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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Nov 07. 2020

나의 마지막에는

낱장 일기13

"나는 내 삶이 끝날 때 산 세폴크로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작가수첩Ⅲ, 218)     


언젠가 삶이 끝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소박한 어투로 자신의 수첩에 적어 내려갔던 카뮈는 1960년 1월 4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참혹했던 전쟁 시기도 살아온 그가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 평생을 삶에 대해 고민해왔던 카뮈라지만 그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뮈가 그의 수첩에 1장 분량으로 적었던 그의 바람은 카뮈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지극히 단촐한 것이었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서는 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었다. 그가 언제고 사랑했던 길, 나무, 언덕, 광장, 햇빛이 그 마지막 바람에서도 과장하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의 마지막 순간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바라던 풍경을 조금이나마 마음에 담을 기회가 있었을까.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 알지 못한 채 매일의 일상을 감탄하는 마음으로 볼 기회가 있었을까. 죽음이란 허무한 것이고 그렇기에 죽기 전의 마지막이 이렇든 저렇든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죽음은 단발적이고, 결정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부디 마지막 이전에 그런 시간을 가졌기를 바라는 이 비합리적인 마음을 어째야 하는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바라는 이 마음을.


나의 마지막에는 가족들과 평범한 저녁을 함께하고 싶다. 같이 장을 보고, 웃으며 요리를 만들고, 익숙한 자세로 설거지를 한 뒤 다 같이 소파에 편하게 앉아 티비를 보다가 저녁 11시 즈음 피곤이 몰려오면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누울 자리로 향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내게 여분의 하루가 더 있다면, 그때는 오롯이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 햇빛이 온화하게 들어오는 방 안에 앉아 널찍한 창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자연의 색채들을 즐기며 책을 가만히 읽어도 보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생그러운 소리를 이불 삼아 스르르 선잠에 빠져보고 싶다. 사위가 어두워진 저녁이면 창을 살짝 열어 피부를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끌어안고 하늘에 흩뿌린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새벽을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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