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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낱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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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Oct 28. 2020

그래도 내일은 내일이니까

낱장 일기10

자꾸만 마음이 부정적인 쪽으로 가려한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작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간혹 터널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이 들리는 시간이 되면,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는 오늘은 어둡지 않은 글, 재미있는 글, 고려해볼 만한 글을 써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글감을 찾아 머릿속을 뒤적이지만, 언제나 내게 먼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둡고 음울한 생각들뿐이다. 나는 그것만은 피해보자며 필사적으로 눈을 감아본다. 그러나 결국 내가 보게 되는 것은 한 글자도 적지 못한 텅 빈 모니터 화면일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어째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할 말은 끝나지 않는 걸까. 써도 써도 쓸 말이 남아있는 걸까. 마치 내 뇌 속에 부정을 생산하는 대형 설비들이 가득 들어찬 공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쉬지도 않고 어두운 생각들이 속속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 공장의 근무 세포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생산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가 이미 기계로 대체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런 농담 식으로라도 표현해보니 한결 낫다. 자조에 가까운 유희로 잠시 숨통이 트인다. 심호흡. 심호흡.

여하튼 내 머릿속에는 무언가 있다. 그게 내가 상상했던 대로의 거대한 공장이든 키 큰 나무가 가득 들어차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숲 속 같은 것이든 말이다. 옛말에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다. 어차피 내 머릿속 부정적 생산을 피하거나 막을 길이 없는 거라면, 아예 끝까지 부딪혀보는 것은 어떨까. 담배를 끊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담배를 왕창 주어 코에서 노란 물이 나올 때까지 피우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나도 그런다면, 이 생산을 막지 않고 오히려 부추겨서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글로 적어내게 만든다면, 이제 더는 적어낼 것이 없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쏟아내어 본다면,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그 극단적 시도는 두 가지 귀결로 이어질 것 같다.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이른 생불이 되거나, 끝끝내 부정에 잠식되어 정신을 놓게 되거나. 양쪽 모두 초월의 경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둥글고 양극단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니까.

그래, 이 글에서만큼은 숨기지 않기로, 속이지 않기로 했지 않은가. 내가 10개의 똑같이 어두운 글을 쓴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러나 이런 글을 구태여 읽고 싶지 않은 독자일 수도 있는 당신에게는 미안하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나의 적성 및 전문분야가 이 시꺼먼 영역이었고, 나는 단지 내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한 가지만 잘해도 먹고 산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이거라도 잘해보면 뭐라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물론 그 종착점이 그리 좋은 모습일 거라고는 좀처럼 생각이 들지 않지만.

나의 글은 무겁다. 그건 나의 생각이 언제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이 언제나 무거울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세상에 균형이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가 필요하다. 나는 여유를 되찾고 싶다. 대충 살겠다는 말이 아니라 조금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오늘도 참 별로였어.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지나갔고, 내일이 있으니. 내일도 오늘 같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내일은 내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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