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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Sep 30. 2020

나는 '페스트'를 읽고 있다

낱장 일기04

또 새벽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얹는다. 한참을 굳어있던 손이 움직이며 타자를 치기 시작한다. ‘또 새벽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얹는다.’
자. 그렇다면, 오늘은 또 뭐에 대해서 써볼까? 분명 오후에 미리 오늘 쓸 것을 대략적으로 생각해놔야겠다고 되뇌었지만,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일찍 일어나리라 다짐만 하는 것처럼 결국 백지인 채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 한 일을 가만히 짚어보면 뭔가 쓸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27도쯤 쳐올려 눈을 감고 다시 백지가 된다. 글에는 드러나지 않는 공백의 기간 동안 정말 아무것도 생각지 못했다면, 솔직히 여기서 타자를 치고 앉아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메모장을 뜯어 ‘내일 병원 갈 것을 잊지 말 것’이라고 적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무언가 생각이 났고(이걸 다행이라 이야기하다니. 제 딴에는 유머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건 간단한 생각이었다. 오늘 나는 ‘페스트’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제에 이어 또 카뮈 이야기냐 싶을 수 있다. 근데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최근에 읽기 시작해서 끝장을 보려고 나름의 선언까지 해놓은 책이 ‘알베르 카뮈 전집’이니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전집은 사천 쪽이 넘는다. 이걸 올해가 가기 전에 다 읽을 수는 있을까 싶은데, 일전에 읽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하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여정은 길면 올해 말, 짧으면 10월을 보고 있는 상황인데, 확실하지는 않다. 괜히 설레발쳤다가 창피를 당하고 싶진 않다. 그런 고로 이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하루하루의 글에서 당분간은 카뮈 이야기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령 직접적으로 카뮈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날 읽은 파트에 영향을 받아 글이 써질 것이다.
기존에 카뮈 작품은 반복적으로 읽어왔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의 경우 못해도 6번 이상씩은 다시 읽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페스트’는 딱 한 번 읽었을 뿐이었기에(아마도 긴 분량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오히려 이번을 기회 삼아 재독을 시도하는 중이다. 시도라고는 했지만, 워낙에 카뮈 글을 좋아하니 그런 도전적인 의미는 아니고, 실상은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감탄을 표하며 즐거이 읽고 있다. 작년 말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머릿속엔 ‘페스트’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었다. 전염병이라는 테마, 격리 및 봉쇄라는 이미지가 코로나 시국과 아주 잘 들어맞았으니까. 그런데 왜 그땐 읽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여 그땐 ‘페스트’를 떠올리고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했다. 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는 그 위중함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가벼이 웃어넘길 수 없었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같은 박자로 심장과 함께 뛰었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난 감염되지 않은 사람, ‘페스트’로 따지자면 오랑시 밖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치 그때에 ‘페스트’를 읽는다는 건 제삼자의 입장에서 코로나를 바라보는 일처럼 느껴졌고, 타인의 고통을 문학적인 유희 및 탐구로 연결시키려는 사유에서 뜨거운 수치심을 느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다소 과민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을 무슨 고해성사하듯 풀어내는 건 이 노트에 끼적이는 글에 무언가를 숨기거나 거짓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코로나가 여전히 그리고 전보다 더 심각함을 띠고 우리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지금 나는 ‘페스트’를 읽고 있다. 이제는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린 방역 문자의 포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봉쇄되어버린 오랑시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입장이 아닌, 오랑시 안에서 숨이 턱 막히는 절망을 버티며 그럼에도 온 힘을 다하여 살아가는 시민이 되어. 나는 ‘페스트’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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