사람들. 그로부터 느끼는 야릇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언제부턴가 오래된 사진을 보면 마음 한켠 묵직한 슬픔이 차오른다. 그게 설령 나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스페인 라스팔마스의 작은 광장에서 찍힌 사진이라고 할지라도. 오래된 사진엔 박제된 생명이, 전해지지 못한 수십수백 권의 책이, 가장 아름다운 슬픔, 우울함을 낫게 해 줄 유희,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 모든 가능성이 들어있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텍쥐페리가 2등 칸 열차를 지나며 추운 날씨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어미의 품밖에 없는 아이에게서 ‘죽어가는 모차르트’를 보았음을 믿는다. 내가 휴머니스트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비약이 필요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시각(인간에 대한 끝없는 연민, 가능성에 대한 신뢰)에 진득한 존경을 느낀다. 내가 실제로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별개의 일이다. 단순히 착하다고 해서 품을 수 있는 생각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그 나름의 철학에서만 파생할 수 있는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은 것. 그것은 숭고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나는 오래된 사진 및 영상에서 저릿한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라고 할지라도.

영상 속에서 웃으며 기대감에 차 망원경에 눈을 박고 들떠있는 사람들. 어린아이부터 부모, 혹은 그저 끼리끼리 몰려온 젊은이들. 1969년으로부터 5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영상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죽어있거나 살아있더라도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는 사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비입체적인 글을 넘어서 영상으로 박제되는 인간들. 패션이나 갖고 있는 물건이 조금 다르다는 것만 빼면 차이를 모르겠는 사람들. 그 생생함을 마주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마냥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으련다. 과거를 추억함으로 파할 길 없는 그리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아마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쏟을 길 없는 애정의 대상이 될 테니까. 그건 분명 필요한 일이니. 다만,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새에 박제되어가는 나의 삶이 내가 없는 어딘가에서 어떤 표정으로 드러날 것인가. 그것이 조금 두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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