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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Nov 09. 2020

부정적인 것들에 끌리는 본능에 관하여.

낱장 일기14

영원까지는 아니어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던 것들이 무너짐을 본다. 특히나 최근에는 youtube를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뒷광고가 어쩌고, 돈을 번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응이 미흡하고 거짓말을 한 것이 어쩌고, 그런 이야기야 구태여 더하지 않아도 이미 이곳에서고 저곳에서고 떠들고 있으니 이 글에선 다른 이야기를 해보련다. 부정적인 것들에 끌리는 본능에 관하여.

사실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 사건의 사실관계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안에 무슨 잘못이 있었으며, 그 이후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등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건들도 많겠지만, 어쨌든 제3자의 입장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알아낸 제한적 정보가(그것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건을 드러내고 있다면) 말해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보를 갖고 각자의 기준을 갖고 판단하고 대처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논란을 일으키는 사건을 마주했을 때 정작 제일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사건의 사실관계? 아니다. 사람들의 상반되는 반응, 특히나 부정적인 의견들, 시간이 지날수록 진위 파악보다 더 많은 시간을 대상에 대한 비난을 구경하는 데 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건은 정말 단순하여 더 따져볼 것이 없는데도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사람들의 분노를 관음 한다. 이것이 비단 나만의 일일까?

솔직해지자. 사람은 은연중에 폭력을 즐긴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남의 집 불구경, 싸움구경이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은 누군가의 고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한 고통이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것일지라도(오히려 그럴수록) 우리의 눈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몰두한다. 거기에서 어떤 금지된 쾌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는 끔찍한 가정이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여전히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어두운 나의 뒷모습을 본다.

요즘 소위 ‘사이버렉카’라고 불리는 컨텐츠를 보면 이러한 바를 부정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게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만에서 수십만의 조회수를 올리는 ‘사이버렉카’ 컨텐츠들. 제작자는 어떤 사명감을 갖고 객관적 입장에서 컨텐츠를 만든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걸 소비하는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니, 결국 그 의도와 상관없이 컨텐츠는 추악한 욕망을 먹이로 삼는 셈이다. 그럴수록(컨텐츠가 더 인기를 끌수록) 정보는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가고,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급기야는 잘못된 정보까지 취급하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나 역시 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내가 그러한 바에 기여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조금 전에도 어떤 사건의 전후 사정을 이미 지난날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쏟아지는 분노를 굳이 찾아보았으니 말이다. 내가 선한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구태여 누군가의 불행 및 고통, 분노 등을 시간을 들여 찾아보는 행위를 뭐라고 해야 할까. 혐오 탐닉(hate-seeking)라고 하면 맞을까. 이토록 추악한 인간의 이면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여야 하나. 그것은 하나의 본능이라고, 누구나 갖고 있는 더러운 욕망이라고 순순히 인정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그저 일부의 개인적 특질이라고,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후자이기를 바라지만, 조금 전의 나의 뒷모습이 계속 떠올라 자꾸 부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이 기운다.      


0830

* 뒷광고 논란이 한참일 때 적었던 글이다. 지금도 여전히 상황은(혐오 대상을 찾아 다니는)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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