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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Nov 02. 2020

나는 바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낱장 일기12

나는 바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로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 안에서도 바쁜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일정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곧 이것도 해야 하는데 일이 겹치면 힘들지 않을까? 아무래도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들. 그것은 일견 합리적이고, 신중을 기하는 자세에서 기인한 것 같지만, 냉정하게 내 속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에게 과중한 일정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을 바쁨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게으름, 나태함, 자기 합리화 등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아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움직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이유를 만들어낼까.

‘솔직히 말하자면’ 따위의 구태의연한 말을 들이밀지 않아도 내가 피해왔던 많은 일정들이 사실은 그렇게 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 다소 바쁘겠지만, 그럼에도 그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고, 조금 신경 써서 과제를 하며 일정을 조율하고, 시간을 쪼개면 내 능력 안에서 처리 가능한 일들이었다. 내가 하루에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큰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난 시간 동안 정말로 변하지 않아 왔던 내가 하기에는 좀 웃긴 말이지만 말이다. 실상 모든 변화의 시작은 딱 한 걸음에 달려있다. 그냥 질러본다는 생각으로 딱 한 걸음 내디뎌보면, 그것이 결국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무튼 뭐든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한 걸음을 내딛지 않았을 때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 것이고.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아니 사실 과장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한 걸음으로 굶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나는 지금 굶고 있지 않은가.(물론 실제로 배를 곯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양식으로 버텨가며 아끼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인데도 마치 그것이 필요한 것처럼.

기회가 왔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한 발 내디뎌 볼 때가 온 것이다. 모처럼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할 수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랜만의 긍정적인 새벽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나는 나의 변덕스러움을 알기에 죽이 끓기 전에 냅다 해치워버려야 한다. 내일의 나에게 하는 소리다. 이 정도면 알아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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